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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5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한명라씨! 한명라씨! 택배왔습니다!"

지난 3월 8일 오후, 대문 밖에서 택배기사분이 저의 이름을 부릅니다. '분명 주문한 물건이 없는데, 무슨 택배지?' 하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었더니, 제법 부피가 큰 박스를 들고 기사분이 마당에 서 있습니다. 박스를 받아서 확인해 보았더니, 받는 사람 이름에 정확하게 '한명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박스 크기와는 다르게 무게는 무척 가볍기에, 내용물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무뚝뚝한 남편이 결혼 22주년 기념으로 깜짝 선물로 보낸 비누꽃 바구니...
▲ 비누꽃 바구니 무뚝뚝한 남편이 결혼 22주년 기념으로 깜짝 선물로 보낸 비누꽃 바구니...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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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와서 박스를 열어 보았더니, 전혀 예상치도 않은 꽃바구니가 들어 있습니다. 생화로 된 꽃바구니가 아니고, 무척 은은한 향기가 기분을 좋게 하는 비누로 만든 꽃바구니입니다. 꽃바구니와 함께 도착한 카드를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제 마음은 따뜻함으로 가득 차는 듯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마음은 가득하지만, 자상하게 못해주는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소중한 당신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요.

당신만을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무뚝뚝하기로 말하자면 세상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경상도 남자인 남편이, 아무런 낌새도 없이 저에게 꽃바구니를 보낸 것입니다.

남편을 처음 만난 때는 1990년 4월이었습니다. 그때 경상도 총각인 남편은 28살, 전라도 처녀인 저는 27살이었습니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경상도 총각은 부산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전북 오수가 고향인 전라도 처녀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때였습니다.

경상도 총각은 저의 셋째 형부의 친구분이 사장인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전라도 처녀는 4년제 대학을 2번의 휴학 끝에 6년 만에 졸업하고 결혼자금도 스스로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나이까지 맞선도 거절하고 나이만 들어 가족들의 마음을 애태우고 있었습니다. 총각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을 이야기한다면 무척 까다로운 성격으로, 쉽게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경상도 총각 직원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깊어져서, 그 총각 직원과 친구의 처제와의 만남을 선뜻 주선했습니다.

1990년 4월초, 경상도 총각을 만났습니다.
▲ 경상도 총각 1990년 4월초, 경상도 총각을 만났습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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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14일 토요일 오후 2시, 두 사람은 잠실 석촌동에 있는 호텔 로비에서 만났습니다. 첫 만남에서 전라도 처녀는 경상도 총각의 예사롭지 않은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처녀는 그날의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 다시는 만날 것 같지 않았기에 부담이 없었고, 마음 편하게 저녁식사도 하고 카페에서 차도 마셨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총각은 두 살 위인 형님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까닭에 시간을 가지고 친구처럼 편하게 만나자 했고, 그때까지도 연애경험이 없던 처녀도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말 없이 전해지는 '경상도 싸나이'의 사랑

2013년 올해로 우리 부부는 결혼 23년째입니다. 1991년 3월 9일 토요일,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있는 윤봉길기념사업회관에서 첫 만남 이후 1년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날은 3월인데도 불구하고 하루 전부터 많은 눈들이 푸짐하게 내렸습니다.

결혼식 이후 23년 동안 두 사람이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이야기들이 한두 가지만 있을까요? 서울 잠실 석촌동의 단독주택 반지하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연년생으로 1녀 1남,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결혼 2년 후인 1993년 3월에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시댁이 가까운 경남 창원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경상도 총각을 만난지 1년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 결혼식 경상도 총각을 만난지 1년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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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남편과 전라도 아내. 두 사람은 지역적인 이유보다도 각자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결혼후 한동안 서로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적도 있었습니다. 2남 2녀 4남매 중 막내인 남편은 부모님에게서 남다른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습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그대로 표현하듯 우리 두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요.

저는 5남 7녀 12남매 중에서 11째로 태어났습니다. 남들보다 많은 자식들, 공부해야 할 때를 놓치지 않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바쁘게 살아오신 엄마에게서, 남편이 받은 자상한 보살핌과 사랑은 감히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자신의 일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했습니다. 자신에게 생긴 웬만한 상처쯤은 스스로 소독약을 바르거나 붕대를 감았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성장 환경이 달랐기에 아이들에게 표현하는 사랑도 달랐습니다. 웬만한 일이나 상처쯤은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기를 바라는 저와는 달리, 남편은 아이들의 모기에 물린 작은 상처에도 직접 연고를 발라주고, 아이들에게 다가올 어려움까지도 미루어 짐작하여 미리 앞서서 단도리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굳이 말로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표시 없이 보이지 않게 상대방을 원하는 일, 상대방에게 필요할 것 같은 일을 해결해주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상대방이 더 감동하게 합니다.

저희 부부는 2007년 2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5년 동안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저의 여동생이 서울에서 영어학원을 개원하면서 저에게 함께 일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생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남편과 두 아이를 둔 가정주부가 서울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무뚝뚝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누구보다 자상한 아빠입니다.
▲ 자상한 아빠 무뚝뚝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누구보다 자상한 아빠입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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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즈음 2006년 12월, 시아버님의 생신 때였습니다. 시댁 식구 모두 한자리에 모였을 때, 남편이 아주 편안하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처제가 서울에서 영어학원을 하려고 하는데 아이들 엄마에게 함께 일하자고 합니다. 나는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는지요?"

