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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원폭2세환우의 삶을 담은 김환태 감독의 다큐멘터리 <잔인한 내림-遺傳>이 지난해 10월 말 첫 공개된 이래, 서울환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등 각종 영화제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공동체 상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는 한국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면서,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남긴 상흔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조명하고 있다. 오는 25일 열리는 서울인권영화제(청계광장)에서도 상영될 영화 <잔인한 내림-遺傳>의 김환태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큐 <잔인한 내림-遺傳>
 다큐 <잔인한 내림-遺傳>
ⓒ 김환태(다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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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말에 첫 시사회를 가진 이래,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가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계셨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감춰진 현실을 조금은 놀랍고 안타깝게 바라봐 주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인 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님의 아픔에 대해 많은 공감을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때론 울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 하면서, 원폭2세 환우들의 문제를 새롭게 봐 주시는 듯 했습니다.

며칠 전 서울환경영화제 상영 때 영화를 보신 관객분들 또한 "가슴이 먹먹하다", "내가 이렇게 모르고 있었다는 게 정말 미안하다", "아주 오래 전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핵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들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고 하셔서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힘도 받기도 하고 또 다른 사명감도 생겼습니다."

-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2012년 3월경에 합천에서 비핵평화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상영할 짧은 영상물을 기획하면서 이 작품을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2011년 말 쯤부터 한정순 회장님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분의 삶과 후쿠시마 이후의 한국의 핵문제, 현실의 문제를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7년 전부터 원폭2세환우분들과 동행하면서 중요한 활동들은 계속 기록해 오고 있기도 했고요. 특히나 원폭 2세 환우 분들의 삶의 과정이나 현실이 너무 힘들고 먹먹하게 느껴졌었는데, 그분들의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 원폭피해자 문제, 특히 원폭2세환우 문제를 작품화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어떻게 원폭2세환우문제와 만나게 되었나요?
"처음은 우연한 기회에 광복 60주년 이면의 원폭 60주년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이 문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도였습니다. 그리고 감춰진 비밀 같은 이야기인 원폭 피해자, 특히 아픈 2세 분들의 삶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돌봐주지 않고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아픈 몸을 가진 2세 환우들의 모습은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었습니다. 

2005년도에 28분짜리의 짧은 다큐멘터리 <원폭 60년, 그리고…>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이 소통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여전히 원폭 피해를 당하고 그로 인해 발생된 원폭 2세, 3세 환우 분들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고, 그에 대한 보상이나 치료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문제는 정말 절실하게 중요한 문제로 제기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고밀도 핵발전소는 계속 돌아가고 있고 그로 인한 불안함이 상존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무섭고 불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원폭 2세 환우들의 삶이 핵 문제로 발생한 실제적 증거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핵과 방사능 문제가 과거 히로시마, 나가사키, 체르노빌,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2013년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특히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을 먹고 그것에 의한 내부피폭을 당할 위험이 더 높아진 상황 속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나도 그런 아픔을 겪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닿으면 이 문제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역사적인 문제 속에서 발생한 원폭피해자, 특히 아픈 원폭 2세 환우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역사를 한걸음도 전진시킬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또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탈핵으로 가기 위한 방향 속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매듭지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김환태 감독
 김환태 감독
ⓒ 김환태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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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이 참 서정적이면서도 잔잔한 면이 있습니다.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면서 조금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인물들의 감정의 폭을 아주 깊게 휘어잡기 보다는 적절한 수준에서 조정하는 것이 필요했고요. 합천 지역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데 2월에 촬영 간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리더군요. 느낌이 참 좋아서 그때 촬영된 부분이 많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촬영하러 갔을 때, 일상과 무감한 현실을 카메라 안에 담으면서 우리네 사람들의 날 것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었습니다. 원전이 보이는 곳에서 족구를 하거나 낚시를 하거나 그런 모습들이 정말 저는 아이러니하고 아프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 친밀감을 형성했던 한정순 회장님을 촬영해서인지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감이 공유될 수 있었고 그렇게 촬영된 장면들이 마지막까지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닌지 생각되기도 합니다.

개인의 삶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들이 카메라 안에서 정말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힘들고 안타까운 현실이 오롯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공동체 상영회 때 "영화가 정말 잔인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다고 말씀하신 분이 생각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끔찍한 일상이 제일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하루가 힘들고 아픈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 보면 명확해지겠지요. 원폭2세 환우들의 삶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닐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영화 속의 일면들은 서정적이고 잔잔할지 모르지만요."

- 영화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몇 가지가 있는 듯 합니다. 약 7년 정도 원폭피해자 분들을 만나 왔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된 것과 변화되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꾸준히 찾아뵙긴 했지만 항상 붙어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 예전에 인터뷰하고 촬영했던 원폭 피해자 1세 어르신이 돌아 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라든가.

