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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가 낚시줄에서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미끼였습니다. 옆자리 직장동료가 긴 한숨을 내쉽니다. 헛된 욕심이 부른 비극입니다.
▲ 절망 미끼가 낚시줄에서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미끼였습니다. 옆자리 직장동료가 긴 한숨을 내쉽니다. 헛된 욕심이 부른 비극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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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헉! 미끼가 사라졌어. 줄이 끊겼네."
직장동료 : "(긴 호흡)... 괜찮아요. 비싼 미끼도 아닌데..."
나 : "마지막 남은 미끼였는데 미안해서 어쩌지?"
직장동료 : "(잠시 침묵)... 낚싯대 접으라는 하늘의 뜻이죠."

팔을 힘껏 뒤로 젖힙니다. 먼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시원스레 휘두릅니다. 예쁜 미끼가 어두운 바다 위를 훨훨 날아갑니다. 이윽고 먹잇감을 노리는 갑오징어 무리 한가운데 정확히 떨어집니다. 눈동자를 미끼가 떨어졌을 만한 먼 거리에 두기 무섭게 입질이 옵니다.

가짜 미끼에 눈이 먼 갑오징어 떼가 사납게 달려듭니다. 힘찬 낚시질에 팔뚝 만한 갑오징어가 먹물을 뿜으며 올라옵니다. 멋진 모습이죠? 하지만 팔뚝 만한 갑오징어, 상상 속 생물일 뿐입니다. 온몸으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지만, 초보 낚시꾼에겐 부질없는 환상입니다.

낚싯대에 욕심을 한가득 실어 먼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더니, 미끼가 물 속에 빠지는 소리가 꽤 가까운 곳에서 들리더군요. 자세히 보니, 앙증맞은 녀석은 가로등 불빛으로 환한 코 앞 물 속으로 맥없이 떨어지더군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죠. 낚싯대를 휘두르자 두 가지 소리가 거의 동시에 귀에 닿았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툭'과 '퐁' 하는 소리였습니다. 낚싯줄이 끊긴 겁니다. 마지막 남은 미끼가 여수 밤바다에 빠진거죠. 저와 직장동료는 허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지난 26일 저녁, 쟁반같이 둥근달이 여수 밤바다에 떠올랐습니다. 여수 국동 다기능 어항단지로 차를 몰았습니다.

여수 밤바다에 쟁반같이 둥근 달이 떴습니다.
▲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에 쟁반같이 둥근 달이 떴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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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불빛 아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낚시를 합니다. 일곱살 아들은 볼락을 세마리 잡았습니다. 아버지 낚싯대는 조용합니다.
▲ 아버지와 아들 가로등 불빛 아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낚시를 합니다. 일곱살 아들은 볼락을 세마리 잡았습니다. 아버지 낚싯대는 조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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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물고기가 올라옵니다. 갯장어입니다. 두 청년 입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요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더군요.
▲ 월척 묵직한 물고기가 올라옵니다. 갯장어입니다. 두 청년 입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요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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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 만한 갑오징어, 그 맛은 어떨까요?
두 청년이 장어를 잡아올립니다. 쉼 없이 울려대는 방울소리가 귀에 거슬리더군요.
▲ 갯장어 두 청년이 장어를 잡아올립니다. 쉼 없이 울려대는 방울소리가 귀에 거슬리더군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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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10분 거리인데, 요즘 맛난 갑오징어가 심심찮게 잡힌답니다. 인터넷에도 맛있는 소식이 많이 떠돈답니다. 퇴근 무렵, 직장동료가 전한 말입니다. 때문에 오늘 밤 그곳에서 낚시를 한답니다. 그 말 들으니 갑자기 궁금해지더군요. 팔뚝 만한 갑오징어는 어떤 모습일까? 또, 맛은 어떨까?

생각만으로는 알 길이 없기에 재빨리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국동으로 달려갔습니다. 물론, 낚시장비는 챙기지 않았죠. 솔직히 말하면 낚싯대가 없습니다. 여수 사람이면 대부분 낚싯대 한두 개쯤 가지고 있는데, 드물게 낚시와 거리를 둔 사람들이 있지요. 제가 그 부류에 속합니다.

여하튼 빈손으로 바닷가에 나타났더니 친절한(?) 직장동료가 저를 위해 낚싯대 준비해 두었더군요. 낚싯대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아들과 낚시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은 7살 아들이 작은 볼락을 세 마리나 건져 내는 동안 자신은 한 마리로 못 잡았답니다.

어떤 이는 텐트까지 쳤습니다. 밤새 낚시를 즐길 모양입니다. 공원으로 조성된 어항단지 끝에는 젊은 낚시꾼 두 명이 갑오징어 대신 갯장어를 낚고 있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더더군요. 많은 낚시꾼들이 서로 다른 희망을 품고 여수 밤바다를 향해 쉼 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더군요.

