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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현대사> 저자 이근원씨.
 <아빠의 현대사> 저자 이근원씨.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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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출범했다. 전노협은 "80년대 내내 노력한 노동운동의 총결산"이었다. 그로부터 딱 10년 뒤인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이 창당했다. 5000여명이 참석한 민주노동당 창당대회에는 "20의 사회를 80의 사회로"라는 구호가 내걸렸다.

이후 전노협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으로 성장했고(1995년 11월 11일), 민주노동당은 2004년 4월 총선에서 10석을 얻으며 '진보야당'의 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현재 민주노총은 위원장도 뽑지 못하는 무능력한 조직으로 전락했고, '진보야당'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등으로 흩어졌다. 오랫동안 한국진보의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온 '무능력'과 '분열'은 엄혹한 현실이었다.   

"우리끼리 물어뜯는 데 능숙하다... 적들은 상처도 안 받아"     

최근 <아빠의 현대사>(레디앙)를 펴낸 이근원 공공운수노조·연맹 대외협력국장은 30여년간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서울과 안산, 부천, 울산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에는 '노동자정당추진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아빠의 현대사>의 두 축은 1980년 이후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역사다. 그가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한국현대사'를 쓰게 된 계기는 지난 2008년 거리를 물들였던 '촛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을까? 그렇게 나올 수는 없다. 그때 (거리로) 나왔던 부모들과 애들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살아온 과정과 기억을 둘러보고 그것을 딸아이와 함께 얘기하고 싶었다." 

이 국장은 <아빠의 현대사>에서도 "'미래와 맞닿아 있는 과거'를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책에는 '광주세대가 촛불세대에게'라는 부제가 붙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노동운동의 약화'와 '진보정당의 분열'이라는 현실이 놓여 있다. 그러니 착잡할 수밖에 없다.

지난 24일 합정역 근처 찻집에서 만난 이 국장은 "반성할 게 많다"며 "힘이 있었을 때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노동운동은 망가지고 있고, 진보정당운동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1987년 이후 (진보진영에는) 두 가지 전략이 있었다. 하나는 산별노조 건설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세력화다. 이 두 가지 전략은 올바랐다. 현재 금속노조와 전교조 등 산별노조가 (민주노총의) 70%가 넘었고, 민주노동당도 10명의 의원을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목표가) 형식적으로는 완성됐다. 하지만 IMF 이후 변화의 과정에서 내용적으로 완성해야 할 것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갔다."

이 국장은 "(노동운동 등 진보진영은) 능숙하지도 않았고, 전망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파이기주의'로 인해 내부대립이 극대화되면서 "적들은 상처를 받지 않고, 우리한테 준 상처만 컸다".

"브라질 노동자당(PT)에서 제일 유심히 봤던 게 있다. 하나의 당 속에 무장투쟁, 동성애 합법화 등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이념대립이 심할 텐데 그런 (다양한) 의견이 형성돼 있었다. 우리 안에서 그런 구조를 만들고 싶었지만 못했다. 운동권 정파의 문제점이 여전히 나타났다.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의 폭력사태를 보라. 내부의 대립이 극대화되고 있다. 적들과 싸워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물어뜯는 데 능숙하다. 전망도 내오지 못한다."

룰라의 '충고' "노동운동 프로젝트를 정치와 혼동하면 안돼"

1980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을 두축으로 한국현대사를 기록한 <아빠의 현대사>.
 1980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을 두축으로 한국현대사를 기록한 <아빠의 현대사>.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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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장은 브라질 노동자당을 이끌었던 룰라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지난 1999년 브라질 노총(CUT)와 노동자당(PT)의 초청으로 브라질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룰라는 브라질 노동자당의 성공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PT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다. PT 안에는 기독교도가 있는가 하면 무신론자도 있다. 가톨릭도 있다. 심지어 무장투쟁을 했던 사람도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노동조합 활동에서 정치활동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들은 한 번에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적 훈련이,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조합처럼 닫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열려져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노동운동의 프로젝트를 정치프로젝트와 혼동하면 안된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을 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얘기만 들으면 된다. 그러나 정치프로그램에는 많은 다른 영역의 제안을 들어야 한다. 실업자, 학생, 여성, 중소기업가, 농민 등 각기 다른 영역에 속한 사람들을 정치로 모아내는 것에 대해 우리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아빠의 현대사> 318쪽)
 
이 국장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철탑투쟁'의 의미에 주목했다. 그는 "엄호세력이 없으니까 철탑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전망이 없으면 극한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노동운동의 약화')과 진보정당('진보정당의 분열')이 현장의 엄호세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진보신당을 우리 조직의 간담회 일정에 포함시켰더니 '왜 진보신당을 넣었냐?'고 하더라.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이후에 정파의 폐해가 현장까지 내려와 있다. 지금은 더 나빠져 있다. 파편화된 진보정당운동이 노동운동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 조직의 정치위원회에서는 '정치 얘기 하지 맙시다'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정치를 얘기하면 또 분열하니까."

