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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5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경남 합천 일해공원
 경남 합천 일해공원
ⓒ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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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사에 관한 기념일이 가장 많아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볼 수 있는 따듯한 달이다. 하지만 불과 33년 전인 1980년 5월은 국가의 위기를 수습한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군홧발에 짓밟혀 목숨을 잃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5·18민주화운동. 그때 당시의 아픔을 간직하며 치를 떠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리고 당시 신군부의 수뇌인 보안사령관이었고, 그 뒤에는 한 나라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된 전두환 전 대통령도 여전히 '건재하다'.

전 전 대통령은 12·12군사쿠데타와 부정축재에 대한 법원의 판결로 범법자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책임자라는 의심까지 더해져, 대다수 국민들의 역사인식 속에 '나쁜 사람'으로 기억돼 있지만, 아직까지 전 전 대통령은 호의호식하며 여생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를 기리는 상징물이 그의 고향인 경남 합천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해공원과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가 그것이다.

일해공원의 '일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다. 합천군은 2004년 합천읍에다 새천년생명의숲을 조성했고 2007년 그 이름을 일해공원으로 바꿨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 해 8월에는 합천군민 일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일해공원에서 상영하려 했지만, 합천군이 불허하고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맞불 집회신고를 내는 등 갈등을 겪기도 했다.

겉모습은 깔끔 속은 텅텅... 소박(?)한 생가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 전두환 대통령 생가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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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공원은 여전히 건재하고, 그 명칭을 둘러싼 공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자란 생가도 합천군의 지원과 관리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은 건,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이다. 아름다운 가정의 달 5월답게 가는 길 곳곳에는 찔레꽃과 아카시아 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런 봄의 완연한 아름다움과는 달리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초가로 지어진 집은 안채와 헛간, 곳간이 전부다. 그나마 대문은 달려 있어 다행일 정도. 전 재산이 29만 원인 전직 대통령답게(?) 소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담 밖에서도 전체가 훤히 드러나 굳이 들어가볼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한 발짝 내딛으니 잘 정돈된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 전두환 대통령 생가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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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은 잔디가 일정하게 자라 있었으며, 조경수가 깔끔하게 단장돼 있었다. 담 주위로는 자두나무, 대나무, 감나무, 소나무 등이 심어져 있어 아늑한 분위기다. 합천군이 그나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의 깔끔함과는 달리 속은 비었다. 전직 대통령 생가에 있을법한 기념관의 모습은커녕 방명록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서랍에 굴러다니는 펜들을 보고 나서야 '이곳에 방명록이 있었구나'라고 가늠할 수 있는 정도였다.

방과 부엌문을 모두 열어봤다. 두 개의 방 안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들이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불을 켤 수 있는 형광등과 스위치, 전기선이 끝이다. 부엌도 마찬가지다. 아궁이와 솥단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저 그곳이 부엌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그러나 부엌의 천장 한구석은 떨어져나가 있었고, 마루의 한쪽 모퉁이 나무판자도 들떠 있었다. 손을 대보니 떨어져나간 것을 그냥 올려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곳간과 헛간은 모양새만 갖추고 있었다.

안내판에 '5·18 진압' 대해서는 한 단어도 없어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 전두환 생가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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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하기 짝이 없는 전두환 대통령 생가를 관리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CCTV다. 헛간 위에서 대문 쪽을 향한 단 한 대의 CCTV만이 생가를 관리하고 있는 유일한 '눈'이었다.

밖에 서 있는 안내판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업적이 가득 기록돼 있다. 그러나 업적(?)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5·18 진압에 대해서는 단 한 단어도 기록돼 있지 않았다. 그저 치켜세우기에만 바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를 둘러보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했다. 마을주민에 따르면, 사실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주말에나 한두 팀만이 잠시 둘러보다 가는 수준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를 두고 논란이 인 적 있다. 합천군의회 문을주 의원이 세금을 투입해 생가를 박정희 등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생가처럼 공원화 또는 성역화해 확대·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문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산업화에서 경제사회로 도약하는 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전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라도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가 공원화 예산 추가 주장, 여론 반대 막혀 '공회전'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 전두환 생가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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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원에서 내란죄와 살인죄를 인정한 범죄자의 생가에 세금을 투입할 수 없다는 여론이 맞서고 있어 쉽게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사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이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았을 경우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권리와 예우가 박탈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여전히 예산투입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 속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초라한 생가의 조용한 분위기 마냥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합천군은 지난해 말 4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초가지붕을 새로 이었고 목재에 칠을 하는 등 약간의 손을 봤다. 합천군이 이곳에 투입하는 연간 유지관리비가 약 600만 원. 건물의 노후와 태풍 등으로 인한 보수비를 포함하면 많을 경우 연간 약 20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합천군은 예산의 자세한 사용 내역을 밝히기는 꺼렸다. 합천군의 한 관계자는 "(사용내역을) 자세히 말씀드리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 전두환 생가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3년 하고도 4일이 지나버린 지난 22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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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거창인터넷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두환, #5.18, #민주화운동, #합천군,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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