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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두 번째 주인공인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두 번째 주인공인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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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재단과 <오마이뉴스>가 함께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두 번째 시간은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한국대중음악연구소장인 강헌씨의 전시회였다.

강헌씨는 최근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 등으로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 만큼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이날(16일)의 '강헌전'은 우리의 상상을 보기 좋게 비껴간 '감동'의 힐링 콘서트였다.

강씨는 다른 대중음악평론가와 달리 정규 음악대학원을 마쳤다. 이날 전시회의 말미에 얘기 했던 자신의 이력에 대한 짧은 소개에서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국문과를 갔지만 '소설가는 국문과에 오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실감했단다. 그리고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판으로 음악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자신의 기대가 허상이라는 것만을 확인하고 마쳤단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영화였단다. 좀 뜬금이 없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 케이스라고. 독립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9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을 제작한 '장산곶매'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문제'는 냉혹했고, 마침내 그는 평생의 직업이 된 대중음악의 길로 접어든다. 그때 첫 일이었던, 대중음악 잡지의 기자로 출발할 때 당연하게 받은 질문은 '누구를 좋아하세요?'였단다.

그 질문에 강헌씨는 "베토벤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고, 오늘의 '사람이야기 강헌전' 역시 예상 밖의 화두인, 베토벤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인류 최초의 로커, 공화주의자, 시민사회의 첫 번째 시민음악가가 베토벤입니다."

강헌씨는 베토벤을 치열한 자기 혁신의 혁명가이자, 최초의 위대한 민중음악가로 규정했다. 강헌씨를 통해 듣는 베토벤은 새로운 대지의 경험이었다. 젊은 베토벤은 정규직(?)인 빈의 궁정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베토벤은 평생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꿈꾸었단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음악감독조차 하지 못하고 삶을 마친다. 빈은 그에게 평생 혹독한 도시였다.

강헌, 그가 베토벤 이야기를 꺼낸 이유

복잡한 혈통을 지녔던 베토벤은 검은 얼굴, 땅딸한 키, 천연두로 인한 곰보자국을 가져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를 안고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는 그에게 당연하게도 싸울 수밖에 없는 일생을 부여하기도 했지만, 항상 성공에 대한 집착 역시 갖게 했다고 한다.

"주체할 수 없는 민중에 열정,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고 싸울 수는 없었던 현실, 넘을 수 없는 외모 콤플렉스, 베토벤은 스스로와 끝없는 싸움에 접어듭니다."

베토벤은 가난했다. 지금 대다수의 음악인들처럼, 농민, 노동자들이 모이는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베토벤의 음악세계는 만들어져 간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작곡을 하고, 오후엔 산책을 한 후 선술집에서 서민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 뒤 잠드는 지독히 단순한, 그러나 지독히 치열한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당연히 베토벤의 음악은 당대의 주류음악인 궁중음악과 달리 귀족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고 강헌씨는 평가했다. 그리고 베토벤 음악에 대한 강헌씨의 평가가 이어졌다.

"베토벤은 3번 영웅교향곡의 출판 직전까지 나폴레옹에게의 헌정이란 것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후원이 필요했지, 혁명의 영웅에게 바치는 헌정은 최소한 그 다음이었습니다."

3번 영웅 교향곡은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을 알리는 장중한 신호탄이었다. 신호탄치고는 지나치게 '파괴적'이었다. 결과적으로 1789 프랑스 혁명에서 영향을 받은 공화주의자 베토벤은 혁명적 '영웅'을 민중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자신의 전쟁은 그 이후 수많은 작품들로 현실이 된다. 이어진 5번 운명 교향곡의 3악장은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하고 트럼본이 곁들여지는데 당시엔 잘 다루지 않는 강한 음과 거슬리는 저음을 내는 악기를 사용한 것이다. '인류 최초의 로커'로서 기존 주류음악을 깨는 시도를 감행한 것이다.

빈의 지배엘리트들은 베토벤의 음악이 거칠고, 우악스럽고, 시끄럽고, 제멋대로라며 경시했지만 그건 바로 베토벤의 음악이 '민중적'이었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이다. 실제로 농민들은 봉기할 때 베토벤의 음악에 가사를 붙여 투쟁의 현장에서 불렀다고 한다.

베토벤은 정치적, 사회적 공화주의자로서 실천적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1% 특권층, 정규직을 꿈꿨었지만 그들에게서는 버림받고, 99%의 민중들이 그를 전설로 남게 해주었던 것이다. 좌절한 그의 유일한 안식처인 지저분한 선술집의 농민, 도시노동자, 창녀들이 그에게 인간의 비극적 상황, 익살, 생존본능, 좌절, 번민, 고뇌, 갈등이라는 소재를 던져주었기에 베토벤은 '인생의 용광로'에서 자신을 태워 위대한 민중의 음악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음악에서도 약탈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진보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두 번째 주인공인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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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왜 강헌씨는 우리에게 베토벤을 화두로 던졌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지만, 그 궁금증은 이내 풀어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한국음악계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담긴 2집 앨범이 70만장이나 판매된 것이다. 강헌씨는 이후 이어진 3집의 초라한 판매실적과 비교해 볼 때 당시 20~30대의 청년 학생들이 2집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는 평가를 했다. 당시 진보의 주력이었던 20~30대가 아니라 전교조 해직사태를 겪으면서 생애 처음 보수 대 진보의 갈등을 겪은 고교생들이 노찾사 앨범을 소비하는 문화적 행동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보의 문화적 소비는 허상이라고 냉혹하게 평가했다.

