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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남양유업이 자사 대리점 업주들에게 회사 제품을 부당하게 강매하는 이른바 '밀어내기'와 불법 리베이트를 요구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7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물량 떠넘기기와 영업사원의 폭언에 항의하며 남양 제품을 거리에 내팽개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남양유업의 부당 강매행위인 '밀어내기'와 떡값' 요구, '유통기한 임박 상품 보내기', 유통업체의 파견직 임금을 대리점에 떠넘기기 등 대리점 불법 착취 등에 항의했다.
▲ 남양유업 횡포에 분노한 대리점 업주들 남양유업이 자사 대리점 업주들에게 회사 제품을 부당하게 강매하는 이른바 '밀어내기'와 불법 리베이트를 요구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7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물량 떠넘기기와 영업사원의 폭언에 항의하며 남양 제품을 거리에 내팽개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남양유업의 부당 강매행위인 '밀어내기'와 떡값' 요구, '유통기한 임박 상품 보내기', 유통업체의 파견직 임금을 대리점에 떠넘기기 등 대리점 불법 착취 등에 항의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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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못 받는다고? 그딴 소리하지 말고 알아서 해. 죽여 버린다 진짜 씨X. 그럼 빨리 넘기던가. 씨X 잔인하게 해줄게 내가. 핸드폰 꺼져있거나 하면 알아서 해. 당신은 XXXX 그게 대리점장으로 할 얘기냐 이 XX야. 당신 얼굴 보면 죽여 버릴 것 같으니까 XX아. 자신 있으면 들어 오던가 XXX야"

하나의 녹취파일이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비자는 분노했고 당연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개념을 우유에 말아먹은 영업사원의 막말이 언론에 노출되자, 남양본사의 대응은 재빨랐다. 남양유업은 지난 5월 4일 대표이사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게시하고 "회사의 대표로서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해당 영업사원의 사직서를 즉각 수리했다",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관리자를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미 지난 2일 남양유업 본사와 서울서부지점 사무실 등 3곳을 압수수색했으며, 남양유업의 주가는 사건 발생 이후 나날이 폭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점차 확산되는 불매운동에 세븐일레븐과 바이더웨이 가맹점주 협의회도 동참했다. 앞으로 남양유업 임직원에 대한 줄소환이 있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남양은 한 직원의 막말 때문에 회사 전체가 피해를 봤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문제 삼자, 즉각 직원해고 사실을 포함한 사과문을 올린 것은 그 직원과 회사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행위였다. 그러나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 협의회' 측이 공개한 피해사례를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남양유업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해 업계 1위에 올라섰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속칭 '밀어내기 강매' 이외에도 명절 시 떡값 요구, 10~30%에 이르는 리베이트 요구,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 강매, 사측의 요구에 불응하는 대리점주에 대한 일방적 계약해지, 눈 밖에 난 점주에게 물량을 주지 않는 일명 '찢어버리기'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여기에서 어떻게 기업과 조폭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은 남양유업피해자협의회가 서울중앙지검에 자신을 포함한 회사 관계자 10명을 고소한 직후부터 사건이 공개되기까지 대략 72억 원의 주식을 매도해 현금으로 챙기는 파렴치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을' 깔보는 '갑', 남양만의 문제일까

문제는 이번 남양사건이 한 명의 영업사원만의 문제도 아니며, 한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점이다. 드러난 사건만 모아 봐도 그렇다. 불과 얼마 전, 속칭 '라면상무'로 알려진 포스코 에너지 임원의 항공기 난동사건과 P베이커리 회장의 호텔 주차관리직원 폭행사건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기업 임원들이 어떤 정신상태로 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사건 이후 보인 반응도 가관이다. 항공기 난동사건이 알려지자 일부 기업은 임원의 조심을 촉구하면서도 실제로는 해당 항공사의 승무원 일지 노출을 이유로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겠다는 불만 인터뷰를 날리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속칭 '빵회장'으로 불린 P베이커리 회장은 난데없이 '회사 폐업' 카드를 꺼내들며 자신의 잘못을 애꿎은 직원들을 실업자로 만드는 것으로 면피하려 했다. 

