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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고래 틸리쿰은 2살 때 포획되어 쇼를 하는 수족관으로 팔려갔다. 고래를 포획하는 과정은 매우 잔인하다. 영화 <블랙피쉬>에는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범고래 그룹에서 새끼들을 어미와 분리시키는 작업에 참여한 사람의 증언이 나온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새끼들이 그물에 걸려 잡혀갈 때, 다른 고래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그는 그 일을 인생에서 가장 후회한다고 말했다.

수족관에 갇힌 틸리쿰은 다른 범고래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훈련 과정에서 틸리쿰의 잘못으로 먹이를 받지 못하는 벌을 함께 받게 되자 동료들이 틸리쿰을 괴롭힌 것이다. '너 때문에 내가 밥을 못먹었잖아' 일종의 복수며 괴롭히기였다. 수족관에 모인 범고래들은 대부분 여러 지역에서 왔다. 인간으로 치면 국적도 다르고 심지어 언어도 다른 셈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속단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틸리쿰이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관람객들이 보는 앞이었다. 틸리쿰은 쇼 도중에 조련사의 발을 잡아 물 속으로 들어갔고 결국 물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 후 어느 날 아침 틸리쿰은 어떤 남자의 시체와 함께 발견되었다. 그 남자는 조련사들처럼 고래들과 소통하고 싶었는지, 밤에 몰래 그곳을 찾은 것이다. 부검 결과 사체에 있던 상처는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 때 모두 생긴 것이었다. 틸리쿰의 분노는 남자가 죽은 후에도 가라앉지 않았던 것일까?

세 번째 희생자는 조련사 던이었다. 그날 틸리쿰은 지느러미를 흔드는 묘기를 보인 직후 먹이를 받기 위해 던에게 갔다(하지만 던은 앞서 호루라기를 불어 먹이를 나눠준 상태였다. 다른 조련사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 틸리쿰이 던의 호루라기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던은 틸리쿰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고, 이에 틸리쿰은 화가 나고 좌절감을 느낀 듯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좁은 수족관에 20년간이나 가둬놓고 일을 시켰는데 분노와 좌절감이 어땠겠냐고. 던이 물 속으로 들어갔을 때 틸리쿰은 던의 팔을 물었다. 그것이 던의 최후였다. 업체는 이것이 던의 실수이며 단순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을 목격한 조련사는 한결같이 그것이 사고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사건으로 법원은 범고래와 조련사가 안전지대 밖에서 만나지 않도록 명령했지만 현재 씨월드는 법원의 결정에 항소한 상태다. 20여년간 총 세 명을 죽인 틸리쿰은 살아남았다. 맹견이었다면 당장 안락사 되었을 것이다. 이유는 돈. 틸리쿰을 번식시키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동물권 논쟁을 불러일으킨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쉬>

2013년 '환경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쉬>는 미국에서도 동물권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국내에서도 돌고래 체험을 한다는 거제돌핀파크 건립 논란이 한창이다. 거제돌핀파크는 거제시가 거제씨월드와 민자유치사업으로 지세포 일대에 건립을 추진 중인 돌고래 체험 전시 시설이다.

업체 측은 애초 일본과 러시아에서 총 19마리의 고래류를 수입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환경부는 시설 미비 등의 이유를 들어 4마리의 돌고래에 대해서만 조건부 수입을 허가했다. 2012년은 불법포획되어 쇼에 동원되었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방사로 전 언론이 돌고래쇼에 집중되던 시기였다.

이런 여론을 반영한 때문이었는지 업체는 쇼가 아닌 체험관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돌고래를 이용한 상업적 활동에는 돌고래 공연(Dolphin show)과 동물매개 치료요법이라고 알려져 있는 돌고래 테라피(Dolphin theraphy)가 있다. 체험관이란 사람이 물 속 혹은 수족관 바로 옆에서 돌고래를 만지거나 수영하는 형태의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돌고래체험관의 모습. 깊은 수심 아래에서 살며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돌고래가 얕은 풀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을 만지는 것을 견디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돌고래체험관의 모습. 깊은 수심 아래에서 살며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돌고래가 얕은 풀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을 만지는 것을 견디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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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는 동물학대 논란이 있는 쇼가 아닌 체험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나, 2009년 WSPA(World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Animals)와 HSU(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가 2009년 발표한 보고서에는 체험관에서 발생한 많은 사고가 소개돼 있다.

