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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거센 '여자의 바람'이다. 이 강풍이 세계를 휩쓸며 남녀 역할을 뒤바꾸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먹여 살린다며 큰소리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남자들을 제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지난 세기의 일이며, 이제 여성은 가정과 사회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가정에서 남녀 역할은 벌써 뒤집혔다. 금융서비스회사 프루덴셜 2012-13 여론조사는 미국 가정 절반 이상이 여성 가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이 노동시장의 과반수를 차지한 것은 훨씬 전인 2009년의 일이다. 영국에서는 전업주부로 가사를 돌보는 남편이 지난 15년간 3배나 늘었다.

<남자의 종말> 미국판과 한국어판.
 <남자의 종말> 미국판과 한국어판.
ⓒ Riverhead/민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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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에서 성역할의 변화를 다룬 언론보도와 책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타임>이 "여성, 남성보다 부유해지다"라는 표지기사로 세계적 주목을 끌었고, 이후 <여성이 더 번다>, <여성의 부상>, <남자의 종말> 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자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릴지 모른다. 부아가 치밀수도 있다. '남자의 종말'이라니. 이런 제목을 보는 '멸종 당사자'들 마음이 어떻겠는가. 저자도 제목을 붙이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던 모양이다. 해나 로진은 <남성의 종말> 책 머리 이렇게 썼다

"제목에 대해 사과하며, 이 책을 제이콥에게 바친다."

자신이 아끼는 남자에게 책을 헌정하면서도 끝내 제목만은 바꿀 수 없던 모양이다. 도대체 남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한국남자들은 어떻게 될까?

사실 '미래'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추억

나는 한국에서 아들로 태어나, 전형적인 가부장 관념을 눈, 귀, 몸으로 익히며 자랐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요리를 했고,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을 읽으며 식탁이 차려지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면도를 하고 양치질을 하는 동안 어머니는 다리미를 꺼내 아버지가 입고 나갈 셔츠를 다리곤 했다.

아침마다 되풀이되던 가장의 출근은 온 가족이 참여하는 경건한 의식이었다. 직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아버지의 모든 행동에는 엄숙한 권위가 깃들어 있었다. 면도기로 밤새 자란 수염을 미는 동작에도, 식탁에 앉아 '밥 먹자'는 말로 하루의 성찬을 알리는 목소리에도.

일거수일투족을 거들던 어머니와 달리, 자식들은 서로 낄낄거리며 장난이나 칠 뿐이었지만 아버지가 문을 나서는 순간만은 모든 것을 멈추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지가 오늘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내일의 성찬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철부지들조차 알고 있었다.

이제 어머니는 자식들과 씨름하며 등교준비를 시켜야 할 터였다. 당시 학교는 현재의 가장이 미래의 가장을 배출하는 공간이었다. 여선생님들이 드문드문 박혀 있기는 했으나, 교무실을 차지하고 있던 건 대개 남자 선생님들이었다. 그들 다수도 아침에 '가부장 의식'을 거쳐 출근을 했을 것이다.

학생들이 빽빽이 들어선 교실 역시 남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물론 한두 명의 똑똑한 여학생이 두각을 드러내며 미래에 찾아올 변화를 암시하기는 했다. 필기 잘하고, 발표도 잘하며, 공부는 물론 예능에도 뛰어난 소질을 갖춘 여학생들은 신비와 경이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공부는 대체로 남자들의 몫이었다.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한 변화

인류가 새로운 세기를 맞은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 십여 년을 전후해 소수의 '슈퍼 여학생들'은 이제 교실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한국 여학생들은 1995년부터 수능점수에서 남학생을 앞서기 시작해, 현재까지 절대적 우위를 지키고 있다.

여학생들이 남자들에게 추월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남학생들에 비해 부모의 기대와 투자 면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들에 대한 선호가 흐려지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져감에 따라 남녀간의 학력격차가 더욱 벌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학력의 격차는 경제활동과 사회적 지위의 격차로 이어질 것이다.

<남자의 종말>의 저자 해나 로진. 그는 성역할이 변화한다는 증거로 다양한 한국 사례를 든다.
 <남자의 종말>의 저자 해나 로진. 그는 성역할이 변화한다는 증거로 다양한 한국 사례를 든다.
ⓒ 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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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초중고 평균 64 퍼센트를 넘어섰다. 이 수치는 여성 약사의 비율이기도 하다. 이제는 거의 '여성 전문직'처럼 느껴지게 됐지만, 교직과 약사는 본래 남성들이 독차지하던 영역이었다. 의사, 교수, 법조인들 가운데 여성의 증가 비율을 보면, 이 분야도 머잖아 여성들의 텃밭이 될 것이다.

이는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해나 로진이 밝히고 있듯,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전역의 고등교육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지르고 있다. 미국에서 남자 두 명이 학사학위를 받을 때, 여자는 세 명이 받는다. 석사와 박사 취득 비율도 여성이 훨씬 높다. 미국 노동시장에서는 미래에 가장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 15개 가운데 12개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왜 갑자기 여성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일까? 결코 '갑자기'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사회가 서서히 다가온 변화를 눈 여겨 보지 않았던 것뿐이다. 한국에서 여자 약사가 절반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이 비율을 10퍼센트 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3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남성과 여성을 규정하는 담론은 과거의 질서를 재생산하는 기능도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을 보지 못하듯 말이다.

