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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지슬'(감독 오멸). 미치도록 잔인했던, 차라리 그냥 영화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던 제주 4.3항쟁을 다룬 이 저예산 영화는 지난 4월 29일 누적관객 13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다양성 극영화 최다관객수를 기록했다.

우리가 흔히 '한국전쟁'이라고 알고 있는 1950년 6월이 오기 2년이나 전에 제주도에서 자행되었던 이 잔혹한 살육전은 고립된 섬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영화 지슬이 전해주는 진정한 슬픔은 이 영화가 실제 참상의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쟁의 진정한 비극은 포탄과 미사일,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방에서가 아니라 후방 깊숙한 곳, 미사일과 포탄으로부터 자유로운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4.3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가 또 있을까?

누가 '빨갱이'를 만들어내나

오래 전, 칼 슈미트라는 독일 법철학자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공동체의 내적 통일성은 내부의 실질적인 동일성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적에 대한 '동일시'로써, 내부의 이질적인 것을 배제·섬멸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언제나 '적'을 필요로 하며, 단일한 '우리'를 거부하는 내부의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해 낸다. 어느 곳에서 이 내부의 적은 피부색으로 규정되었고, 어느 곳에서는 혈통에 근거한 신분이었다.

눈으로 확인되는 구분점이 없는 곳에서는 새로운 대상을 만들기도 했다. 4.3에서,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또 그 이후로도 우리에게 내부의 적은 '빨갱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종으로 발명되었다. 가차 없이 제거해야 하는 존재, 내부의 통일성과 안정을 위협하는 존재로써의 빨갱이는 그 아무리 정당성이 취약한 권력이라도 그 기반을 확고히 다져주는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기반이 취약한 권력일수록, 안정을 위협받는 권력일수록 '빨갱이를 척결하는 고결한 임무'를 자임하고 나섰다. '빨갱이'에 대한 적대의 동일시는, 빨갱이로부터 자유와 안전을 수호할 권력자에 대한 일방적 충성을 강요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독재의 역사며, 오늘날 '종북좌파 척결'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현상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다. 국정원 정문앞에 비리케이트가 겹겹이 설치되어 있다.
▲ 압수수색 당하는 국정원, 겹겹이 바리케이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다. 국정원 정문앞에 비리케이트가 겹겹이 설치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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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사상 두번째의 치욕스런 압수수색을 당한 국정원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인 행태는 이런 어두운 역사의 반복이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밝혀낸 국정원 연계 아이디의 여론조작 관련 글들은 하나같이 외부의 적(북한)에 대한 공세를 바탕으로 내부의 경쟁자(야당후보)를 적과 동일시하는 전략에서 작성됐다. 여기에 내부의 적으로부터 자유와 안정을 수호할 단 하나의 인물로 누가 선택되었는지는 당연지사다.

처음 수사를 맡았던 경찰 수뇌부가 수사담당자도 모르게 대선 3일 전 '혐의 없음'을 섣부르게 공포했음에도, 이제 사건의 진실은 하나 둘 씩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나라의 공안기관들은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검찰이 국정원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간 바로 그날, 국정원 사건에 대한 어이없는 수사결과 발표로 톡톡히 망신당했던 경찰은 청년단체 회원 10명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가 이 중 한명을 체포하면서 명예회복을 노렸다. 이적단체를 구성했다는 무시무시한 혐의로.  

어마어마한 정보기관과 같은 날 압수수색을 당한 곳은 '6.15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청년모임 소풍'(소풍)이라는 작은 청년 단체다. 경찰은 이들이 연방제 통일에 동의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북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단체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지만, 단체의 강령 어디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오직 2000년 남과 북의 정부가 공식 합의한 '6.15공동선언'에 대한 대중적 실천을 강조한 내용뿐이다.

사실상 2000년 이후 거의 모든 통일운동단체는 더 이상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지 않고 있으며, 대신 남과 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 실천을 내세우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과 북이 각자의 현 체제를 인정하자는 연방제에 동의하거나 외국 군대의 철수를 주장한들 또 어떤가?