2008년 퀴라소(카리브해에 있는 대표적인 돌핀 테라피 시설로 2주간 테라피 프로그램 참가비가 미화 7350달러에 이른다)의 돌고래체험관에서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온 돌고래가 관광객 3명의 몸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업체는 이것이 단순한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돌고래 행동 전문가들은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돌고래가 마치 화가 난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1994년 12월 8일 브라질의 한 체험관에서 Tiao라는 병코돌고래가 사람을 공격해 죽였는데, 당시 그 사람은 Tiao의 분수공에 뭔가를 쑤셔넣으려다 사고를 당했다. Tiao는 이전에 있었던 29건의 사고와 관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Tiao의 지느러미를 잡거나 등에 올라타려고 하다 공격을 당했다. 결국 Tiao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29번 이상을 참아왔던 것이다.

던은 틸리쿰과 함께 늘 호흡하던 능숙한 조련사였다. 그런데 체험관에 방문하는 모든 고객은 돌고래에게 낯선 방문객이다. 만약 하루에 10명의 고객을 만나게 된다면 자아의식을 가진 고등동물이 하루에 낯선 사람 10명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고래의 좌절과 스트레스는 분노로 변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일반인도 위험하지만 장애인이라면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스스로의 몸을 통제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돌고래의 행동은 물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 인간은 지상보다 물속에서 스스로의 행동을 쉽게 통제할 수 없으며 고래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러하다. 돌고래쇼와 체험관이 위험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돌고래를 통해 인간을 치료한다는 돌핀테라피(DAT)의 효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으며, 무엇보다 이것을 만든 사람(Dr. Betsy Smith)도 현재 이것을 포기한 상태다.  돌고래와 사람 모두에게 이롭지 않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고등 동물들에게 쇼는 어떤 영향을 줄까?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침팬지, 오랑우탄, 돌고래, 코끼리 등은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심리학자인 G A 브래드쇼는 자아의식을 가진 동물의 특징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행위감과 행위감의 일관성, 감정의 표현과 자아의 연속성이다.

그 중 주목할 것이 감정표현과 자아의 연속성이다. 자아의 연속성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느낌을 오랜 기간에 걸쳐 연속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끼리들이 오랜기간 자신을 학대한 사람을 잊지 않고 찾아가 복수하는 행위가 가능한 것은 그 때문이다. 고등동물은 자신의 분노를 오랫동안 기억해 표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틸리쿰의 행동도 그런 특성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돌고래쇼의 한 장면. 쇼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반복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돌고래들에게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다.
 돌고래쇼의 한 장면. 쇼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반복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돌고래들에게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다.
ⓒ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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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2003년 이후 한국에서 쇼를 했던 오랑우탄 우탄이는 2007년 즈음부터 쇼를 거부했다고 한다. 우탄이는 어려운 묘기를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한복이나 운동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떨고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점차 방송출연을 거부하던 우탄이는 2007년 사육사를 공격하면서 쇼생활을 접어야 했다(2012년 5월 4일 <한겨레> 참조).

옷을 입고 사람들과 사진 찍는 것이 전부였던 우탄이는 왜 쇼를 거부했을까? 고등동물을 오락산업에 이용하는 것은 해당 동물의 정신적 건강을 위협한다.
 옷을 입고 사람들과 사진 찍는 것이 전부였던 우탄이는 왜 쇼를 거부했을까? 고등동물을 오락산업에 이용하는 것은 해당 동물의 정신적 건강을 위협한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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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에 이용되는 동물은 100% 고등동물이다. 이는 지능이 뛰어나 사람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요소는 그 때문에 발생한다. 지능이 뛰어난만큼 사람이 시키는 쇼와 체험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이후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릿속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

'한 마리가 받을 수 있는 고객을 정하고 돌고래가 충분한 휴식을 취함으로써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거제씨월드 업체의 주장은 '돌고래가 고도의 지능을 가진 동물임'을 간과한 발언이다. 우탄이와 틸리쿰의 분노와 폭력적 행동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는 경험을 했고, 그것은 그들이 원래 살던 야생의 습성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 비롯되었다.

