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지음│어크로스 펴냄│2013년 4월│1만5천원)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지음│어크로스 펴냄│2013년 4월│1만5천원)
ⓒ 김진형

관련사진보기


'청년 논객'으로 불리는 한윤형의 책인데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마저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이 책의 독자가 꼭 '청년'일 필요는 없다. 청년 세대 담론의 중요성은, 부모 세대 혹은 386세대와의 비교 우위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는 '한국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 시대에 도래한 '잉여의 비루함'을 다루고 있고, 그것은 사실 우리 모두의 현실인 까닭이다.

잉여 사회의 절망과 세대론 논쟁의 허망함을 넘어

한윤형은 스스로를 '잉여'로 규정한다. 잉여는 과잉의 산물이다. '소수의 인간이 관료 조직과 자동화 기계를 붙들고 화석 연료를 펑펑 쓰며 너무 많은 물건을 생산하자, 그 공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간 대부분이 잉여가' 되었고,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버둥거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의식을 가졌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한국식 자본주의는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추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IMF 이전에는 기업들은 빚을 져도 개인들은 저축하는 사회였지만, IMF 이후에는 기업들만 돈을 쌓아두고 개인들은 빚을 내어 돈을 굴리는 사회로 변모했다. 부자가 되는 방식은 대개 부동산의 지가 상승에 의존하는 것이었고, 이제는 월급만으로는 자립을 꿈꿀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기성 세대는 경제가 성장하면 자신의 삶도 상승하는 것을 경험했지만, 지금 청년 세대는 '자기 삶의 전성기가 십대'였을 때라고 말한다. 십대 이후 끊임없이 하강하는 인생이다. 한때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기 때문에 '루저'로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루저'는 학벌 구조 안쪽에 있다. 즉 '오늘날의 잉여 인간들은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들'이다. '학벌 사회의 승자이면서 잉여 인간이 된' 이들은 극심한 열패감에 시달린다. 명문대 출신의 장기하가 부른 <싸구려 커피>의 화자는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살았다고 말한다. 이는 잉여들의 일상, 그 열패감의 서사인 것이다.

'잉여 세대'를 둘러싼 세대론 논쟁에서 정작 청년들은 논의의 주체에서 제외되어 있으나(또는 그들 스스로 무관심했거나), 그 세대론이 유통되고 인용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청년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패배의 책임을 추궁당하곤 했다(예를 들면,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세대론은 공허하거나 부당하다.

부모의 욕망에 엄밀하게 조응하여 움직이는 피에로

그중에서도 유의미한 것은 '88만 원 세대론'이다. 2007년 출간된 우석훈과 박권일의 책 <88만원 세대>는, '20대의 대부분이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묵시론적인 예언'이다. 이는 기존 계급론에서 제기되던 불평등의 문제가 앞으론 특정 세대에게 전이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물론 사회과학적 근거를 인용한 합리적 반론도 있었고, 변희재와 <조선일보>에게 386세대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한윤형이 보기에 '88만 원 세대론'을 수용한 이들은, 원래부터 88만 원을 벌었던 청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 왔는데도 88만 원을 벌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젊은이들'이었다. 즉 이 담론의 성공 배경은, 중산층의 불안 심리 내지는 중간계급의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세대론의 핵심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혹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한국 자본주의의 실패와 직결된다. 그리고 저자의 안타까움은 '88만 원 세대'와 '쌍용자동차 투쟁'이 만나지 못한 그 막막한 현실을 주목한다.

'88만 원 세대가 쌍용자동차 투쟁과 만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쌍용의 노동자들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애저녁에 포기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 안전을 보장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은 젊은이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66쪽)

한윤형은 같은 세대의 동지더러 '더 이상 부모와 선배 세대를 원망하지 말자'고 말한다. 청춘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우리'가 다른 나라를 만들면 되니까.
 한윤형은 같은 세대의 동지더러 '더 이상 부모와 선배 세대를 원망하지 말자'고 말한다. 청춘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우리'가 다른 나라를 만들면 되니까.
ⓒ 김진형

관련사진보기


성장 동력을 상실한 한국 자본주의는 노동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젊은 세대의 임금을 낮추고, 대학생의 85%를 비정규직으로 받아들이되 언제든 그들을 거세하는 방식으로 자본의 효율성을 확보한다. 이 지점에서 세대론과 계급론은 충돌하면서도, 상생의 가능성을 지핀다. 물론 당장 '뾰족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현실'이지만, 바로 그 막막함이 현재 주어진 유일한 출발점이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본인이 거세당한 욕망을 '권리'로 인지하고,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현재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세상은 지금으로선 하나의 꿈이다.'(167쪽)

출발점과 꿈을 명시한 한윤형의 희망은, 각성과 연대를 촉구한다. 허나 그 실효적 수행은, 우리의 처한 현실과 위선을 조망하는 것에서부터다. 부모의 욕망과 자녀의 욕망이 구분되지 않는 오늘날, 청춘의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의 욕망에 엄밀하게 조응하여 움직이는 피에로'가 있을 뿐이다. 청년 세대에 가장 비판적인 386세대는 기러기 아빠와 원정 출산 등의 행태를 기꺼이 감행한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과 기러기 아빠의 욕망은 공존할 수 있을 뿐더러 일맥상통'하는 것이 우리 진보의 현실이다.

올더스 억슬리의 서사 "멋진 신세계"는 역설의 희망이다. 부질없는 욕망과 '꼰대짓'을 성찰한 저마다의 각성이 전제될 때, 다수의 루저가 교감하고 연대하는 것에서 역설의 희망은 움튼다. 한윤형은 같은 세대의 동지더러 '더 이상 부모와 선배 세대를 원망하지 말자'고 말한다. 청춘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우리'가 다른 나라를 만들면 되니까. 

장발장과 우리 부모의 순정

지난 대선은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세력의 놀라운 결집을 보여주었다.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20대의 높은 열기는 진보 진영에게 승리의 환상을 선사했으나, 50대는 '투표율 90%'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그 환상을 무참히 무찔렀다. 저자가 보기에, 2030세대와 50대 이후의 세대가 대결한 것처럼 보이는 세대 분열의 구도는, 우리가 처한 비루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들은 부모-자식 관계로 얽혀 있으며 생존에 대한 공동의 모색과 연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언어들의 모략에 속아 '각 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혁명에는 동참하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수양딸의 정인을 구하는 장발장은, 당신이 가진 전부를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우리 부모의 순정과 멀지 않다. 바리케이드에 갇힌 희망과 그곳에 뛰어드는 장발장의 희망은, 지향점은 다르지만 공동의 운명에 처했다. 우리 현실이 그러하다. 장발장은 죽음 이후, 혁명군의 대열에 합류하여 '민중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도 그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득할지 모르나,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희망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세대론을 뛰어넘는 '화해'다.

앞서 이 책은 청년을 포함한 모든 세대를 위한 책이라고 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을 자녀와 제자로 둔 부모와 선생들이, 그리고 소위 '386'을 위시한 모든 '좌파 꼰대'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청년 세대론에 대한 당사자 반론이 담긴 '2부'를 곱씹어 소화한 후에, '1부'에 담긴 저자 한윤형의 처연한 잉여 인생론과 사적 비망록을 읽어내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공감'에 이를 수 있다면, '3부'를 통해 그 '희망'에도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soli021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어크로스(2013)


태그:#한윤형,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크로스, #88만원 세대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