또한, 가맹본부의 허위과장 정보와 불공정한 계약관계, 지나친 점포 확대 등으로 올해만 벌써 3명의 편의점주가 자살했으며, 얼마 전에는 롯데백화점의 매출실적 압박에 입점업체 여직원이 투신자살 하기도 했다. 심지어 롯데백화점은 이와 관련해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직원은 다시는 백화점 3사에 취직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후죽순으로 터지는 일련의 재벌, 기업 관련 사건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나같이 도저히 뜯어갈 것이 없어 보이는 이들을 쥐어짜는 기술에 도가 터 있으며, '갑을관계'를 '주종관계'로 인식하는 천박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동안 '경제 활성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은폐당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우발적인 사건들이 운 좋게 언론에 등장한 경우가 이 정도라면, 언론에 나타나지 않은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겠나? 3년 전 일이라는 남양유업의 욕설 녹취도, 달리 생각하면 그 이후 이런 행태가 빈번하게 계속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 아닐까?

새누리당 이한구,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7일 오후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여야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들을 4월 국회 회기 마지막날인 이날 처리하지 않는 대신 6월 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이한구,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7일 오후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여야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들을 4월 국회 회기 마지막날인 이날 처리하지 않는 대신 6월 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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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가 천박하기로 유명하다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할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그래서 지난해 대선에서도 후보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와 '대기업 규제'를 외치지 않았는가? 국회에서도 이미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지난 6일에는 가맹사업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경제민주화의 발동이 걸리는 듯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숨만 나온다. 본회의 통과가 남은 경제민주화 법안은 물론 다른 핵심 법안들은 '경제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재계의 반발로 인해 결국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재계가 지금의 상황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음은 물론, 정부 역시 경제민주화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달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5단체 부회장들은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최근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반기업 정서와 시장 경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각종 경제·노동 관련 규제 입법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대기업을 옥죄는 것은 물론 "우리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을 저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곱게 들리지 않는 것은, 우리 대기업이 그토록 오랫동안 경제활성화의 임무를 부여받고 각종 혜택과 규제철폐, 감세의 이득을 누려왔는데도, 서민경제가 활성화되었다는 지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만성적인 자조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도 재벌의 매출과 수익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피라미드 아래쪽에서 주종관계에 묶인 이들의 신음소리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조치들이 '투자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항변하는 태도는 '우리를 건들면 투자하지 않겠다'는 협박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 4월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이에 화답하듯 재계는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수행할 경제사절단을 사상 최대 규모인 51명으로 꾸렸다. 청와대 요청에 의해 전경련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사절단 규모를 보노라면, 공개적으로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대기업과 더 강한 스킨십을 자랑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의 탐욕을 누르고 진정 민주화다운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까?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대기업민주화로 결론 날 가능성이 걱정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전제 조건

설령 관련 법안들이 6월 임시국회에 처리된다 하더라도 이것이 실질적인 경제민주화로 이어질 지도 의문이다. 민주주의 이론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로버트 달은 한 국가의 민주적 절차가 바람직하다는 믿음이 부족하고, 습관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런 믿음이 뿌리 깊지 않다면 민주적 절차는 지켜지기 힘들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좋은 제도가 자동적으로 좋은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한국의 시장질서는 경제민주화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전혀 자리 잡혀 있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은 이것이 경제적 약자의 권력을 강화할 때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초적인 상식을 간과하고 있다. 재계와 정부는 경제적 약자를 시혜적 대상으로만 간주하고 있을 뿐,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철저히 불온시하는 시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화 풍토를 바꾸지 않고서는 기업이 직원을, 직원이 점주를 차례차례 과잉 착취하는 고질적인 악순환을 끊을 수 없음은 물론 제2, 제3의 남양사태, 항공기 승무원과 주차관리원 폭행,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노동이 천대받는 사회에서 경제민주화는 어림없는 소리다.

수익창출만 강요하는 잔인한 자본의 논리구조에서는 누구라도 아버지뻘 되는 점주에 욕설을 내뱉는 영업사원이 될 수 있다. 천민 자본주의는 항상 우리에게 그런 유형의 인간이 될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역할을 대신 떠맡고, 언제든 잘라낼 꼬리 같은 인간 말이다.


태그:#남양유업,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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