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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로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다섯 명이 가스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고 왜 죽음을 당했을까요? 사고 후 남겨진 이야기들을 취재해봤습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현대제철 전로 수리 노동자들의 간식시간 사진. 전로 수리를 맡은 한국내화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의 지속적인 공정 단축으로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를 돌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한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현대제철 전로 수리 노동자들의 간식시간 사진. 전로 수리를 맡은 한국내화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의 지속적인 공정 단축으로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를 돌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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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진짜 21번 살인 미수하다가 한 번 살인한 사건이에요. 책임자 찾아서 다 감빵(감옥) 넣어야 되요."

14일 충남 당진종합병원 지하 1층 빈소에서 만난 한국내화 노동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모았다. 자신이 아니었을 뿐 현대제철 전기로 수리를 담당하는 약 300명의 노동자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참변이었다.

지난 10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전로 보수공사를 하다 산소부족으로 협력업체 한국내화 소속 노동자 5명이 사망한 후 회사 동료들은 유가족들을 통해 이전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들이 그간 맡았던 24회 보수작업 중 22회가 이번과 같은 동시작업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 그들은 "몰랐을 땐 들어갔지만 이제 어떻게 작업할 수 있겠느냐"면서 극도의 불안감을 내비쳤다.

노동자들은 이번 사고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현대제철의 '돈벌이 욕망'을 꼽았다. 이날 만난 복수의 노동자들은 "전로 가동 6시간 앞당겨서 몇 억 벌려다 다섯 명 죽어나간 것"이라면서 "현대제철은 주어진 공정표도 무시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14일 당진종합병원에 마련된 한국내화 사망 노동자 5명의 빈소를 찾은 동료 직원이 조문하고 있다.
 14일 당진종합병원에 마련된 한국내화 사망 노동자 5명의 빈소를 찾은 동료 직원이 조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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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이 지시한 '동시작업'이 사고 불렀다"

지난 10일 오전 1시 45분. 당진제철소 B지구 내 3전로 안에서 내화벽돌 보수 마무리 작업을 벌이던 한국내화 노동자 5명이 질식해 사망했다. 전로는 철광석을 녹인 쇳물에서 황, 인, 탄소 등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이 이뤄지는 곳으로 제철소 핵심 시설 중 하나로 지름 8m, 높이 12m의 거대한 항아리 모양이다.

한국내화 직원 유성우(가명)씨는 "전로 보수작업을 마치고 마무리를 위해 바닥으로 내려가던 도중에 높이 8m 지점에서 갑자기 5명이 픽픽 쓰러졌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감전 사고라고 생각해서 즉각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높이에서 감전 말고는 사람이 쓰러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

그러나 사인은 질식사였다. 전로에서는 쇳물 불순물 제거를 위해 아르곤 가스를 사용하는데 이 가스는 산소보다 무거워서 밀폐된 공간에서는 질식을 유발한다. 현대제철 측은 사고발생 반나절 전인 9일 오후 아르곤 가스 주입 등 전로를 2시간가량 시험가동을 시켰으며 사고 당시 전로 내 산소농도 역시 기준치인 22%에 미치지 못하는 16%로 나타났다.

한국내화 정비부 소속 노동자들은 사고의 원인으로 '동시작업'을 지목했다. 전로 보수를 할 때는 원칙적으로 연결된 모든 가스 밸브를 분리하고 보수작업을 마친 후 연결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다른 하청업체에서 밸브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내화 직원 원상훈(가명)씨는 "현대제철 측에서 제시한 공정표에 따르면 내화물 보수작업 후 전로에 뚜껑을 씌운 후 6시간 동안 밸브를 연결하고 가스가 새는지 검사하는 리크테스트(leak test)를 하기로 되어 있다"면서 "그 6시간 아끼려고 같이 작업시키다가 사람 죽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 측이 유족에 제공한 3번 전로 보수 공정표. 내화물(내화벽돌) 수리를 마친 후 6시간 동안 밸브 연결, 조립 등 가동 전 작업을 진행하기로 짜여져 있다.
 현대제철 측이 유족에 제공한 3번 전로 보수 공정표. 내화물(내화벽돌) 수리를 마친 후 6시간 동안 밸브 연결, 조립 등 가동 전 작업을 진행하기로 짜여져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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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니까 들어갔지... 알았으면 미쳤다고 작업하겠나"

동료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비통해하던 한국내화 동료 노동자들의 감정에 분노가 섞이게 된 것은 사망 노동자 유가족들이 사고에 대한 현대제철 측 설명을 듣고 돌아온 후부터다. 유가족 이 아무개씨는 "현대제철 측에서 동시작업에 대해 인정하면서 24번 보수 중 22번을 이번과 동일한 방식으로 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20번 넘게 그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할 만큼 문제가 없는 방식이라는 뉘앙스였다"고 덧붙였다.

