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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티고네' 포스터
 연극 '안티고네' 포스터
ⓒ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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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는다. 인간의 나약함을 동력으로 더욱 맹렬하게 달릴 뿐이다.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채 수레바퀴에 몸을 싣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진다.

연극 <안티고네>는 자신만의 신념만을 쫓아 '운명의 수레바퀴'에 올랐다가 스스로 파멸하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이야기다.

국립극단의 연극 <안티고네>는 2500년 전 작가 소포클래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현대성을 입혀 더욱 섬뜩한 비극으로 관객을 찾아왔다. 이번 공연은 연극 <아워타운>, <대학살의 신>, <레이디 멕베스> 등으로 한국 연극계를 놀라게 했던 한태숙 연출가가 지휘봉을 잡았다.

작품은 지난해 연극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연극 <오이디푸스>의 후속작이다. 여기에 배우 신구, 박정자 등 연극계 거물급 배우들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동시대성을 얻은 '영원불멸의 서사'

어둠 속에서 비명이 솟구쳐 오르면, 어둠 속에서 '새'가 '까아악'하고 소름끼치게 울부짖는다. 이윽고 음습하게 울려 퍼진 '반역자!'라는 외침이 점점 커져오고, 비탈진 무대 위로 성기만 뜯겨진 흉측한 몰골의 시체 하나가 굴러 내려온다. 시체는 근친상간이라는 태생적 비극을 안고 태어난 '안티고네'의 오라비 '폴리니케스'다. 그는 아버지의 나라 테베의 통치권을 빼앗아오기 위해 칼을 잡았다가 테베를 지키려는 동생 '에테오클래스'와 맞서게 된다.

결국, 두 형제는 서로의 심장에 칼을 꽂고 죽어버리고, 그들의 숙부 '크레온'이 새로운 왕이 된다. '크레온'은 왕이 된 후 첫 번째 칙령으로 '폴리니케스' 시신을 향해 '짐승 외에는 누구도 손댈 수 없다'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왕이 내린 '인간의 법'을 어기고 '신의 법'을 따라 오빠의 시신을 묻어주려 한다.

'시간'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안티고네'의 비극성은 시대를 따라 얼굴을 바꾸며 늙지 않는 '영생의 삶'을 살아왔다. 오히려 2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인간의 절규를 벽돌 삼아 '비극의 탑'을 더욱 공고하고 거대하게 쌓아왔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정의와 도리를 따르는 '신의 법'과 왕의 칙령이라는 '인간의 법'이라는 신념을 두고 끊임없이 대립한다. '안티고네'는 비극을 온 몸으로 체감한 인물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동침한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가족의 모든 비밀이 밝혀진 후 아버지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찌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자결한다. 두 오라비는 서로의 심장에 칼을 꽂았고, 하나 남은 여동생 '이스메네'는 두려움 속에서 숨어 지낸다. 이 보다 더 한 비극이 있을까.

'안티고네'는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이 비극 속에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인간의 자기파괴적 열망'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이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는 '크레온'의 물음에 "나 같은 사람에게 죽음은 오히려 축복인 걸요. 난 산채로 무덤에 들어가지만, 당신은 죽은 채로 이 땅에 살겠죠"라고 말하는 그녀의 대답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반면 '크레온'은 맹목적 신념으로 왕의 자리를 지키는 자다. 눈치 백단의 정치가인 그는 갖은 회유로 칙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그가 치켜든 매가 크고 무거울수록 더욱 자기 파괴적으로 변해간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각자의 신념에 사로잡혀 지옥의 불구덩이로 스스로 뛰어드는 인물들이다. '안티고네'는 지하 감옥에서 죽음으로 '자기 파괴 열망'의 끝을 맺는다. '크레온'은 노련한 정치적 계산을 앞지르는 신의 계획(안티고네를 죽게 하고, 그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이 그 시체를 발견하게 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결국 그가 사랑했던 아들과 부인을 모두 한 날 한 시에 잃는다. 섬뜩한 운명 앞에 놓인 두 인물의 비극은 '영원불멸한 서사의 힘'으로 우리의 심장에 다시 한 번 칼을 겨눈다.

한태숙 연출가는 비극을 무대에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작에서 '원로시민'으로 등장하는 '코러스'는 '시민들'로 등장한다. '폴리니케스'의 죽음과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쉽게 끓고 쉽게 식어버리는 시민들의 모습은 현재 사회의 대중과 다를 바 없어 더욱 섬짓하다.

연극 '안티고네'에서 정치 백단의 왕 '크레온' 역을 맡은 배우 신구.
 연극 '안티고네'에서 정치 백단의 왕 '크레온' 역을 맡은 배우 신구.
ⓒ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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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그 자체였던 배우들... 극장 음향 아쉬워

연극 <안티고네>는 공연 전부터 배우 신구의 출연으로 먼저 화제를 모았다. 브라운관에서 인자한 이미지를 주로 연기했던 그가 무대 위에서 노림수 백단의 왕 '크레온'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배우 신구는 맹목적인 늙은 왕의 신념을 자신에 맞춰 능숙하게 풀어냈다. 다만, 특유의 억양 속에 묻혀 흐려진 대사의 맛은 아쉽게 남았다.

'안티고네' 역의 김호정은 잘 단련된 연극인답게 능숙한 연기를 펼쳤다. 가혹한 운명 앞에 선 '안티고네'를 기민한 눈빛으로 녹여냈지만 다소 높은 연기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극중 단연 눈에 띄었던 배우는 '파수꾼' 역의 손진책과 예언자 '테이레이시아스' 역을 맡은 박정자였다. 손진책이 맡은 '파수꾼'은 '안티고네'의 저항을 왕에게 고해바치는 인물이다. 한 번에 내쉬는 호흡이 길어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작품의 리듬을 환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찰진 대사 연기로 관객이 숨 돌릴 틈을 제대로 열어줬다.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는 단 두 번의 장면 출연만으로도 전 공연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그는 신과 인간의 중개자 '테이레이시아스'를 맡아 섬뜩하고 기괴한 인물을 창조해냈다.

새롭게 개관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음향은 아쉬움이 남았다. 배우가 객석 쪽으로 대사를 할 때는 또렷이 들리지만, 고개를 조금만 무대 안쪽으로 돌려도 '웅얼웅얼'하는 둔탁한 소리로 들려 대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연극 <안티고네> 공연 정보 
안산공연
공연장소 :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
공연날짜 : 2013.05.24 ~ 2013.05.26
공연시간 : 금20시, 토/일 16시
출연 : 신구, 박정자, 이호정 등

대전공연
공연장소 :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앙상블홀
공연날짜 : 2013.06.21 ~ 2013.06.23
공연시간 : 금 오후 7시 30분 / 토 오후 7시 / 일 오후 3시
출연 : 신구, 박정자, 이호정 등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테이지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안티고네, #신구, #연극,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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