영화 속에도 등장하지만 또 다른 1세 어르신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시간이라는 것이 참 무섭기도 하고 기록이라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그 시간 동안 그렇게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했던 원폭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시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각나는 순간과 기억들이 많은데, 본인이 원폭 피해자 2세이면서 그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고 본인 또한 너무 아픈 어느 여성 분의 몇 차례의 유산이야기, 고리 원전 앞에서 울던 어느 꼬마 아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이신 한정순 회장님과 마지막 노래방 장면 등이 떠오르는데 사실 이런 것들이 모두 핵과 원폭피해라는 큰 틀에서 우리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여전히 무섭고 두렵고 아픕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원폭 피해를 받고 계신 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리고 그것에 대해 지지해주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미약하나마 영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또 다른 의지들이 생겼습니다. 기록과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 영화의 제목이 '잔인한 내림'입니다.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잔인하다", "유전된다(내림)"라는 표현밖에 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유전의 문제를 사실 국가 차원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 문제를 인정하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사능 유전에 대한 문제가 길게는 13대에 걸쳐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그게 정말 끔찍하고 잔인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리고 바로 내 주변의 사람들 또한 이런 현실을 겪고 있기도 했고요. 누군가는 영화 제목이 너무 세서 볼 사람들도 안 보러 올 거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근데 그런 불편하고 끔찍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소수일 수 있지만 그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이기도 하니까요.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이 문제를 마주하게 되고 영화를 보게 되면 핵문제 대해서 우리 스스로 뭔가를 해야 될 것 같다는 정서적 울렁증이 생길 거라 확신합니다."

- 이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역사적 상흔의 내림, 사회적 시선의 내림, 질병과 가난의 내림, 무감한 일상의 내림, 그 잔인한 내림을 막는 것이 원폭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탈핵의 시대로 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대 '인류의 문제'이다'라고 연출의도를 밝힌 바 있습니다. '내림'은 유전의 다른 명칭으로서 사용했습니다. 유전은 물리적으로 지속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의식, 가치 또한 유전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연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내 문제가 되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함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공감의 지점 속에서 좀 더 진보된 사회, 좀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우리에게 있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끊어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영화를 통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 원폭2세환우 문제나 핵 문제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원폭 2, 3세 문제, 특히 아프신 분들에 대한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는 원폭 2세, 3세들의 문제가 '유전'의 문제와 맞닿으면 정말 갑갑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걸 "아니다, 유전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핵 문제로 인해 갑상선 암, 심장병, 숱한 정신질환의 문제가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안타깝고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원폭 피해를 당한 2세, 3세, 4세 그리고 아프다고 어렵게 본인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의료비를 지원하고 일부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역사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온당하다 생각됩니다. 17대, 18대 때에 폐기되었던 원폭피해자 특별법이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통과되고 법률에 근거해 피해자들을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구요. 경상남도 조례, 합천군 조례 등을 통해서 피해자들에게 최대한의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핵문제와 관련된 정책적인 방향이 대폭 바뀌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노후된 원자력 발전소는 마땅히 폐쇄되어야 합니다. 신규발전소 건설 또한 중단되어야 하고요. 인간의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 절대적 명제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탈핵이지요. 그리고 재생에너지 개발에 정책적인 투자를 더 해내야 합니다.

원자력 발전 이후에 나오는 중저준위 폐기물, 고준위 폐기물들의 처리 문제가 또한 중요할 텐데, 최대한 안전한 처리 그리고 더 이상 그런 폐기물을 만들어 내지 않는 원전 제로의 상황으로 가는 것이 안전한 미래, 안전한 먹거리, 안전한 시대를 위한 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련한 대한민국이 아닌, 국민들을 위한 현명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몇 가지 작업들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시간과의 긴 싸움을 계속 해 오고 있는 듯 합니다. 자칫 나태해지거나 손 놓아 버리면 안 되는 긴장감의 연속인데요. 2009년도부터 약 3년여 정도 관계를 맺고 작업을 해 온 작품이 있습니다. 남양주에 있는 지역자활센터로부터 출발해 협동조합으로 변신해 온 '일과 나눔'이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붐인데, 이상과 현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조망하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년 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작업인데, 병역거부 문제와 군대문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가장 많았는데 요즘 다른 일들이 겹치다 보니 오히려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더 다잡아야 할 듯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제 기획을 하면서 정리 중인 작품인데요. 핵 문제와 연속선상에 있는 작품이고, <은폐된 진실-핵마피아를 찾아서(가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은폐된 진실- 핵마피아를 찾아서(가제)>는 제가 지금까지 핵(원자력) 문제에 대해서 교육받거나 처했던 상황들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니, 정말 일방적으로 세뇌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자력은 안전하다. 원자력은 깨끗하다. 전기를 사용하니까 원자력 에너지는 필요하다"는 숱한 광고들. 은폐되고 있는 원자력에 대한 진실들, 그 뒤에 숨어 있는 핵마피아라 불리는 거대 세력들. 이 문제를 들춰내고 고발하여 진실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습니다.

후쿠시마 이후에 정말 많은 변화가 현실에서는 일어나고 있는데, 방사능 오염에 대한 진실과 앞으로 만들어야 할 대안에 관한 고민까지 좀 더 과감하고 면밀하게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서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제작해서 다시 한 번 은폐된 진실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태그:#잔인한 내림, #김환태, #원폭피해자, #원폭2세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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