당사자인 저조차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던 터이기에, 저는 당연히 시댁 식구들이 반대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시아버님을 비롯하여 손위 시누이들조차 이구동성으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동생은 믿어도 된다. 올케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서울로 가서 일을 해봐라. 서울에 가서 지내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내려와도 되고" 하고 말해줬습니다.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저의 2007년 2월부터 서울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세 곳으로 헤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경남 창원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전남 담양에, 그리고 저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서울에.

그렇게 시작된 주말부부 시절 남편은 소리없이 딸과 아들, 그리고 마누라를 위해서 자신만의 기도를 두꺼운 대학 노트에 정성을 담아 글로 적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남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노트에 적어 준 글의 깊은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남편의 말에 의하면 <반야심경>과 여러 불교 서적을 읽고 자신이 깨닫게 내용을 두 아이와 마누라를 위해서 적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누가 나로 하여금 사람으로 태어나 참을 닦는 길에 매하지 않게 하였는지 그 경사롭고 다행함을 어찌 말로 다 하리오. 방일심을 내지 말며, 해태심을 내지 말며, 탐욕과 음욕에 애착하지 말고, 반야의 지혜로써 자성본리를 비추어 봄을 잊지 말게 하라'는 글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아이와 아내를 멀리 떠나 보내고 혼자 생활을 하게 된 남편은, 가족들을 위한 염려와 간절한 사랑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노트에 적어 깜짝 선물로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남편의 정성이 담긴 기도가 적힌 노트는 두 아이와 저를 위한 노트 말고도 2권이 더 있습니다. 당시에 자신의 처지를 많이 힘들어하던 처제와 엄마를 잃고 상심해하던 저의 친정 조카에게 남편은 자신의 정성이 담긴 노트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겉모습은 무뚝뚝해 보여도, 내면으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속이 깊은 남편의 사랑은 제가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사랑입니다.

남편의 기도가 담긴 노트
 남편의 기도가 담긴 노트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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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지 못할 만큼 많은 빚을 남겨주지 않아서 고맙다"

결혼생활 23년 동안 우리 부부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함께 했습니다. 크고 작은 많은 일들과 더불어 지금의 집에 머무르기까지 총 9번의 이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훌쩍 자라서 딸아이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 아들은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10년 전 2003년 5월에는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고, 3년 전 2010년 6월에는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에는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힘들었던 일과 슬펐던 일, 그리고 즐거웠던 일과 행복했던 일들을 남편과 함께 겪어오면서 남편과 저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졌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인 제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살기보다는, 저의 이름으로 살아가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행여 저의 부족함으로 한때 서운함을 느끼게 되었을 때에도 각자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었습니다. 부부 사이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고, 서로 대등한 관계라고 인정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인 제가 자신을 포기하고 무조건 남편을 따라주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인 저의 희생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무뚝뚝한 남편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서툴기에, 아내인 제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화가 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오히려 제가 자신에게 갚지 못할 만큼 많은 빚을 남겨주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을 해서 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기도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은 다른 상대방에게 갚지 못할 많은 빚을 지워주는 것이므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살아온 23년의 시간에 더하여,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얼마만큼 허락되는지 저는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살아갈 생활은 어떠하리라고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무뚝뚝한 남편이 23년 동안 저에게 보여준, 말없이 보여주는 속 깊은 사랑만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나만 쏙 빼놓고, 셋이서 함께~
▲ 남편과 두 아이들 나만 쏙 빼놓고, 셋이서 함께~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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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저는 남편에게 매주 토요일이면 왕복 5시간 거리를 운전하여 친정엄마의 천도제에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장거리운전을 해야 하는 저의 안전을 위하여 소리없이 저의 자동차에 선팅을 새로 해주고, 내비게이션을 설치하여 주었고, 엔진오일을 점검하고 교체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과묵하여 말이 없는 남편이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서툴러도, 소리 없이 우리 두 아이에게, 시댁 식구들과 시아버님께, 자신의 처가 식구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상한 배려는 말로 표현하는 사랑보다 더 깊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부부는 오래전부터 서로 합의를 본 일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생일이나 어느 특정한 기념일에 선물을 챙겨주고 그날만 잘하기보다는 매일 매일 상대방을 힘들게 하지 말고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며 잘 지내자고요. 평소에 원수처럼 싸우면서 지내다가 무슨 기념일에만 잘 지내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남편의 말에 저 또한 동감을 표했습니다.

그런 남편이 예전과 다르게 결혼기념 축하 꽃바구니를 깜짝 선물로 보낸 것은 다른 배려와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친정엄마를 떠나보내고, 천도제에 참석하기 위해 매주 장거리 운전을 하는 마누라를 위해 저의 자동차 점검을 소리없이 해주던 그 마음처럼, 엄마를 떠나 보내고 마음 아파하는 아내를 위로해주려는 속 깊고 따뜻한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요.

남편의 꽃바구니와 축하 카드를 확인하고, 저 또한 애교 없기로는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지만, 곧 바로 남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꽃바구니 선물 고마워요~ 결혼기념일 선물인가요?^^ 센서티브한 당신! 감사하고, 사랑해요~^^

2012년 중국여행에서...
▲ 중국여행 2012년 중국여행에서...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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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경상도 남편, #전라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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