10대 '노찾사' 팬들은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 되었고 노찾사 3집 앨범은 20만장의 판매를 올리는 데 그쳤다. 그는 "진보가 만들어 놓은 저항과 희망의 어젠다를 주류에게 다시 빼앗겨 버린 것"이라고, "약탈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의 진보는 정치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약탈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헌씨는 '약탈의 시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던 미국의 이야기를 전했다. 미국 내 흑인은 인구의 11%를 차지하는 소수지만 이들의 음악은 결코 소수가 아니란다. 1910년대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재즈(jazz)'가 시작되었으나, 이후 상업적으로 재즈를 유행시킨 사람들은 백인들이었다. 재즈음악을 약탈당한 흑인들은 다시 '리듬&블루스(Rhythm and Blues; 'R&B')'를 만들었으나, 백인들은 이를 다시 '로큰롤'로 만들었다. 

이에 1970년대 초반 흑인들은 '디스코(Disco)'라는 음악을 만들었고 또 다시 백인들은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를 통해 무명배우 존 트라볼타를 스타로 만드는 등 상업적으로 적극 활용했다. 이후 흑인들은 그라피티(graffiti), 클럽 디제이 믹싱(DJ MIXING), 브래이크 댄스(Break Dance)를 결합해 '힙합'이라는 음악을 만들었다. 이렇게 흑인들은 끊임없이 백인들에게 문화를 약탈당했지만, 그러면서 투쟁적 진화를 거듭했다. 자신들의 예술문화를 포기하지 않고 발전시킨 것이다.

강헌씨는 베토벤, 노찾사, 흑인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어떠한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오늘날의 문제를 '시도하지 않는 예술가'와 '충성심 없는 진보'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지금의 예술문화는 지나친 자기검열을 하고 있고, 지나친 자기검열로 인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FM청취율이 가장 높은 방송사가 CBS FM이라고 한다. 스타 진행자 한 명 없으며, 최신 유행가요 방송 드문 80~90년대 음악을 중심으로 시시껄렁한 방담이 없는 음악으로 승부하는 방송이 CBS FM이라 한다. 그런데 청취율이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돌이 휩쓰는 음악시장에서 80~90년대 노래들을 갈구하는 진보적인 시민들이 다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 한다. 이를 엮어줄 네트워킹 작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시민은 준비되어 있는데 누가 함께할 것인가? 오늘 강헌씨의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상처 받은 이들 위한 또 하나의 힐링, 사람이야기 강헌전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두 번째 주인공인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두 번째 주인공인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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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베토벤의 끊임없는 투지와 열정을 그리워하며, 노찾사의 민중적 진보성을 갈구하며, 흑인들의 투쟁적 진화에 박수를 보내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민중들에게 시대의 의미와 열정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이날 강헌씨는 한국 대중음악의 이야기나, 싸이의 대단한 성과 또는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의 살아온 이야기를 기대하고 왔던 우리의 예상을 깨고 정치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음악과 베토벤을 통해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후 가라앉아 있는 시민과 진보진영에게 새로운 출발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그 스스로도 베토벤을 기억하며, 시민들과 나누며, 스스로 힐링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헌씨는 지금이 '베토벤'이 필요한 시기이며, 그가 말년에 꿈꾸었지만 실현시키지는 못했던, '최초의 시민문화콘텐츠소비협동조합'인 '예술상점'의 구상을 실천해야할 시점이라고 이야기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우리 모두는 36.5° 사람의 '온기'가 진보적 음악을 통해 '열기'로 올라가는 데 기여할, 숨어있는 우리시대의 '베토벤'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문화예술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리시대의 '베토벤'을 기다린다. 참으로 열정적인 이야기꾼 강헌씨를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재미있는 재단과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 안내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포스터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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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은 사단법인 재미있는 재단이 기획 주관하며, 오마이뉴스와 함께 합니다. 재미있는 재단은 문화를 중심으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재미있는 재단의 다양한 사업들, 미국 MBA 진출지원 프로젝트 '개천에서 용났다'와 소소한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 영상 교육 프로젝트 '비추다'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사업들 중의 하나로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을 을 기획하고 전개해 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은 매주 화요일 지속적으로 개최 됩니다. 먼저 문화계를 비롯한 궁금한 우리 시대의 인물로부터 점차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전시'하는 재미있는 사업입니다.

신촌 현대백화점 옆의 텍사스아이스바(02-325-0088)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호프 한잔과 함께 편안한 대화의 장으로 진행되는 '사람이야기 전'은 누구나 스스로를 이야기 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날 그날 진행된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한달의 행사를 사전에 공지하고, 만나고 싶은 분이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 주시면 됩니다. 참가비는 간단한 식사거리와 맥주, 강연료 등을 포함하여 2만 원이며, 대학생의 경우 50% 할인해 드립니다.

자연스런 우리시대의 삶의 전시 공간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지난 주 '이희재전'에 안내해 드린 23일 '영화제작자 최재원 전'과 30일 '가수 손병휘전'은 날을 바꿔 23일 '가수 손병휘전', 30일 '영화제작자 최재원전'으로 진행됨을 알려드립니다.



태그:#강헌, #재미있는이야기전, #재미있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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