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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단 극우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43) 오사카 시장에 관한 국제적 비판이 거센 가운데 국내에서도 하시모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서 38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당선되며 일본 정계에 등장한 하시모토 도루는 그간 극우적인 발언과 행동을 쏟아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시모토는 최근 일련의 위안부 관련 망언 이전에도 높은 수위의 비상식적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그는 "일본은 핵을 보유해야 한다", "지금 일본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재", "중국에 정부 개발 원조(ODA)를 지급하는 것은 매춘 행위", "일본 내에서 차별이 사라진 상황에서 인권박물관은 일본의 이미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 등 거침 없는 발언으로 세간의 비난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

사실 하시모토는 현재 일본 내 젊은 세대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정치인이다. 일본 정계가 대부분 세습정치인이나 상류계층 출신으로 이뤄진데 반해,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배경을 갖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야쿠자 출신에 마약중독자, 상습도박자였으며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약물 중독 상태에서 자살했다. 그의 사촌은 1999년 당시 일본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사카 쇠몽둥이 살인사건'의 범인이다. 작은 아버지도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이런 가계 내력에도 불구하고 하시모토는 와세다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의류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TV에 출연, 법률상담을 해주며 유명해졌다. 일주일에 평균 9회 이상 방송에 출연하는 등 매스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센 수위의 발언으로 인기몰이에 나섰다. 한 마디로 '개천에서 난 용'이다. 오랜 경제 침체와 고용 불안, 사회계층 고착화로 패배감에 젖어 있던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하시모토는 '자수성가 정치인의 성공신화'로 비춰졌던 것이다.

이렇게 극우 보수 성향의 하시모토가 인기를 끌자, 아사히신문에서 발행하는 <주간 아시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하시모토의 비밀 하나를 지난해 10월 폭로했다. 그가 천민 집단 거주지 출신이라는 것. <주간 아사히>에 따르면 그의 부계가 대대로 일본에서 차별 받는 천민 거주지인 '동화(同和)지구' 출신이라는 것이다. 동화란 '동포융화'의 줄임말로 이들에 대한 오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어준 명칭이다. 조선시대 백정과 비슷한 일본의 천민 계급으로, 가축 도살, 사형 집행 등에 종사했으며 봉건 신분제도의 가장 낮은 위치에 속했다. 일본의 신분제는 1868년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철폐됐으나 '동화지구' 출신들은 현재까지 혼인이나 취업 등에서 차별받는다고 한다. 차세대 총리감으로까지 지목받던 하시모토가 최근 같은 극우파에게까지 왕따를 당하는 이유가 이러한 그의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데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자신도 피차별 부락민 출신이었음에도 행정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인권박물관' 보조금 지급을 전액 삭감했다는 사실이다. 하시모토가 지사로 취임할 당시 오사카부는 5조 2487억 엔(약 75조 원)의 부채로 허덕였다. 그는 공무원 임금과 각종 단체 보조금 삭감, 문화예술 지원금 삭감 등을 과감히 추진해 취임 2년 만에 오사카부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그는 2011년, 시장으로 취임한 후에도 각종 공공·예술 관련 지원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시예산을 줄여갔다. 오사카시의 각종 도서관, 박물관 등이 존폐 위기를 맞았고, 특히 오사카인권박물관은 시로부터 받던 보조금 전액(전체 운영비의 약 80%)을 지급 중단 당했다. 인권박물관은 일본 내에서 차별을 받아온 부락민이나 재일한국인, 아이누족, 오키나와 주민, 한센병 환자 등과 관련한 자료들을 소장·전시해왔다. 그 자신도 피차별 부락민 출신으로 차별 폐지에 앞장서야 할 의사결정권자로서, 인권박물관을 없애자고 주장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 하시모토는 2011년 6월 오사카부 지사 시절, 기미가요 제창 시 기립 조례를 제정하며 교육기본조례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같은해 말, 오사카 시장 출마 당시 전쟁 포기와 교전권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헌법 9조)의 개정에 필요한 의원 정족수를 기존 3분의 2에서 2분의 1로 완화하자는 공약도 내놨다. 

극우적 역사인식, 도덕적 마비 상태, 인기에 영합하고자 하는 노골적인 포퓰리즘, 선동적 발언, 적대자에게 싸움을 거는 호전적인 태도, 비관용성이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이다. 하시모토와 파시즘을 합쳐 하시즘 또는 하시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들이다. 위안부, 풍속업 활용 등의 망언으로 코너에 몰린 그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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