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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마레호 집 밖의 모습.
 푸마레호 집 밖의 모습.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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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마레호 외관에 설치된 주민 형상의 설치물과 글귀. '미래를 바라보는 과거의 집'이라고 적혀 있다.
 푸마레호 외관에 설치된 주민 형상의 설치물과 글귀. '미래를 바라보는 과거의 집'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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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비야의 한 광장을 지나다 보면 멈칫 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물이 있다. 오래되어 폐허로 남은 건물인 듯도 하고, 건물 밖에 붙은 글귀며 건물 테라스의 사람 모형과 문구들을 보면 뭔가 남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는 듯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이 건물은 '푸마레호 집'(casa de pumarejo)이다.

이 건물의 이야기는 1785년 세비야의 한 귀족 페드로 푸마레호(Pedro Pumarejo)가 세비야 성벽의 경계 지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대저택을 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집 앞의 땅을 사들여 같은 이름의 푸마레호 광장(Plaza de pumarejo)도 만들었다. 얼핏 보면 돈 많은 귀족의 사치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의 사치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굳이 자신의 저택을 부자들이 사는 지역이 아닌 성벽의 경계지대 즉,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지은 것. 그는 가난한 이웃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집 앞 광장을 만들어, 광장에서 즐기고 누구나 자신의 저택의 열린 문을 통해 방문하게 했다. 건축 양식에 있어서도 그 당시 종교적 건축양식과는 전혀 별개의 독창적 건축 스타일로 건축 하는 등,  푸마레호는 뭔가 자신만을 독특한 철학이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 집의 역사는 푸마레호 사망 이후 집의 소유를 시에 넘기면서 그 기능 또한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공공학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숙소로 활용되던 이 공간은, 스페인 독립 전쟁 당시에는 프랑스 군에 의해 감옥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전쟁이후에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성인들을 위한 교육 시설 역할을 했고, 세비야 최초 공공도서관이 되기도 했다.

1865년 이후부터 공동 주거공간 역할을 시작한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공동 주거 생활을 하며 삶을 나누는 곳으로 그 중요성을 더해갔으나 1900년대 이후 건물의 주인이 불명확하고 각 공간들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분할되어 소유되면서 건물은 점차 그 기능을 잃어, 버려진 집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한 호텔 그룹이 건물 절반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호텔로 재건축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 집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 것.

이 건물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던 사람들과 기존 거주민들을 중심으로 푸마레호 집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고,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공간으로서 삶의 이야기를 담은, 특히 공동체라는 키워드를 꾸준히 유지해온 이 집의 역사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결과 12년째 이 건물은 끊임없이 그 역사와 현재를 위해 싸우고 있는 삶의 공간으로, 세비야의 의미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지역화폐 '푸마'의 실험

지역화폐 컨퍼런스 행사 모습.
 지역화폐 컨퍼런스 행사 모습.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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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 푸마(PUMA).
 지역화폐 푸마(PUMA).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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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봄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웃도는 세비야의 푸마레호 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작년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는 두 번째로 열리는 '2013 지역 화폐 컨퍼런스'(Encuentro de Monedas locales)가 10일부터 12일까지 이곳 세비야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스페인 각 지역 뿐 아니라 이웃 나라에서 지역 화폐에 대해 고민하는 총 32개 단체, 111명의 참석자들이 3일간 이 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의 중심에 있는 '푸마(Puma, http://monedasocialpuma.wordpress.com/ )'는 바로 앞서 소개한 푸마레호 집을 중심으로 2012년 3월 시작된 세비야 구시가 북쪽을 아우르는 지역화폐 이름이다. 2009년 푸마레호 집을 지키기 위한 오랜 싸움 끝에 세비야 시청이 푸마레호 건물 전체를 매입하고 이 건물을 사적 용도의 건물이 아닌 공공 용도의 건물로 유지할 것을 승인했다. 이후 공간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많은 토론회가 열렸고, 그 토론 가운데 '탈성장(descrecimiento)'이라는 모토의 모임이 구성됐다. 이 모임을 통해 여러 공동체 문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지역화폐 푸마다. 화폐 이름이 '푸마'인 것은 당연히 화폐의 탄생 공간, 푸마레호에 기인한 것이다.

푸마는 이제 갓 1년 된 지역화폐이지만 이미 608명의 조합원이 참여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아마도 최근 스페인 경제위기와 맞물려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대안 경제와 삶의 모델에 대한 고민과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한 영향도 크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푸마 활동가들은 "푸마가 단지 경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탄생한 한시적 출구가 아닌 기본적임 삶의 관점을 전환하고자 하는 지속적 흐름 안에 있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푸마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매달 두번째 주 토요일에 푸마레호 광장에서 열리는 교환 시장으로, 생산지에서 직접 가져온 유기농 식재료,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들, 재활용 물건들과 같은 눈에 보이는 물건부터, 마사지, 춤 교실, 언어교실 등의 재능 교실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통해 푸마를 벌고, 또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얻으며 푸마를 소비한다. 이를 통해 단순 소비자나, 판매자가 아닌 소비와 판매의 과정 안에서 화폐의 순 기능을 경험하는 것이다.

농담처럼 즐거운 희망이야기

매주 두번째 토요일에 열리는 푸마마켓
 매주 두번째 토요일에 열리는 푸마마켓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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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함께 꿈꾸는 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르코(PUMA-SEVILLA) : "우리는 세비야의 화폐로서 푸마가 자리 잡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시스템으로서의 푸마는 의미가 없다. 푸마를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고, 이를 본보기로 많은 지역에서 이와 같은 모델의 삶을 실험하는 것, 느리지만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살바도르 (CASA de PUMAREJO) : "푸마레호 집의 가장 큰 상징성이라고 한다면 바로 '공동체'다. 하지만 내가 주인이 되는 공동체이다. 내가 없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 모두가 '나'로서 무언가를 해나갈 때만이 공동체는 지속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집의 과거를 통해 그렇게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로라 (ZOQUITOS- JEREZ) : "이미 우리는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안다. 오랜 시간 교육되고, 지속되어온 삶의 습관을 한순간에 버리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선택이 아닌 변화가 필요한 한계 지점에 와있다.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삶의 양식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여기에 있다."

3일간 다양한 포럼 안에 소개되는 각 지역의 사례들과 각자가 꿈꾸는 미래들, 행사 중간중간 만나는 사람들과의 지나가는 대화, 그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문득 필자는 '우리는 지금 뭔가 농담을 하고 있는 중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기분 좋은 농담 같은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지속될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해진 기존 질서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요즘, 한 발자국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힘은 이 진지한 농담 같은 희망 속에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태그:#푸마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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