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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비스토커>의 표지.
 책 <무비스토커>의 표지.
ⓒ 마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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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된 이후, 또 하나의 영화매체가 독자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라졌다. 최근까지 <씨네21>과 더불어 영화매체의 두 축으로 남아있던 잡지 <무비위크>가 지난 3월, 창간 12년 만에 폐간소식을 알린 것이었다.

국내에서 영화의 관객동원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영화평론 시장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더 많이 극장을 찾지만, 그 영화가 무엇을 담고있는지를 알기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면은 이제 많지 않다.

어쩌면 영화평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즐기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재미있다(혹은 없다)"라는 한마디보다 자세하게 써놓은 글에는 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은 듯 하다.

영화평론가 최광희가 <무비스토커>의 머릿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영화보기는 "즉흥적으로 감정을 구매하는 행위로 변질"되어가고 있는데다 "평론가는 점점 더 쇼핑호스트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런 오늘날, 이런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도전'에 가까운 일이다. 영화평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식어가는 와중에 나온 영화평론가의 책이라니. 하지만 <무비스토커>는 영화 그 자체보다도 재미있는 영화이야기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 점도 매우 흥미롭다.

까칠한 영화평론가 최광희, 영화로 우리네 일상을 말하다

며칠전 뉴스채널 <YTN>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다. 한국영화의 추세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영화평론가 최광희가 초대손님으로 화면에 등장한 것이었다. 새로 진행을 맡게 되었다는 남성 뉴스앵커가 여성앵커를 가리키며 "우리, 잘 어울리는 거 같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미소를 띈 얼굴로 간결하게 대답한다.

"아니오,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그 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할 말은 하는구나. 빈 말은 안 하는구나'하고. '허허' 웃는 모습으로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얼른 코너를 진행하려는 앵커의 모습은 딱해 보이기도 했지만, 최광희씨의 짧은 대답은 형식적이고 겉치레에 가까운 인사에 대한 까칠한 거절이었다.

그런 사람이 영화평론가임이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최근 영화계에서 홍보와 경계가 모호해진 평론들이 많아진 탓이다. 번지르르하게 치장된 예고편만을 믿고 극장을 찾았다가, 속 빈 강정같이 시시한 영화에 실망한 적이 어디 한 두번이었나. 영화를 평한다는 매체들마저도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영화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거들고 있는 요즘 아닌가 말이다.

<무비스토커>는 앞서 언급한 그의 말처럼 직설적이고도 간결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쓰여진 책에는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나와있다. 영화 <노팅힐>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말하는가 하면, <시>를 통해서 삶의 먹먹함을 전한다. <핸드폰>으로 스마트폰에 중독된 세태를 짚어내고,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분노를 억누르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포착한다. 요컨대, 평범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표현된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부시도 살지만 촘스키도 산다?

직설적인 화법 만큼이나,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영화를 보는 관점 또한 매우 뚜렷하다. 그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가른 다음, 전자에는 진심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고 후자에게는 혹독하게 비판한다. 특정 영화를 두고 '좋다, 나쁘다'라고 구분짓는 것을 누군가는 불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각 영화들마다 평가를 적어내려간 부분을 보면, 나름의 이유들이 뒷받침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좋았던 시절의 빛바랜 회고를 통해 스러져가는 자신을 위무하지 않는 대신, 현재진행형인 폭력의 악순환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떠나고 남을 어린 세대가 살아가기에 여전히 위험천만한 세상을 안타깝게 껴안는다. 그러고는 미안하다고, 너희에게 이런 세상을 남겨서 너무 미안하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어른의, 그것도 아주 존경할만한 어른의 넉넉한 품이다. 묵직한 경외심이 돋는다." - 본문 80P 중에서

또 영화 <아바타>에 대한 평론에서는 "자본과 기술, 재능이 가장 행복하게 만난 사례"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책 <무비스토커>의 본문. 영화 <아바타>를 다루면서 "미국에는 부시도 살지만 촘스키도 산다"고 적어놓았다.
 책 <무비스토커>의 본문. 영화 <아바타>를 다루면서 "미국에는 부시도 살지만 촘스키도 산다"고 적어놓았다.
ⓒ 마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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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다양성은 피할 수 없는 한계 안에서도 빛을 발하는 미덕을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바타>가 적어도 <트랜스포머>보다 훨씬 훌륭한 오락영화이고, 제임스 캐머런은 마이클 베이보다 100배 정도 괜찮은 백인이라고 믿는다. 미국에는 부시도 살지만 촘스키도 산다." - 본문 89~90P 중에서

