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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제1차 무역투자진흥회의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진행됐다.
 제1차 무역투자진흥회의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진행됐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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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34년 만에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청와대에서 열었습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시작해 월례 회의로 열던 걸 부활한 겁니다. 부전여전이라고, 박 대통령은 투자와 수출만이 살 길이라던 아버지와 상당히 닮은 박근혜표 경제 정책을 강조했습니다."    TV조선 뉴스7 2013년 5월 2일

5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두고 보수언론, 종편, 경제일간지 등은 일제히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계승했다며 쌍수를 들고 나섰다.

"아버지처럼… 국정 올코트 프레싱, 어머니처럼… 민원 디테일 리더십"(동아일보). "박 대통령 '수출 진흥'도 아버지처럼"(MBN TV) "아버지처럼… 박근혜 대통령, 첫 무역투자진흥회의 주재"(한국일보) 등 회의의 내용보다 아버지와 닮은 행보에 초점이 맞추어진 대부분의 기사들은 수출이 나라의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그려내고 있었다.

회의 다음날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경제 5단체장을 만나 엔저 현상 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생산성 혁신을 위한 '산업혁신 3.0'을 제안했다. 1970년대 공장 새마을운동의 자조 정신을 계승하고, 동반성장 관계를 대기업과 2,3차 협력사까지 확산하는 게 목표라고 밝힌 이 제안은 대통령 업무보고 때 소개된 대모엔지니어링과 협력사의 '3정(정품, 정량, 정위치), 5S(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 운동을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고 한다.

창조경제 = 공장 새마을운동?


'부전여전'이라는 미사여구까지 동원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등치시키고자 하는 보수 언론의 노력과 대통령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등학교 급훈처럼 초보적인 도덕 덕목을 내세우며 산업혁신을 주창하고 나서는 장관과 경제 단체들을 보면서 창조경제라는 것이 결국은 공장 새마을운동의 철지난 재방송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든다.

"우리는 수출증진만이 우리의 살길임을 인식하고 어떤 난관도 극복하여 올 목표를 기필코 달성한다. 우리는 원가 절감. 품질 향상 및 생산 일수를 높이고 국제경쟁력 배양에 주력한다. 우리는 종업원을 아끼고 원만한 노사관계 개선으로 복리를 증진시키고 경영의 능률화를 도모한다."  한국수출공단이 주도한 총력수출을 위한 노사결의회의 결의문. 1978년 10월6일 <경향신문>

1973년 석유 파동 때 '직장의 제2가정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근면과 자조를 요구했던 공장 새마을운동. 노동자의 밤샘 근무는 수출 증진을 위한 당연한 의무였고 평생직장이라는 달콤한 사탕발림은 수출이 부의 분배를 담보할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1970년에 있었던 전태일의 분신 이후에도 수출의 역군이라던 노동자는 여전히 공돌이, 공순이였고, 치솟는 물가고는 수출을 위해 감내해야 할 국민 된 자의 도리였다. 

숨 가쁘게 달려온 성장의 역사. 비단 박정희 정권에 그치지 않았다.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3당 합당으로 태어난 김영삼 정권에서도 '수출만이 살길이다. 지금은 빵을 나눌 때가 아니라 빵의 크기를 키워야 할 때'라며 노동자와 서민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조차도 이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 정책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세웠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 이명박 정부는 또다시 노동자와 서민의 희생을 요구했다. 저렴한 노동을 만들기 위해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하고, 억지로 환율을 끌어올려 기업에게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상 최대 매출과 이익을 안겨 주었다.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 난립을 방조한다는 비난에 대해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는 시장에서 만난 상인에게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주며 대출을 받으라는 권유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내내 물가는 폭등했고 가계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한강의 기적' 이후에도 성장 제일주의는 지속됐다. 그 결과 세계적 대기업이 생겨났고 세계 100대 부호에 수많은 기업인들이 이름을 올렸다. 수출세계 7위, 경제 규모 10위권 진입이라는 팡파르를 울렸던 이명박 정부. 그러나 성장의 뒷 그늘에서 공돌이 공순이의 아들딸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이거나 영세 자영업자가 되어 성장의 도구가 됐다. 성장과 수출 위주의 경제 정책은 치유될 수 없는 빈부격차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경제민주화 논의였고 복지담론이었다. 박정희 정권부터 40년을 줄기차게 고집해 왔던 성장 제일주의. 이명박 정권의 5년은 분배 없는 성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처절하게 일깨워 주었다. 지난 총선과 대선, 너도 나도 이제는 빵을 나눌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배 없는 성장은 더 이상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복지 없는 노동은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고. 적임자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은 여야가 따로 없었고 박근혜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배와 복지 없는 창조경제, 위험하다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날 제막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날 제막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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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무섭게 총선과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 복지 공약은 축소되거나 후퇴했다. 일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은 국회에서 먼지만 쌓인 채 논의조차 되지 않고, 경제 관련 단체들은 경제민주화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를 막아서야 할 야당조차 경제민주화, 반값 등록금, 복지 약속들을 수정하면서 기업과 자본 편들기에 합류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의 최저임금, 저임금 노동자 비율 1위, 자살 증가율 1위 등의 아찔한 통계는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다. 남편의 장례식 비용이 없어 영안실에 시신을 눕혀 놓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아내. 대기업 밀어내기 횡포에 한 달 빚만 천 만원을 진다는 대리점 사장의 절규는 새삼스럽지도 않게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또 한편에는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에서 배당금으로 수십억을 챙기는 대기업 임원과 서너살 손자에게 수억원의 주식을 물려주면서 합법이라고 강변하는 경이로운 성장의 역설이 계속되고 있다.

창조경제.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그림의 밑바탕에 노동자와 서민의 희생이 요구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34년 만에 열렸다는 무역투자진흥회의. 아버지의 대를 잇는 결단이라지만 기업과 수출 위주의 정책이 새마을운동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단 한번 바뀐 적이 없었다. 분배를 약속하지 않은 채 노동자와 서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창조경제의 밑그림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되어야 한다. 또다시 노사 화합, 품질 향상, 목표 초과 달성이라는 공장 새마을운동이 창조경제의 밑그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창조경제가 서민 살림살이 거덜 낸 제2의 747 공약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태그:#경제민주화,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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