돌고래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업체가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돌고래의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작용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업체의 본래 목적은 동물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윤이 목적이다. 이윤과 배려의 저울질이 필요할 때 어디에 더 중심을 두게 될까? 우탄이가 들어왔을 때 몸값은 5000만 원이었고. 돌고래는 최소 5000만 원에서 1억 원을 호가한다. 구입비용을 넘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Emory 대학의 돌고래 전문가 Lori Marino는 MRI 방식으로 돌고래의 두뇌를 조사했다. 그 결과 그들의 두뇌가 몸 크기에 비해 크며, 인간보다 더욱 복잡한 두뇌신피질을 가지고 있고 자아의식과 복잡한 감정의 발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마리노씨에 의하면 돌고래는 같은 크기의 다른 동물에 비해 5배 큰 두뇌를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7배인 것으로 볼 때 이것은 큰 차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영장류와 고래류는 진화의 과정에서 동일한 인지적 공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마리노씨는 조련사 던의 죽음에 대해 <LA타임즈>와 인터뷰했는데 그때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그들이 의도적으로 누군가에게 덤빌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화가 났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었는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Yes"(2010년 1월 22일 <Discovery News> 참조)

고래의 주인은 고래 자신이다

업체와 조련사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동물을 사랑으로 대하고 있고, 교감하고 있으며 잘 돌봐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오랜 기간 동물과 함께 지내다보면 서로 소통도 가능하다. 고등동물이고 사회적인 동물일수록 외로움 때문에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더 의존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들은 먹이를 통한 긍정적 방식으로 그들을 훈련하며 동물의 원래 행동에 맞는 특성을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 일면적으로는 맞다. 인간 역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즐거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이 과도한 노동으로 발전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질병까지 발생한다. 쇼는 동물들에게 일종의 노동이다. 그러나 근로계약조차 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한 동물원에서 유기고양이들을 데리고 쇼를 한 적이 있었다. 그에 반대하는 기사 밑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안락사 될 위기에 있는 동물을 데려다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뭐가 불만이냐?' 누군가는 이런 댓글도 달았다. '마치 고아들 데려다 서커스 시키고 돈벌이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동착취한다고 뭐라고 하면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죽을 거 살려다 놨더니 배은망덕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네요. '

업체의 주장대로 고양이들과 조련사는 서로 공감하는 것 같았고 아마 잘 대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에 대한 보호와 배려는 밥만 주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동물은 자신에게 맞는 환경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고양이의 존엄성에 관련된 문제이다. 고양이는 평상시엔 철봉이나 줄넘기를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자연상태에서 턱걸이를 하지 않는다. 동물쇼는 동물의 생태를 왜곡시켜 대중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비교육적이다.
 고양이는 자연상태에서 턱걸이를 하지 않는다. 동물쇼는 동물의 생태를 왜곡시켜 대중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비교육적이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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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그들이 관람객 앞에 있어야 할 절대적인 당위성은 없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이윤을 위해 그곳에 섰다.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영화 <블랙피쉬>에서 전직 조련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누구도 고래의 주인이 아닙니다. 고래의 주인은 고래 자신입니다."

동물쇼는 인간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원숭이가 재주를 부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왜 그곳에서 재주를 부려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우선 답해야 한다. 원숭이가 뛰고 노는 행동은 그들이 원할 때 해야 가장 자연스럽다. 틸리쿰과 우탄이의 좌절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분노와 좌절과 정신적 고통에 대해 우리는 모른다.

스쿠터를 타는 것은 결코 '원숭이답게 사는 방법' 이 아니다. 조련사는 시종일관 지시봉으로 원숭이들을 가리킨다.
 스쿠터를 타는 것은 결코 '원숭이답게 사는 방법' 이 아니다. 조련사는 시종일관 지시봉으로 원숭이들을 가리킨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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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련사가 하라는 대로 따라해야 그들은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보호 없이는 살 수 없다. 사회는 야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것은 공평한 조건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이 지구의 유일한 주인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동물쇼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동물쇼가 교육적이며 동물과 사람의 아름다운 교감을 표현하고 있고 또한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쇼를 보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생존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 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어린 돌고래들이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죽은 생선을 삼키며 위장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우탄이는 사람들의 추억에 사진 한 장 넣어주기 위해 삼년간 세 평 남짓한 방에 갇혀 살아야했다. 그것이 과연 공평한 일인가?


태그:#동물쇼, #돌고래쇼, #거제씨월드, #돌고래체험관, #남방큰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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