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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논란이 뜨겁다. 법안을 발의했던 민주당의 김한길, 최원식 의원,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 중 민주당의 두 의원은 반대에 부딪혀 법안을 철회했지만, 그 뒷이야기와 논란은 아직도 무성하다. 많은 이들이 이 법안의 제정 무산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고, 곧 정부 주도의 차별금지법안이 탄생할 것이 예견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UN 인권이사회에서 각국에 권고하고 있는 내용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14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법안을 발의했던 의원들 중,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과 달리 발의한 법안의 추진을 강행할 것임을 밝혔으며, 정부도 UN 인권이사회에 이 법의 제정을 약속한 만큼 올해 안에 법 제정을 시도할 것이 예상되는 것을 고려해 보면, 논란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필자는, 법안 하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러한 일련의 파열과 대립을 지켜보며, 시종일관 안타까움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것은 일방적 감정이라기보다는, 논쟁 자체에 대한 의문과 복잡한 심경의 복합체였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싸고 형성된 이상한 프레임

일단, 이 법으로 인한 사회적 구도가 굉장히 이상하게 나누어졌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차별금지법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한 세력은, 대형 교회를 비롯한 우리나라 기독교의 '주류 세력'이었다. 그들은 이 법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법이며, 만일 시행될 경우 교회의 활동이 위축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 법에 차별 금지 항목으로 포함된 '사상', '정치적 의견'을 빌미로 비열하고 근거 없는 '종북 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비롯한 일부 대형교회 등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주류 세력'이 특정 정치 세력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대놓고 말하기 남세스러워서 그렇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평소에 그들이 개최하는 극우 집회를 보다보면, '기독교'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인데, 그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 법을 근거로 '매카시즘' 공세를 편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상당히 안타까운 점이었다.

기독교 세력이 '동성애' 등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그치지 않고, 성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 구호를, 그것도 온갖 비방과 욕설을 일삼으며 외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인이라고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기독교인이 정치적 운동을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이름'으로 해야 할 일이지 종교의 본질적인 영역까지 끌어들여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벌일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이렇듯 일부 기독교 세력이 이 법을 무기로 매서운 색깔론 공세를 펼친 다음부터 일어났다. '기독교'와 '보수 단체' 등이 강력한 연합전선을 형성해 이 법에 대한 반대 진영을 형성하자, 정치적 색깔론에 회의를 느끼는 국민들 및 우리나라의 주류 기독교 세력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 등이 모두 찬성 진영에 서서 그들과 대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자신들의 본질을 잃고 종교적 수사까지 동원하며 정치적 공세를 퍼부은 일부 '정치 기독교 세력'은 이러한 '소통이 불가능한' 감정적 대립 구도를 만들어 냈고, 결국 우리 사회에 커다란 지적 손실을 가져오고 말았다.

프레임에 의해 실종된 법률에 대한 이성적 논의

이런 이상한 구도가 형성한 가장 큰 문제점은, 법안 자체에 대한 연구를 실종시키고 바람직한 차별 금지를 위한 방안에 대한 소통을 깨 버렸다는 점이다. 불합리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정신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즉, 이것은 애초에 찬성과 반대로 진영을 나누어 '토론'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의'할 문제였다. 하지만 어느새 고착화된 감정적 대결의 프레임은, 모든 이성적 논의를 실종시켰다. 즉,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이 과연 무슨 법인지를 찬찬히 공부해 보고 뜯어보려는 시도를 해 보지도 않은 채 자신의 입장을 정하는, 또는 정할 것을 강요당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차별금지법이 과연 어떠한 법인지를 살펴보고,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삶을 강력하게 규정할 수 있는 강하고 영향력 있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의되었던 세 개의 차별금지법안을 중심으로, 관련된 중요한 논점들을 몇 가지 짚어 보려고 한다. 진영논리로 섣불리 입장을 정하기에 앞서, 과연 이 법이 차별 금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예상되는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일반적 법제', 과연 실효성 있을까

이번에 발의되었던 세 개의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효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는 점이다. 규정해 놓은 차별 금지 사항들이, 세 법안 모두 20개가 넘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들의 관련 법률과 비교해 보아도 실로 엄청난 숫자였다. 심지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형식적이고 선언적으로 적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반적 대원칙을 규정한 상징적이고 선언적인 법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제재조항과 처벌까지 담고 있는 법으로서는 오류였다.

