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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대자연'이나 '투자 가치 있는 신흥 경제대국'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질병 그리고 차별·소외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3년 밀알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캠페인 '우리의 눈은 아프리카를 향합니다'를 후원하며 지구촌 빈곤의 현주소를 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말]
에티오피아의 옷가게에서는 대부분 구제의류를 판매 한다.
 에티오피아의 옷가게에서는 대부분 구제의류를 판매 한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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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350km 떨어진 작은 촌락 관가. 붉은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변에 굵은 나뭇가지 몇 개와 대나무 발로 벽을 삼고 함석과 천막으로 지붕을 얹은 손바닥만 한 집이 있다. 좋게 말해 집이지 크기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1인용 원두막이라고 하면 딱 좋을만한 엉성한 구조물이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집에 알록달록한 옷가지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얼른 봐도 새 것 같아 보이지는 않은 옷들이라 빨래를 널어놨다 싶었지만, 나름 이 동네에서 유명한 옷가게란다.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에서도 더 가난한 시골마을 관가에서는 새 옷을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새 옷은커녕 떨어지고 헤지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옷'이란 그저 치부를 가리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나뭇잎으로 가릴 것을 천으로 가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러다 보니 어른이든 아이든 때에 찌들고 헤지고 구멍 난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닌다. 선생님도, 학생도, 공무원도, 노동자도, 농민도 마찬가지다.

에티오피아에서 옷은 사치품의 일종이다. 한국 사람이 의류수거함에나 넣을 것 같은, 혹은 그보다도 못한 낡은 셔츠 하나가 20~30비르(1비르 : 한화 약 60원) 정도. 하루 일당으로 겨우 의류수거함에서 꺼낸 것 같은 낡은 셔츠를 하나 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추위를 막기 위한 용도가 아닌 모양과 멋을 위해 옷을 사는 것은 사치일 수밖에 없다.

가난한 시골마을의 재력가, 바리소

옷가게 사장이 된 맨발의 고아청년 바리소.
 옷가게 사장이 된 맨발의 고아청년 바리소.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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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사치품을 파는 가게는 상당한 재산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게 마련이다. 비록 시골이지만 내가 찾은 옷 가게도 다르지 않아 이 마을에서 옷가게 주인은 '재력가'(?)로 통한다.

"옷가게 주인은 원래 이 동네 출신이 아니에요. 이 동네 들어와서 5년 만에 엄청난 부자가 됐어요. 만나보면 아시겠지만 대단한 청년이에요."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하다는 부자 청년 바리소 아부니. 그는 내가 찾아간 날도 옷가지들을 진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기자예요. 옷도 사고, 이야기도 좀 나눠 보려고 왔는데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을까요?"

일손을 멈춘 바리소가 의아하게 나를 쳐다본다. 얼굴색이 다른 여성이 자기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 그 역시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그와 대화를 하기 위해 가게 앞 의자에 앉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얼굴빛과 행색이 확연히 다른 우리는 금방 호기심의 대상이 됐고, 그런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허술한 그의 옷가게가 무너질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걷지 못하니까 부모님이 버린 것 같아요..."

모여든 사람들로 인터뷰가 쉽지 않다.
 모여든 사람들로 인터뷰가 쉽지 않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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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외국인들과 갑자기 모여든 주민들에 둘러싸인 바리소는 잠시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양해를 구한 뒤 몸을 지탱하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내려놓으며 힘들게 자리에 앉았다.

"다리가 불편하네요. 언제부터 그랬나요?"
"모르겠어요. 어릴 때부터 이랬던 것 같아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걷지 못하니까 부모님이 저를 버렸나 봐요. 부모님 얼굴도 이름도 몰라요. 아주 어릴 적부터 혼자 자란 것 같아요."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다르지 않지만 에티오피아 역시 장애를 '신의 저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살다가 장애를 입게 된 경우 치료를 하기보다는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쓰고 우리의 굿과 같은 의식을 치르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 방치해 두고 죽기를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바리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걷지 못하는 아이였던 그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이미 부모로부터 버려졌다.