여성의 부상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여성들이 수만 년 동안 자신들의 능력을 억눌러왔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여성이 남성의 도움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경제력을 쥔 남자가 아니면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굶거나 맞거나' 식의 가혹한 상황은 무시와 학대를 받으면서도 남자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남성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사회와 경제구조가 여성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이제 여성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2009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침체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건설, 제조, 대형 금융 등 전통적으로 '남성적'으로 여겨지는 분야였고, 실직자 대다수도 남성들이었다. 영어권 언론에서 최근 닥친 경제위기를 '남성 불황(mancession)'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경제난 속에서도 여성의 경제활동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2년 한국 20대 여성 고용률은 58.8퍼센트로, 같은 연령대의 남성 고용률 57.3퍼센트보다 높았다. 20대 남성 고용률은 2002년 65.2퍼센트, 2007년 60.5퍼센트, 2012년 57.3퍼센트로 계속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반면, 20대 여성 고용률은 2010년 남성 고용률을 앞선 후 차이를 늘려가고 있다. 2011년 2분기에는 50대 여성 고용률이 59.3 퍼센트를 기록해, 통계작성 후 처음으로 50대 여성이 20대 남성을 앞지르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성 우위 시대? 갑자기 등장한 거 아니다

물론 불황기에 늘어난 여성의 취업 증가가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경제난 속의 여성 고용 증가는 저임금 노동의 증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10년 기준 남녀 임금격차는 39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퍼센트의 두 배 반이 넘는다. 남자가 100만원을 받을 때 여자는 고작 61만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지난 2000년 임금격차가 40퍼센트였으니, 10년 동안 임금격차가 1만원 줄어든 셈이다(같은 기간 일본의 성별 임금 격차는 34퍼센트에서 29퍼센트로 크게 줄었다). 결국 한국 여성의 진출 확대는 근무조건 개선과 별 상관이 없는 셈이다. 한국 여성 취업의 증가는 '일할 수밖에 없는' 가계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특히 50대 여성의 고용 증가가 이 사실을 극적으로 말해준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가 경제위기에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도 여성의 사회참여는 꾸준히 증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산업구조 자체가 여성을 필요로 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체 여성들이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여성의 부상은 남자들에게 불리한 것일까? 여성이 날아오르는 동안 남자들은 무엇을 했을까? 남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해나 로진은 <남자의 종말>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미래의 산업은 더 이상 전통적 '남성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초의 시대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물리력과 고압적 태도가 통하던 시절은 그걸로 돈벌이를 할 수 있을 때나 가능했다. 하지만 힘 쓰는 일은 사양산업이 되거나 기계로 대체되었고, 이제 사람을 대하는 소통의 기술이 핵심적 자질이 되었다. 언어능력, 교양, 섬세함 등 '소프트 파워'가 각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부상은 남자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일까? 물론 마초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더 이상 밥줄과 완력으로 여성들을 묶어 둘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락하고 있는 건 '남성'이 아니라 '마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초의 몰락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남성의 탄생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남녀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

새로운 남성의 탄생

2010년 <뉴스위크>는 '남자의 전통적 성역할이 사라지고 있으며, 새로운 남성상이 필요하다'는 표지기사를 실었다. 2년 후 <타임>은 '여성이 남성을 제치고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0년 <뉴스위크>는 '남자의 전통적 성역할이 사라지고 있으며, 새로운 남성상이 필요하다'는 표지기사를 실었다. 2년 후 <타임>은 '여성이 남성을 제치고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타임/뉴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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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진은 여성의 역할 확대를 나폴레옹의 전략에 비유한다. 새 영토를 빠르게 점령하면서도 옛 영토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의 터전'으로 여겨지던 영역에도 유연하게 적응해 왔지만, 남자들은 그저 '남성의 터전'에만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여성들은 교사와 약사에서부터 사관학교와 군대까지 기회가 열리는 대로 진출해 왔으나, 남성 대다수는 간호사나 전업주부 등 '여성적 영역'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여성들은 직장에 다니다가 직장을 그만 두고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기도 하고, 또 다시 직장에 나가면서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직장에 다니다가 직장을 그만두어도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지 않으며, 다시 직장에 나가면 가사와 육아는 당연히 자신의 몫이 아니다. 이처럼 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뻣뻣한' 남자들이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특정 시대에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일 뿐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과거의 성 정체성에 집착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은 물론, 사회 전체에도 불행한 일이다. 개인 입장에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하게 되고, 이런 기회 상실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남자 특유의 인내심이 육아와 가사에 매우 적합하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

가부장적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한 '뻣뻣한' 남자일수록 여자들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을 불편해 하고, 실직을 '남성성의 상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남자의 종말>에 따르면, 경제력을 잃은 마초들은 아이들을 돌보거나 요리를 하는 등 유연한 선택을 하기보다, 여자를 모욕하거나 성관계에서 폭력적으로 남성성을 과시하려 함으로써 상대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 공간에서 공공연히 표출되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 역시 피해의식의 산물이다. '된장녀'에서 비롯한 온갖 '~녀' 시리즈와 '김여사' 담론이 여성의 부상과 시기를 같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초들은 자신의 몰락이 여성의 부상 때문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들은 여성이 성기를 '벼슬'로 생각한다며 막말을 퍼붓지만, 성기를 벼슬 삼아 군림해 온 건 오히려 남자들이었다.

이제 세계는 일터에서 주방과 침실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섬세하고 유연한 남성을 요구한다. 변화는 오래 전 시작되었고,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변화에 밀려나든지, 변화 속으로 뛰어들든지. 여성들이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를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요약한 내용이 <아까운 책 2013> (부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남자의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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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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