반면 나쁜 영화에는 날카로운 혹평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내용의 흥미 유무 따위의 단순하고 모호한 판단기준을 적용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뒤틀리며 영화를 망친 부분을 꼬집거나, 말 그대로 '다시 만드는 일'에 그쳐버린 리메이크작 등이 있다. 또한 배우에 치중된 나머지 극적인 설정 만으로 억지 감동을 주려는 영화에는 "눈물 대신 하품이 나온다"고 썼다.

"최근 적지 않은 한국영화들이 '일회용 눈물 자판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 노력한다. 이렇게 감동 없는 세상에서 9,000원짜리 일회용 눈물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를 영화는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과잉 친절의 신파 설정으로 관객들을 눈물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어때? 이 정도면 울어야 마땅할걸?' 하고 눈물이 차고 넘치는 계곡 밑으로 밀어붙인다. 그럴 때는 되레 기분이 더럽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감정이 아닌 자극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고, 그럴 땐 내 눈에 흐르는 액체가 배설물처럼 느껴진다." - 본문 129P 중에서

뻔한 상황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눈물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영화들을 비판한 부분에서는 읽는 사람의 속이 시원할만큼 비유가 신랄하다. 좋은 영화를 말하든 그 반대이든, "참 재미있다"라는 말 한마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 속에 담긴 요소에서 찾아낸, 단어 그대로의 '영화비평'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최광희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살아있는 비평을 그저 무시해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실제로 책의 표지에는, 그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았음에도 "솔직하고 가감이 없어 그의 글을 찾는다"는 영화제작자의 추천사도 쓰여있다).

영화팬이라면 '무비스토커'가 되어보는건 어떨까요

젊은 시절에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과 영화를 보러갔다가 '매우 지루한 영화를 고른 죄'로 그녀와 멀어진 경험을 한 이후, 영화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게 되었다는 '웃픈' 이야기. 최광희를 영화평론가의 길로 인도한 시발점이 된 사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처럼 그의 책도 우리네 일상을 말하고 있으며, 웃기면서도 슬프다. 누구나 인생이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것처럼.

책에서는 영화 자체에 대한 비평과 더불어, 최근 영화계에 대한 비판도 볼 수 있다. 내용보다 '애국심 자극'을 내세우며 영화를 홍보하는 비뚤어진 자세와 '포털의 별점주기'가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는 권력이 되어버린 세태, 그리고 거액이 투자된 영화들이 상영관을 지나치게 장악하면서 영화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현실까지.

사실 이러한 문제점들은 크게 보았을 적에 한가지 태도를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관객들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무엇보다, 자극적인 요소에만 이끌려 매몰되는 자세'일 것이다. 영화를 그저 2시간동안 감정을 소모하는 잠깐의 흥미거리로 생각하기에는, 매우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이끌어가는 문화산업이다. 그들을 '쇼를 만들어내는 광대'라고만 여기는 것은, 어찌보면 관객의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처사가 아닐까.

일시적인 재미에만 열광하는 분위기가 지금의 기형적인 영화시장 형성에 일조했음을 생각해보면, 좁아지는 영화비평의 지위도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변화도 필요하다. 자극이 아닌 컨텐츠에 반응하는 관객이 더 많아져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관람을 즐기는 영화팬이라면, 단순한 흥미를 넘어 좋은 영화를 쫓는 '무비스토커(Movie stalker)'의 길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다양한 영화를 폭넓게 이해하고 나면, 영화평론도 멋드러지게 할 수 있는 '무비스 토커(Movie's talker)'도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 영화에 다가가는 일이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영화평론가 최광희가 쉬운 문체로 펴낸 <무비스토커>가 여러분을 도와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무비스토커> 최광희 씀, 마카롱 펴냄, 2013.04, 1만3000원



무비스토커 - 달짝지근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 같은 인생이여

최광희 지음, 마카롱(2013)


태그:#무비스토커, #최광희, #영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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