직장동료가 아들과 함께 밤낚시를 합니다. 팔뚝만한 갑오징어 잡힌다는 소식 듣고 한걸음에 달려 왔는데... 한마리로 건져 내지 못했습니다.
▲ 밤낚시 직장동료가 아들과 함께 밤낚시를 합니다. 팔뚝만한 갑오징어 잡힌다는 소식 듣고 한걸음에 달려 왔는데... 한마리로 건져 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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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징어 잡기위해 채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하루였죠.
▲ 채비 갑오징어 잡기위해 채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하루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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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징어를 잡기위한 가짜 미끼입니다. 예쁜 겉모습과 달리 날카로운 바늘을 숨기고 있습니다.
▲ 가짜 미끼 갑오징어를 잡기위한 가짜 미끼입니다. 예쁜 겉모습과 달리 날카로운 바늘을 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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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먼 바다에 미끼를 던졌습니다. 낚시줄이 팽팽합니다. 팔뚝만한 갑오징어를 건져 낼 수 있을까요?
▲ 긴장감 깊고 먼 바다에 미끼를 던졌습니다. 낚시줄이 팽팽합니다. 팔뚝만한 갑오징어를 건져 낼 수 있을까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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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회' 생각하며 낚싯대 휘둘렀지만 어신은 없었다

저도 그 대열에 끼었습니다. 헌데 동료가 준 낚싯대, 자세히 보니 조금 이상합니다. 미끼로 꿈틀대는 갯지렁이 대신 가짜 물고기를 쓰더군요. 말로만 듣던 루어 낚시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땐가요. 빨리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워 팔뚝 만한 갑오징어를 낚아야지요.

때문에 염치는 잠시 접어두고 동료가 건넨 낚싯대를 냉큼 받아들었죠. 막상 낚싯대를 잡으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통통한 갑오징어를 건져 올릴 생각에 몸까지 긴장됐습니다. 긴장한 탓일까요? 꽤 차가운 바닷바람이 쉼 없이 부는데도 추운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쌓이면서 몸에 한기가 스며들더군요. 4월의 끝자락, 완연한 봄이라지만 아직 바닷바람은 차갑더군요. 그 바람 맞으며 여수 밤바다에 가짜 미끼를 줄기차게 던졌습니다. 낚싯대를 깊은 바다에 던질 때마다 맛있는 상상을 했죠.

제가 직접 잡아 썬 통통한 오징어 회를 입 속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열심히 머릿속에 그리며 지겹도록 낚싯대를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초보 낚시꾼에게 잡힐 어리숙한 물고기가 얼마나 있겠어요. 밤은 깊어 가는데 어신(魚信)은 없었습니다.

전남 여수 국동 다기능 어항단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즐깁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여수 밤바다 풍경도 일품이죠.
▲ 어항단지 전남 여수 국동 다기능 어항단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즐깁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여수 밤바다 풍경도 일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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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태풍불면 걱정됩니다. 저 멀리 돌산대교가 보입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여수 바다입니다.
▲ 바람개비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태풍불면 걱정됩니다. 저 멀리 돌산대교가 보입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여수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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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을 뚫고 돌고래가 솟구칩니다. 들리는 소문에 이 녀석이 갑오징어를 몽땅 먹어치웠답니다.
▲ 돌고래 지면을 뚫고 돌고래가 솟구칩니다. 들리는 소문에 이 녀석이 갑오징어를 몽땅 먹어치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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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욕심, 소중한 무엇을 잃게 만듭니다

그렇게 시간은 10시 반을 훌쩍 넘기고 있었죠. 바닷바람에 몸이 부슬부슬 떨렸습니다. 다리 힘도 점점 풀려갔고요. 더 이상 서 있기 불편했습니다. 이쯤 되니 오기가 생기더군요. 더 멀고 깊은 바다로 미끼를 던지면 갑오징어가 잡히지 않을까? 온 힘을 다해 야심차게 낚싯대를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한가득 채운 욕심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미끼가 허망하게 낚싯줄에서 끊어져 버렸습니다. 야속한 미끼는 먼 바다도 아니고 가로등 환히 켜진 눈 앞 바다에 '퐁당' 소리를 내며 빠지더군요. 허망했습니다. 그날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나풀대는 낚싯줄을 감으며 물속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기술이 많이 부족했겠지요. 또 때를 잘못 택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제 마음자세였습니다. 팔뚝만 한 욕심이 마지막 남은 미끼를 잃게 만들었으니까요. 

헛된 욕심은 소중한 무엇을 잃게 만듭니다. 밤바다 낚시하면서 의미 있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나저나 여수사람은 객지에 나가면 두 가지 질문을 꼭 받는답니다. 첫째는 '맛집'에 대한 질문이고, 둘째는 물고기 잘 잡히는 곳에 대한 질문이라네요. 누군가 제게 두 번째 질문을 던지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태그:#여수 밤바다, #갑오징어, #루어낚시, #국동 다기능 어항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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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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