그 정도의 의견개진이 우리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발상은 외려 우리 체제에 대한 진정한 모독 아닌가? 더구나 압수수색을 당한 소풍이라는 단체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청년실업문제나 최저임금, 봉사활동과 반전평화 운동에 주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단체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관련인사들이 이적단체 구성혐의로 구속된 '6.15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연대'(6.15청학연대)에 대한 가입을 명분으로 2011년 5월 4일 '6.15와 함께하는 청년우리' 회원 5명, 2012년 5월 22일 부산 청년단체 '젋은 벗' 회원 3명, 2012년 5월 24일 대구지역 청년단체 '길동무' 전직간부 3명, 2012년 12월 27일 경남창원지역 청년단체 '푸름' 회원 6명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6.15청학연대는 그 이후 실질적으로 해소되어 현재 아무런 활동도 없는 상태다. 경찰이 국정원 사건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몇 년 간 묵혀 놓았던 사건을 끄집어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지난달 30일 압수수색 대상자 중에는 이미 탈퇴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종북좌파' 낙인찍기의 위험성

국정원의 댓글 조작과 청년단체 압수수색을 비롯해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공안사건은 모두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광기를 기반으로 삼거나, 이를 적극 부추기는 데 이용되고 있다.

영화 지슬이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거나 과거의 사건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 당시의 참혹한 살육전의 논리, 즉 모든 합리성을 싸잡아 야만의 구렁텅이로 던져 버렸던 내부의 적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제거 심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민주노총, 전교조, 4대강범대위 대표자들이 3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원세훈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했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원세훈 원장은 이들 단체를 '종북세력' '내부의 적'으로 지목했다.
▲ 민주노총,전교조,4대강범대위 - 원세훈 국정원장 고소 민주노총, 전교조, 4대강범대위 대표자들이 3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원세훈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했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원세훈 원장은 이들 단체를 '종북세력' '내부의 적'으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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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런 저급한 광기가 득세하고 공안정국이 형성되고 있는 현상의 이면에는 '종북'이라는 단어를 발명해 낸 진보진영 일각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개념이 진보세력 일부의 입에서 생산됨으로써 '종북세력 척결'의 논리를 부분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북'은 애초에 그것을 발명했던 이들이 겨냥했던 대상과 의미를 이미 떠나 버렸으며, 이제는 공안기관의 공식적인 문서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개념이 되어 버렸다.

민영화에 반대하거나, 천안함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거나,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반값등록금을 주장하거나 국정원 댓글 조작을 비판하는 것도 '종북좌파'로 낙인찍힌다. 심지어는 종북척결을 입에 걸고 다니는 자칭 언론인과의 논쟁에서 이기기만 해도, 정치와 무관한 팝 아티스트가 순식간에 종북좌파의 첨병으로 내몰리는 세상이다. 국정원의 여론조작에서 알 수 있듯이, 맹목적인 종북 프레임은 어떤 정치적 반대파도 종북세력으로 프레이밍 할 수 있는 무한한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

일례로 한국사회에서 북에 가장 비판적인 정당이자 '종북'이라는 표현을 제일 처음 사용한 사회당 당원이었던 박형근씨는 북한의 공식 선전물을 활용하여 북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2012년 11월 21일,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로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는 코미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서슴없이 진행되는 압수수색과 이적단체 혐의의 남용은 그 칼날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종북이라는 개념은 구체적 행위나 근거로 규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을 규정 '당하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빨갱이'나 '좌파'처럼 그래도 어느 정도 정치적 신념과 사상을 반영했던 개념과 달리 적으로 규정된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꼭두각시라는 이미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더욱 악의이다. 해석을 독점한 집단에 대한 반대와 이견, 북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조차 무시무시한 간첩으로 만들어 버리는 종북 광기는 이제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국가보안법은 정치권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의도적으로 회피당하는 의제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공안사건과 구속자에 대한 대응은 철저히 피해자나 피해자가족의 몫으로 남겨지고 있으며, 국정원의 여론조작에 대해서도 그 행위의 선거개입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 종북 프레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까지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종북 프레임을 지금처럼 외면하려고만 한다면, 우리 사회의 합리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일간베스트'류의 유치함이 이성을 압도하여 광기로 변질되는 상황은 이제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섰다. 1948년 제주주민을 무차별하게 학살했던 그 광기의 맹아가 이곳 저곳에서 발견된다.

이제 철지난 유행어만 되풀이 하는 이 철없는 광기에 제동을 걸어야할 때다. 무엇보다 이 광기의 논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유치하다. 부끄럽지 않은가?


태그:#종북 프레임, #소풍,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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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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