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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사람들> 겉표지
 <벼랑에 선 사람들> 겉표지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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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아마추어적인 모습이 프로들보다 더욱 뛰어나 보일 때가 있다. 세련됨보다는 투박함이 진솔한 힘을 가지기도 하고, 날 것이 주는 공감대와 몰입감이 신선하기 때문이다.

이 책 <벼랑에 선 사람들>도 그렇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들이 만든 온라인 신문인 <단비뉴스>에 연재된 글들을 묶은 것인데, 모두 뛰어난 현장감을 제공한다.

저자들은 이 글들이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의 고통과 절망이 더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극에 달했는데도, 정치권과 언론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는 다섯 가지를 일자리, 주거, 보육, 의료, 부채로 선정하고 이들 각각의 주제에 대해 팀을 꾸려 현장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흔히 경쟁에서 뒤처져 궁핍하게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으라 일해도,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쳇바퀴에 갇혀버린 사람들이 있다. 죽을 힘을 다해 살아보고 싶지만, 건강을 잃어서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가난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내 탓'인 서글픈 사람들

가락시장에서 일꾼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취재를 위해 직접 일했던 기자는 숟가락이 후들거려 밥을 먹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일을 하지만 정작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다. 안정적으로 일하기도 어렵다. 누구보다 고된 일을 하지만 누구보다 적은 보상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들의 거처는 주로 고시원과 찜질방이다. 임시 주거를 전전하는 동안 복지 혜택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되어 버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글쓴이에게 작업장 한구석에 보리차를 담은 페트병을 알려주며 '목에 좋은 거니까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동생만 마셔'라고 했던 준수, 새까만 얼굴에 주름도 많았지만, 시장 사람들이 '노숙자'라고 놀려도 항상 어린애처럼 맑은 웃음으로 받았던 계원. 그들의 이마엔 늘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결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인가. 책으로만 판단컨대 최소한 그들은 잘못이 없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으며, 누구보다 따뜻했다. 그런데도 식대 몇백 원을 아끼기 위해 시장에서 더 먼 김밥가게를 찾아 걸어야만 한다.

"김씨, 박씨, 준수 형님은 모두 '자기 하는 만큼 벌어가니 열심히 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술 먹느라 돈 못 모으고, 제때 안 나와서 월급 못 받고, 일 못해서 욕먹는 것은 모두 '내 탓'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사회 구조나 제도에 의문을 품는 것은 그들과 거리가 먼 일이었다. 밤새도록 뼈 빠지게 일했는데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를 벌고, 작업장에서 기계 취급을 받고, 다치거나 병이 생기는 경우에도 아무런 보장이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무능과 불운을 탓할 뿐이었다." (40쪽)

내 몸 하나 편히 뉘일 곳 없는 사람들... '주거 빈민'

집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한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하여 피곤한 상태로 집에 들어서더라도 온수에 샤워하고 따뜻한 내 방에 누우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아마 하루 중 가장 편한 시간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집'은 그저 단순한 재산이 아니다.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안전망이다. 그런데 이런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주거 빈민'들이다.

이 역시 학생들은 직접 발로 뛰어 취재했다. 직접 가서 눈으로 봤고, 귀로 들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하루 6천 원짜리 쪽방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만화방이나 다방에서 다리를 구부린 채 쪽잠을 청했고, 그마저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은 지하도 기둥 아래 박스 종이를 펴고 몸을 뉘었다. 판교신도시 개발 때문에 세들어 살던 집과 공장에서 내쫓긴 뒤 다섯 번의 겨울 추위를 뜨거운 물통을 안고 버텨야만 했던 중년 여인도 있었다. 지하 셋방에서 물난리를 만나 망연자실한 노인, 방음이 안 되는 고시원에서 숨죽여 살아야 하는 청춘, 몇 번이나 무슨 냄새가 나지 않느냐 묻던 화재 위험에 시달리며 비닐하우스에 살든 할머니, 모두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주거 빈민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산적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뒤로하고, 투기꾼들과 건설업체의 돈벌이를 장려하는 정부정책이다. '집은 곧 인권'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서민들의 집보다 땅값과 집값을 올리는 데 열심이다. 이런 열성을 국민의 주거복지로 전환할 생각은 없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땅주인과 건설업체는 로또를 맞은 기분이겠지만, 정작 그 땅에 사는 주민은 대부분 더 불편하고 누추한 변두리로 계속해서 밀려날 뿐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저항하던 철거민이 무리한 경찰의 진압 작전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개발 이익의 일부를 원주민들에게 정당하게 보전해주는 제도가 서둘러 자리 잡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또 거리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옥상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또 일부는 그래도 몸을 뉘일 수 있는 어딘가를 찾아 밀려나겠지.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한 '주거 빈민' 김씨의 마지막 절규가 처량하다.

"재개발로 잘살게 해준다던 정치인들 다 어디 갔어? 땅 있는 놈들은 수십억, 수백억을 벌었다는데 돈 없는 사람들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쫓겨나는 게 재개발이야? 그래도 판교 개발 전에는 살 만한 시절이 있었다고……." (141쪽)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가난한' 사람들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아등바등 살아보려 노력하는 이들이다.

아무리 아파도 돈이 없으면 병원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내팽개쳐지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치료해주고 집에 갈 차비까지 챙겨주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지구 상에는 그 양극단 사이에 다양한 사회의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는 구성원들의 합의와 선택에 달렸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이니까. 책은 독자들에게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인지 묻고 있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덧붙이는 글 | <벼랑에 선 사람들> l 제정임, 단비뉴스 취재팀 지음 l 오월의봄 펴냄 l 2012.04 l 13,500원

이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벼랑에 선 사람들 -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

제정임.단비뉴스취재팀 지음, 오월의봄(2012)


태그:#단비뉴스, #벼랑에 선 사람들, #오월의봄, #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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