"어릴 적엔 남의 집 마당에서 닭이나 개·염소들과 같이 잤어요. 그러다가 조금 더 자란 뒤에는 또 다른 집에서 소를 키우면서 소와 함께 지냈고요."

바리소는 집에서 키우는 가축과 다름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는 않았다. 부모 없는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신 말고도 너무 많았기에 특별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릴 적엔 걷지 못했는데 자라면서 조금씩 걷게 됐어요. 나무 막대기를 짚고 일어나는 연습을 하고 걷는 연습을 하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걷게 됐어요."

구두닦이부터 시작한 거지아이... "지금은 학교 다녀요"

구두 혹은 운동화 한켤레를 닦고 받는 돈은 0.5비르(30원)이다.
 구두 혹은 운동화 한켤레를 닦고 받는 돈은 0.5비르(30원)이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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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닦고 수선도 해준다.
 신발을 닦고 수선도 해준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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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이곳 관가에 지체장애인 거지 아이가 들어왔다. 자기 키만한 막대기로 몸을 의지해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걷는 이 거지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는 사람도, 도움을 줄 사람도 없었던 이 거지 아이는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게 마을에 흘러들어와 어느 날부터 마을 어귀에서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어질 적부터 살던 동네에 형제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형제들도 저를 도와줄 형편이 아니었어요. 형제들도 남의 집에 신세를 지거나 오갈 데 없는 처지로 살고 있었거든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해서 구두를 닦기 시작했죠."

거지소년 바리소는 시장 한 구석에서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구두 한 켤레를 닦고 받는 돈은 0.5비르. 두 켤레를 닦아야 1비르를 벌 수 있다. 그리고 1비르를 벌면 빵 두 개를 살 수 있다. 한 끼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돈인 것. 하지만 바리소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구두 닦은 돈으로 먹고 살기도 어려웠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손님도 늘어나고 옷가게를 할 만큼 돈을 모을 수 있게 됐어요. 모은 돈으로 조금씩 옷을 사다 팔고 그렇게 하면서 가게를 늘렸어요. 2년 만에 이 가게를 지었죠. 요즘에는 어릴 때 떠돌이 생활하느라 못했던 공부를 하기 위해 저녁에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지금은 초등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는데, 계속 공부해서 중학교·고등학교 과정까지 모두 마치려고 해요."

바리소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남의 집 마당에서 가축들과 함께 먹고 자며 가축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던 지체장애인 고아 소년이 어엿한 옷가게 주인이 됐고, 학교에 다니며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할 만하다.

지팡이 짚고 국경까지... 왜 힘든 길 택할까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못하는 바리소.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못하는 바리소.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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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없고, 장애가 있고, 가난하며, 배우지 못했다는 약점은 그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뛰어넘어야 할 한계로 작용해 그의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됐을 뿐이다. 작은 일에 실망하고 좌절하며 문제를 극복하기보다는 처해 있는 상황과 환경을 원망하기 좋아했던 나를 부끄럽게 하는 청년이다.

"이제는 마을 장터 소매상에서 옷을 받아다 팔지 않고 모얄레까지 가서 직접 물건을 떼어와요. 그래야 더 좋은 물건을 가져올 수 있고, 마진도 더 많이 붙일 수 있거든요."

모얄레는 케냐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남부 지역으로 최근까지 부족간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던 곳이다. 바리소가 13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모얄레까지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곳에 가면 케냐로부터 들여오는 밀수품이나 저가 공산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70% 이상이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에는 공장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해와야 한다. 문제는 에티오피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라는 사실. 홍해에 인접해 있는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로부터 분리·독립하고 최근까지 분쟁을 치르면서 인접국인 지부티나 케냐를 통하지 않으면 공산품을 들여올 길이 없어진다.