"저는 잘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이번에 죽은 사람들이 전로 바닥에서 8미터 높이에서 쓰러졌는데 그럼 전로 2/3가 아르곤 가스로 차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그게 문제가 없는 방식이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건지…."

유족 이 아무개씨가 현대제철에서 설명받은 당시 상황을 종이컵으로 표현하고 있다. 10일 새벽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는 지름 8m, 높이 12m를 보수하러 들어간 노동자 5명이 전로 2/3 지점에서 질식사하는 참변이 벌어졌다.
 유족 이 아무개씨가 현대제철에서 설명받은 당시 상황을 종이컵으로 표현하고 있다. 10일 새벽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는 지름 8m, 높이 12m를 보수하러 들어간 노동자 5명이 전로 2/3 지점에서 질식사하는 참변이 벌어졌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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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공장은 보유 전로 3기에 대해 각각 6개월에 한 번씩 보수공사를 한다. 이 공사는 한국내화에서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내화 직원들은 통상 1년가량 근무하면 누구나 7번 이상은 전로 수리에 참여하게 된다. 이번 노동자들의 죽음이 남 일이 아닌 셈이다.

한국내화 정비부 직원인 김현철(가명)씨는 "이전에도 항상 전로 마무리 작업하는 팀은 작업을 하고 나면 머리가 2~3일은 아팠다"면서 "유족들 설명을 들은 후에야 그때도 현대제철이 이번처럼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전까지는 당연히 몰랐으니까 들어갔지 가스 밸브가 연결된 걸 노동자들이 알았으면 미쳤다고 거길 들어갔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로 보수 중 일어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로 보수 경험이 많은 노동자들은 아르곤 가스 말고도 다른 대형참사 미수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한국내화 직원 박석희(가명)씨는 "지난 해 중순 쯤에는 보수중인 전로가 기울어지는 '경동' 사고가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전로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데 현대제철 측에서 회전을 막아주는 브레이크 교체작업 지시를 잘못하는 바람에 노동자들이 전로에 들어간 후 전로가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박씨는 "작업하느라 설치해놨던 발판이 우연히 전로에 끼이면서 15도 정도만 돌아가고 멈춰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서 "360도 돌아갔으면 작업하던 인원 십여 명은 5층 건물 높이에서 자재들과 함께 쏟아져서 다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남정민씨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전로 보수 노동자 사진. 한 노동자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고 남정민씨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전로 보수 노동자 사진. 한 노동자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 남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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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공정 '쪼임'에 간식도 전로 안에서 먹어"

한국내화 직원 이진철(가명)씨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현대제철의 유난한 돈벌이 욕망에 돌렸다. 초창기 전로보수 작업에 주어졌던 기간은 12일. 그러나 현대제철이 점점 보수기간은 반나절씩 줄이더니 이번에는 6일 10시간을 줬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보수기간을 맞추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갈수록 이 작업과 관련한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 일한 시간 만큼 월급이 나오기 때문. 이씨는 "6일 10시간 내에 보수 하려면 무조건 24시간을 2조 2교대로 돌려야 한다"면서 "전로가 쉬는 보수 공정기간이 줄어들수록 현대제철은 수십억의 돈을 더 벌수 있겠지만 정작 기간을 단축해주는 노동자들은 얻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 1년차 직원이 한 달에 2~3일 쉬면 수당 포함해서 월급 170만 원 정도 나와요. 공기 단축해주면 보너스라도 받아야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그냥 '쪼는'거에요. 갈수록 숙달이 되지만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시간을 무작정 당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는 "작업시간에 쫓기니까 간식도 탄소가루 날아다니는 전로 안에서 먹는다"고 털어놨다. 공정기간 단축에 대한 열매는 현대제철이 독식하고 있고 이번 사고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변을 당한 고 이용우씨는 이런 작업환경에 대해 지난해 자신의 SNS에 "보니까 우울해지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고 채승훈씨는 "꿀빨(편하게 할) 생각하지 말고 내 대신 들어와 주세요"라는 글을 썼다.

이씨는 "공정을 어기고 동시작업을 진행시킨 책임자를 찾아내 형사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공정일정은 현대제철에서 통보하는 것이고 관련 책임자 문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작업 절차상 밸브 연결과 리크 테스트를 맡고 있는 하청업체는 현대제철 관계자의 명령이 없으면 아무 작업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대제철에서 잘못했다고 말은 하는데 누가 잘못했는지는 말을 안 해요. 그런 건 경찰 조사 없어도 그냥 당일 작업일지 보고 출근부 보면 다 나오는 거거든요."

이에 대해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대제철에서는 경찰 수사에 최선을 다해 협조를 하고 있다"면서 "그 이외의 부분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태그:#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한국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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