문제는 법안이 이렇게 포괄적이면, 실효성 있는 차별 금지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개별적으로 논의해도 수많은 케이스들이 양산되는 사항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놓았기에, 적실성 없이 사회적 혼란만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렇게 많은 사항들을 한 데 모은 '일반적 법제'를 만드는 것보다는, 가장 필요한 사항부터 '개별적 법제'로 독립시켜 입법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이 사회에 가장 시급한 성별에 따른 차별 금지, 학력에 따른 차별 금지 등을 '남녀차별금지법', '학력차별금지법' 등으로 세분화시켜 세세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법안이 '포괄적 차별금지법'보다 훨씬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침해할 소지 충분

다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만들기에 앞서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보통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큰 우려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은, 이 법이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에 발의된 세 개의 법안도, 고용과 교육 등에서의 가시적인 차별이 아닌, 주관적 감정인 수치심, 모욕감 등도 처벌 사유가 될 수 있게 해 놓아서 이에 대한 염려를 제거하지 못했다. 즉, 차별 금지 사유로 규정된 사항에 관련된 '정신적 피해'도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성희롱' 등의 일들은 국가에서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주관적 감정의 영역을 이토록 많은 사항에 모두 다 적용시켜서 보호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게 될 경우, 개인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의된 세 개의 법안 중, 민주당 최원식 의원이 발의한 법안만 유일하게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로 규정하여 처벌할 수 있는 경우를 5가지(성별,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장애)와 관련된 사안으로 한정시켜 놓았다. 하지만 나머지 두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그런 최소한의 제한조차도 전혀 없었다. 차별 금지 사항으로 명시된 20개가 넘는 사항들이 모두 '주관적 감정'과 엮여서 처벌 사유가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이번에 발의된 법에 따르면, 성 소수자, 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 조장 발언뿐 아니라 기득권과 다수에 대한 정당한 비판도 같이 규제당할 수 있다. 법안 자체가 양자가 전혀 다른 층위에서 논의되지 않게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논란은 예전의 '사이버 모욕죄'와 '표현의 자유' 논쟁과 상당히 닮아 있다.

'상생' 개념 바탕으로 바람직한 차별금지법 논의 필요

결국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함께 살자'가 될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여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고 함께 이 사회를 살아나가자는 것이 이 법안의 취지일 것이고, 여기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믿는다. 한마디로, 차별금지법은 '상생을 위한 법'이다. 상생은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존재의 상생'과 '가치의 상생' 모두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성 소수자나 장애인 등을 '함께 살아서는 안 될 사람들'로 규정하고 물리적 폭력이나 테러를 가하는 행위로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시도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법으로 규제하고 처벌해야 마땅하다. '존재의 상생'을 거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지켜져야 할 중요한 가치가 '가치의 상생'이다. '존재의 상생'을 위한 노력에서 탄생한 법이 '가치의 상생'을 막는다면 옳은 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가지 가치의 강요'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장 첨예한 대립이 이루어지는 지점인 동성애에 관해 설명하자면, 동성애 자체를 '옳은 것'으로 볼 것이냐, '옳지 않은 것'으로 볼 것이냐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개인의 성적 취향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바른 성 개념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한 필자처럼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동성애가 옳지 않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동성애를 '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렇게 말했을 경우, 그 사람은 (최소한 이번에 발의된 법에 따르면) 범법자가 되어 처벌까지 받을 가능성이 있다.

성 소수자들에 대해 어떠한 가시적인 차별 행위도 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표현'만 했다고 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주관적 감정까지 처벌 사유로 규정해 놓은 법 조항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 법의 취지는 '존재의 상생'을 위한 것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그것을 위해 결국 '가치의 상생'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귀결되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차별금지법을 기대한다

정리하자면, 이번에 발의되었던 3개의 법안은, 너무나 성급하고 내용이 부실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너무나 포괄적인 법안이 불합리한 차별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가 큰 의문거리였다. 또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는 근절해야 할 일이지만 가시적인 영역을 떠나 그것을 조장한다고 여겨질 만한 '발언'이나 '표현'까지 규제하려는 것은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설령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실제적인 '차별'과 '혐오'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그것을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남녀 차별, 장애인 차별, 비정규직 차별 등 불합리한 차별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에 의원 입법의 형태로 발의되었던 3개의 법안은 선뜻 찬성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공은 법무부로 넘어갔다.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부디 정부는 조금 더 합리적이고 자세한 차별금지법안을 내어 놓기를 기대한다.


태그:#차별금지법, #기독교, #김한길, #최원식, #김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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