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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화면 갈무리 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1980년 5월 광주에 남파되었다는 전 북한군 특수부대원 김명국(가명)씨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화면 갈무리 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1980년 5월 광주에 남파되었다는 전 북한군 특수부대원 김명국(가명)씨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 채널A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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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종합편성채널(종편)인 <TV조선>과 <채널A>가 1980년 5·18 때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북한이탈주민의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채널A>는 15일 시사 프로그램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1980년 5월 북한군으로 광주에 남파됐다고 주장하는 북한이탈주민 김명국(가명)씨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김씨는 방송에서 "전라도 사람들은 광주 폭동이 그렇게 들통 나면 유공자 대우를 못 받는다", "광주폭동 때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 "머리 좀 긴 애들은 다 (북한) 전투원"와 같은 말을 했다.

<채널A>는 또 "김씨 증언에 따르면 김씨가 부대원과 정찰부대 남한전문가 등 50명과 함께 북한 황해도 장연군을 떠나 서해안에 도착한 게 5월 21일 밤. 밤길을 걸어 23일 오전에 광주에 들어갔다"며 "이미 북한군이 여럿 들어와 있었고 이들이 시민군과 함께 전투를 치르며 장갑차도 몰았다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TV조선>도 지난 13일 시사 프로그램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5·18은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한 무장폭동'이라는 주장을 내보냈다. 이날 방송에서 북한 특수부대 장교 출신이라는 임천용씨는 "5·18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침투했다", "(5․18 당시)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라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5·18재단 "역사 왜곡에 대처 방침" 밝혀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16일 논평을 내고 "어제 <TV조선>에서 내보낸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황당한 소설 같은 얘기에 대해서 당이 어떻게 대처할지 말씀드렸는데, <채널A>에서도 동일한 방송을 무책임하게 국민들에게 내보냈다"며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나와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 방송이 이래도 되는지 하는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고 질타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민주당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숭고한 뜻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이번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용납할 수 없는 체제 도전행위로 규정한다"면서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와 제도적 제재조치를 요청하고 진행하겠다"고 민·형사상 대응을 예고했다.

송선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도 "5·18 왜곡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5·18 관련자들에게 또다시 죽음과 같은 고통을 주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다. 5·18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에 정부가 나서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은 5·18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인단을 꾸려 대처할 방침을 밝혔다.

트위터 등 SNS에서도 종편 보도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TV조선> 보도와 관련, "TV조선, 5·18은 600명 규모의 북 특수부대가 개입한 무장폭동이라는 전 북한군 장교의 발언 소개. 5·18 이후 독재정권이 유포했던 5·18 폄하 발언을 30년 후 다시 듣게 되다니"라며 "군부가 총칼로 장악하고 있던 1980년 남한 땅에 북한군 600명이 어떻게 광주까지 침투할 수 있었을까? 육로로? 잠수정타고 바다로? 기가 막힌다!"고 개탄했다.

'북한 개입설' 주장 근거는 신군부로 거슬러 올라가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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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 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주장의 뿌리는 1980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육군 대장은 1980년 5월 21일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들에 의하여 조종되고 있다'는 내용이 적힌 경고문을 뿌렸다. 하지만 1997년 4월 열린 12·12 군사반란 및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내란 목적 살인 혐의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그는 "(경고문이) 다소 과장된 점이 있는데 당시로서는 그런 의심이 있어 그랬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학봉 전 국군보안사령부 정보처장도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성명으로 보이고 그 당시 분석 경위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요로 폄하하며 고정간첩이 개입했다는 신군부의 주장은 그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2000년대 들어 더 노골화된다.

지난 2002년 8월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에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라는 광고를 낸 것. 지씨는 이후에도 '5·18은 북한특수부대가 참전하고 기획·연출한 사건이며 제주 4·3사건에서처럼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해놓고, 이를 국가와 군에 뒤집어씌워 국가와 국민을 이간시킨 모략전'이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후 지씨의 주장에 일부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세하면서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은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TV조선>에 나와 '5·18 당시 전남도청을 북한 게릴라들이 점령했다'고 주장한 임천용씨다.

일부 탈북자 주장 검증 불가능, 신뢰성에 의문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를 맡고 있는 임씨는 지난 2006년 12월 20일 기자회견에서 "광주사태의 발단과 시발점은 민주화봉기였다고 인정하지만 수많은 인명이 무참히 살상되고 끔찍하게 도륙당한 유혈적인 사건은 김정일 정권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테러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10년 6월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파견됐다더라", "평양에서 좌천된 당 간부의 얘기를 들었다"거나 "고향의 선배가 직접 다녀왔다더라"는 전언들만 나와 있을 뿐 북한군 개입의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임씨의 과거 전력을 들어 그의 주장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북한을 탈출해 지난 1999년 한국에 입국했던 임씨는 2004년 8월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들어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기각당한 후 강제추방 형식으로 국내 송환됐다. 임씨는 미국에서 '북한에서 휴대용 핵폭탄을 은닉, 특정지역에 침투하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중요인물을 암살하도록 특수훈련을 받았다'고 믿기 힘든 주장을 하기도 했다.

<채널A>와 인터뷰에서 5·18 당시 남파됐다고 주장한 김명국(가명)씨의 말도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지만원씨가 쓴 <솔로몬 앞에 선 5·18> 237페이지에 김씨와 관련된 언급이 나온다.

"19세에, 북한특수부대 지휘관을 호위하고 광주에 왔던 북한병사 정명X가 중좌로 예편한 후 2006년 탈북하여 분당에 거주하면서 국정원이 알선해 준 모 국영기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그가 광주에 왔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국정원은 '입을 봉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는 협박과 함께 보안각서를 쓰게 했다. 우익운동을 하시는 원로급 인사 몇 분이 그를 만나 이를 확인했다."

김씨가 국내에 입국하면서 국정원의 협박으로 쓴 보안각서 때문에 광주에 남파되었던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한 이주성 한반도평화국제연합 대표(<김일성, 광주사태 북한군 남파 명령> 저자)는 '김명국씨가 왜 직접 나와 말하지 않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김씨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언젠가는 다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며 "남한 정부 당국에서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도 했다"고 주장했다.

조갑제씨도 "증거 없어...의혹 갖고 나서면 역공당할 것"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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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부 탈북자들의 '북한군 개입설' 주장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보수논객 조갑제씨 조차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함이 타당할 것"이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조씨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1980년 5월) 당시는 계엄령이 펴진 상태였다.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어떻게 침투한단 말인가? 광주 인근에 낙하산으로 내렸단 말인가? 침투병력 중 3분의 2가 희생되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들을 섬멸한 국군이 있을 것 아닌가?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부대 표창을 받는데 수백 명을 사살한 국군 부대가 이 자랑스런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라고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애국단체들이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진실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희망적 기대를 갖고 근거가 약한 의혹 수준의 첩보에 근거해서 행동하면 역공을 당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왜곡된 정보가 범람하는 것에 대해 오승용 전남대 5·18 연구교수는 16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1980년 신군부를 통해 만들어진 왜곡된 정보가 지금은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5·18 왜곡 사이트들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며 "당시 신군부가 정권 정당성 확보를 위해 만든 논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고 밝혔다.

또 오 교수는 "탈북자 증언은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데 언론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하고 있다"면서 "탈북자들을 이용해 몇몇 언론이 만드는 증언에 대해서는 왜곡된 담론이 어떻게 가는지 냉철한 판단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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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