이처럼 모든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세금과 물류 비용 등이 포함돼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의류도 다르지 않아서 관세가 많이 붙는 새 옷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세금부담이 적은 구제품 의류를 들여와 파는데 그나마도 조악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어찌나 천이 약하고 바느질이 엉망인지 옷 입고 방귀도 뀌면 안 된다고 해요. 방귀만 뀌어도 찢어진다는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에티오피아에서 깨끗한 옷, 번듯한 옷, 멀쩡한 옷을 입을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실제로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의 복장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이런 에티오피아에서 크든 작든 옷가게를 운영한다는 것은 전자제품이 귀했던 우리나라 1970년대에 전자제품 대리점을 갖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옷을 사 입는 사람만큼이나 옷을 파는 사람들도 부자라는 뜻이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거친 발, 또 다른 장애가 걱정된다

20년간 맨발로 지내온 그의 발에 신발을 신겨주고 싶다.
 20년간 맨발로 지내온 그의 발에 신발을 신겨주고 싶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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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에 있는 물건을 모두 돈으로 환산하면 1만 비르(60만 원) 정도 될 거예요. 3년 전 가게를 시작해서 조금씩 늘려나가다 보니 물건이 많아졌어요. 돈을 많이 모아서 부자가 되고 싶어요. 부자가 되면 자동차를 사려고요. 지팡이를 짚고 모얄레까지 물건을 떼러 다니려니 힘이 들어서요. 아직은 멀었지만 언젠가는 꼭 자동차를 살 거예요."

그와 이야기하면서 의식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그가 다리를 저는 지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이제야 자신의 다리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바리소. 그제야 그의 발이 눈에 들어온다.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 다리처럼 온전하지 않지만, 지팡이와 함께 그의 불편한 몸을 지탱해주고 있는 고마운 발. 하지만 바리소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맨발로 살아온 탓에 그의 발은 거칠기 짝이 없다. 조금 더 어린 시절부터 교정용 신발이나 보장구 같은 것을 사용했다면 지금보다 걸음걸이가 조금 더 편했을지도 모르지만, 의료 수준이 낮은 에티오피아에서, 더구나 고아인 바리소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와 다름 없었을 것이다.

흙투성이인 바리소의 맨발에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저렇게 맨발로 다니다가 상피병에 걸리거나 발바닥을 파고드는 기생충이나 모래 벼룩에 감염된다면 또 다른 장애를 갖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리소에게 신발을 신으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바리소 발에 맞도록 제작된 장애인용 신발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신발이라도 불편을 가중시키기만 할 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리소와의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낯선 외국인들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의 무리가 점점 많아졌다. 무리 속에서는 우리를 향해 "머니(Money), 머니"를 외치는 아이도 있었다. 외국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지만, 차 안에 준비해놓은 티셔츠 몇 장과 사탕 봉지들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밀려드는 아이들에 비해 나눠줄 수 있는 옷과 사탕이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자칫 잘못 전달하다가는 오히려 아이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격이 될 것 같아 개별적으로 만나는 아이들이나 사람들에게만 조용히 전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프리카의 '맨발'들에게 신발 신겨지길

바리소의 환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리소의 환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기를...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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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모여들 기세. 인터뷰를 마치고 감사의 뜻으로 50비르짜리 티셔츠를 하나 사서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그의 친구를 통해 짧은 인사를 전했다.

"바리소, 당신의 삶에 감동을 받았어요.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모든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당신처럼 어려운 환경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남의 집 마당에서 가축처럼 살던 당신이 이렇게 멋진 옷가게의 주인이 된 것처럼 에티오피아도 그렇게 부자가 될 거예요. 당신과 당신의 나라 에티오피아를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꼭 맞지 않더라도 신발을 신기 바라요. 그래야 또 다른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에도 바리소의 맨발이 오래도록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거친 삶을 지탱해준 고마운 발. 하지만 그의 삶처럼 맨땅에 내버려진 발. 그의 맨발에 장애인용 보장구를 신겨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바리소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많은 '맨발'들에게 신발이 신겨지는 날을 꿈꿔 본다.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밀알복지재단(02-3411-4664)에 전화하시면 후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밀알복지재단 누리집]을 통해서도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울지마! 아프리카, #밀알복지재단, #에티오피아, #딜라 한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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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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