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3일 오전 충남 당진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열연공장에 압연공정을 거쳐 둘둘 말린 열연코일이 쌓여있다.
 10일 하청노동자 5명이 질식사고로 숨진 충남 당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열연공장에 압연공정을 거쳐 둘둘 말린 열연코일이 쌓여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10일 오전 2시경,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로(용광로) 안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노동자 5명이 사망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아르곤 가스에 질식된 것입니다. 이들은 용광로에 아르곤 가스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로 아르곤 가스와 무관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전에 안전관리 책임자로부터 교육만 받았어도, 누구 하나 산소 측정기만 가지고 있었어도, 아르곤 가스가 누출되지 않도록 주의만 기울이고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입니다. 예견된 사고일 수밖에요. 회사는 기본적 안전장비조차도 지급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노동자들이 사망한 지 4시간이 지나서야 노동부의 확인 전화로 사망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습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즉시 신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 기본적인 대응조차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제철은 "근로자들이 왜 시운전을 하기 전에 아르곤 가스를 주입하게 됐는지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죽어가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일에 임했을 노동자들을 모욕하는 언행입니다.

이렇게 큰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현대제철의 사고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되돌아 보면 이미 현대제철은 작년부터 하청 노동자들을 계속 죽음으로 내몰고 있던 기업이니까요. 현대제철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석 달 동안에만 5명이 산재로 사망했고 1명이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안전장비 지급'과 '중대재해 발생 시 즉시 보고'의 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무독성'이 문제가 아니라 '알고 있었느냐'가 문제

이번 사고에서 특히 주목할 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작업 공간은 밀폐공간인데, 원청 안전관리 책임자가 그곳에 아르곤 가스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들 노동자들에게 미리 알렸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아르곤 가스가 산소보다 무겁고, 아르곤 가스가 쌓이면 질식사 할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일을 시켰다면, 그것은 그 가스가 어떻게 누출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떠나, 죽음을 방조한 행위입니다.

실제 용광로에는 아르곤 가스가 쓰이기 때문에, 현대제철에선 아르곤 가스의 존재나 위험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가장 안전을 생각했다면 경보장치를 작업시간 동안 가동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출 경위를 밝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밀폐공간들이 현대제철 안에 들어차 있을 겁니다.

두 번째는 아르곤 가스는 무독성이라는 말은 사실인가 하는 점입니다. 현대제철은 "아르곤 가스는 무독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무독성 가스에 사람이 5명이나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번 사고에서 너무도 잘 확인했듯이, 가스 자체에 독성은 없지만 밀폐된 공간에 들어찬 아르곤 가스는 사람을 죽입니다.

그런 가스에 무독성이라는 말을 자꾸 붙이는 것은, 단순하게 이번 사건을 떠나 앞으로 아르곤 가스를 다뤄야 할 수많은 노동자들의 경각심을 떨어뜨리는 범죄행위입니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적는 언론 또한 반성해야 합니다.

무독성이라 지칭되는 질소, 프레온 가스 등도 대부분 일상생활이 아닌 밀폐된 작업현장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실제로 2011년 이마트에서 4명이 프레온 가스 때문에 질식사 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회사와 언론은 프레온 가스가 무독성임을 알리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람 죽이는 무독성도 있나요?

알맹이 빠진 '화학사고 처벌법'으로는 안됩니다

노동부는 지금 당장 압수수색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제철은 자료를 정비하고 '수습'을 마무리해갈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벌금을 적게 받기 위한 방법들이 총 동원되겠지요. 담당자를 구속하고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사고를 제대로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일이 진행되어 왔는지를 단단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7일 유해물질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너덜너덜하게' 통과되었습니다. 화학물질사고 과징금은 '전체 매출액의 10% 이하'에서 '사고 공장 매출액의 5% 이하'로 낮춰졌고, 단일 사업장을 가진 경우는 '2.5% 이하'로 축소됐습니다. 또 대기업 등 원청업체에 형사처벌을 물을 수 있는 조항이 행정처분 단계로 낮춰졌고, 업무상 과실치사의 경우 '3년 이하 금고나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서 '10년 이하 금고나 2억 원 이하 벌금형'으로 수정됐습니다.

이처럼 화학물질사고에 대한 처벌 방안이 대폭 완화된 것은 경총과 대기업의 항의 때문이었죠. 아무리 국민이 죽어가도 처벌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게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제발 안전하게 일 좀 하자고 법 하나 만들기조차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 와중에도 노동자들은 계속 죽습니다. 너덜너덜해진 유해물질관리법으로는 안됩니다. 기업이 포괄적으로 안전관리에 총 책임을 지고,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게 막아야 합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필수적 요소를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게 만든 기업주를 범죄자로 규정하여 구속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기업살인법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현대제철은 세계 철강산업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노동자의 미래는 없애고, 특히 하청노동자들의 미래는 더더욱 짓밟고 빼앗아 없앴습니다. 최근 남양유업 사과 사태, CJ대한통운 파업 등에서 보듯 '갑'의 횡포와 폭력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큽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고는 이런 현실에 노동자의 산재문제도 예외가 아님을 알려주는 사고가 아닐까 합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