"50명도 안되는 사람들에 의해 당이 쪼개지는 걸 보고 놀랐다"

이 국장은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종북주의'를 지목한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NL과 PD 정파가) 연합해서 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종북주의를 몰랐을 리 없다"며 "하나의 당이 50명도 안되는 사람들(당시 탈당주도세력이었던 '전진그룹' 인사들을 가리킨다-기자주)에 의해 쪼개질 수 있다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아빠의 현대사> 3부에는 '혼돈'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국민승리21에서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는 과정도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중들의 마음이 (우리한테) 벗어나 있다. 이젠 어떤 얘기를 해도 잘 안 먹힌다. '다시 일어나봅시다'라고 얘기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복수노조 시행과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으로 노조운동이 축소됐다. (현장에서도) '버텨야 하는 시기'라며 움츠러든다. 더 넓게 연대해야 하는데 거꾸로 정파중심이거나 자기 사업장중심이다. 그래서 혼돈이다."

이 국장은 지금의 '혼돈'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노동운동의 지역개입전략'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구사해온 '중앙집중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도 물론이고 노동운동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현장에 밀착하고 세대도 교체해야 한다. 각 연맹의 중앙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을 더 많이 현장과 지역에 배치해야 한다. 과감하게 연맹의 중앙을 축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역에 내려보내자는 거다. 거기서 신뢰를 다시 형성해야 한다. '민중의 집'이나 '의료생협' 등도 공부하자. 그렇게 노동운동의 지역사회개입전략을 산별수준이나 정치수준에서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

이 국장은 "노동자가 일터에서는 노동자이지만 삶터인 지역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지역의 노동자들은) '돈 대고 몸 대주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느냐?'고 묻는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집회에 참가하는 것 말고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산별노조원으로서, 진보정당 당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꿈은 낚시터 관리인... 촛불이 그냥 없어지지 않아"

<아빠의 현대사> 저자 이근원씨.
 <아빠의 현대사> 저자 이근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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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혼돈'이라고 진단하면서도 이 국
장은 "길게 보면서 안에서 반성하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근거없는 낙관은 내 힘의 원천이다"라고 얘기했는데 기자에게도 그는 지독한 낙관주의자로 보였다.   

"평생 소원이 하나 있다. 낚시터 관리인이 되는 거다. 민물낚시를 아주 좋아한다. 기다리는 걸 좋아한다. 딸아이에게 '인생의 반은 기다림이다'라고 했더니 '뭘 기다리냐?'고 묻더라.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올 거라 믿으며 그것을 기다리는 거다.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 낚시는 미친 짓 아니냐고 한다. 그 넓은 데다 낚시를 드리우고 '물어라 물어라' 하는 게 말이다. 어느날 입질이 오기도 하고, 공치기도 하지만 물고기가 물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우리가 82년 데모를 시작했을 때 전두환은 살벌한 영감이었다. 그를 15년 만엔가 감옥에 보냈다. 앞으로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이 국장은 "80년대와 90년대 등에 했던 소중한 경험도 있고, 촛불이 그냥 없어지지는 않는다"라며 "딸아이도 봤던 광범위한 저항과 열기 등이 역사 속에서 다시 살아날 일이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이현상 평전> 등을 쓴 소설가 안재성씨가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그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있었던 조선공산당 강령들이 거의 실현되고 있다'고 했다. 최대강령은 아니지만 8시간 노동제와 제반 민주화 조치들이 이루어졌다는 거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무수히 싸운 결과다. 다만 그것이 좀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아빠의 현대사>는 이 국장이 대학에 들어간 지난 1980년부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초까지 그가 경험한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주로 그가 중심에 서 있던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을 두 축으로 한국현대사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양경규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대표는 추천사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사실들을 불러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 짙게 묻어나는 민중들의 치열한 삶을 돌아보게 하고 거친 호흡을 듣게 하고 그 아픔과 함께하게 한다"고 썼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활동가들'(노동운동가이든 진보운동가이든)의 이름을 한 번 정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꼰대"라는 비딱한 선입견을 버리고 말이다.     


태그:#이근원, #아빠의 현대사,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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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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