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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인생 학교>
▲ 책겉그림 <그리스 인생 학교>
ⓒ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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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학교다. 태어나서 죽음을 맞는 그날까지 숱한 것들을 배운다. 어렸을 때는 가정에서, 커가면서는 제도권 학교(혹은 그에 준하는 교육기관)에서 뭔가를 배운다.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 배움이 끝나는 걸까. 아니다. 사회인이 돼서도 여러 스승들로부터 뭔가를 끊임없이 배운다. 직장의 선배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어른들로부터 말이다.

다만 한국과 유럽의 학교 풍토는 다르다. 흔히 한국에는 일방적인 교육 풍토가 심어져 있다고 평가된다. 우리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토론하기보다 선생님의 일방적인 주입에 매몰되기 쉽다. 반면, 유럽은 쌍방향 교육 풍토가 조성돼 있다. 유럽의 학교들이 '노마디즘'과 '창발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자유로운 풍토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진취적 도전 정신은 본래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해양 노마드'의 본산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이야말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바벨로니아 등과 함께 활발한 자유 교역을 일궈냈지 않던가.

"디오게네스는 노숙인이었지만 왕도 부러워하지 않은 여유를 자랑했고, 노예이자 절음발이었으나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의 스승이 된 에픽테토스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들어가는 말)

종교전문기자 조현의 책 <그리스 인생학교>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2500년을 넘나드는 그리스 시간 여정을 통해 삶과 죽음, 소유와 무소유, 탐욕과 자족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 여정 속에서 저자는 인류의 탄생부터 멸망까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속에서 인간이 버릴 것은 과연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삶의 이유를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성찰하고 답을 얻게 한다.

소크라테스·플라톤처럼 살자고 권하는 '학교'

<그리스 인생학교>의 첫 번째 챕터가 '금욕의 나라, 아토스 산'인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영혼의 고향'과 같은 세계 유일의 수도원 공화국 '아토스 산'에 저자가 발을 들여놓은 것도 실은 인간이 비워내야 할 욕망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결국 그는 플라톤의 말 "남이 아닌 자신을 정복한 자가 고결한 최상의 승리자다"를 가슴 깊이 새기게 한다.

그리스 아테네는 위대한 철학자를 배출한 곳이다. 그곳에 우뚝 솟아 있는 두 인물의 동상은 그들의 존재감을 더욱 확고하게 한다. 이들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두 철학자야말로 원시적 신화 속에 잠자고 있던 인간의 이성을 일깨운 인물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고뇌에 찬 현실을 부둥켜안았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천상을 거닐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오늘날의 인생들이 물질을 최우선으로 삼는 물질숭배자처럼 살아가는 마당이니 말이다. 그 속에서 어찌 이상향의 세계를 더 숭고히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저자가 그들을 통해 우리들의 인생을 조명코자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비록 그들과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이 진리와 가치를 찾고자 애쓴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를 추구해 보자'고 권하는 것 같다. 그것이 설령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때로는 독배를 마시는 일일지라도. 저자는 자신만의 가치에 참되게 몰입하길 바라는 듯하다. 이럴 때 '노마디즘'과 '창발성'이 솟구칠 수 있지 않을까.

일반적인 문명 답사기라고? 결정적 차이 있다

"요한이 파트모스 섬에 갔을 당시는 너무 노쇠해 설교를 해야 할 때는 항상 신도들에게 부축을 받았다고 한다. 요한은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에 신도들이 불평을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 요한이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게 된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본문 324쪽)

성경에 나오는 사도요한의 밧모섬에 관한 대목이다. 로마의 강압 속에서도 카타콤 신앙을 지키려 할 때 역풍을 맞은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치세 당시 유배길에 올랐다. 세상과 고립된 그곳에서 그는 천상의 세계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 비록 몸은 억압됐지만 영혼만은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곳에서 '사랑'을 외친 사도 요한을 인생학교의 선생으로 초대한 저자의 속뜻은 무엇일까. 오늘날 세상이 강퍅하지만 그나마 힘을 낼 수 있는 비결은 '사랑'밖에 없다는 걸 일깨우고자 하는 게 아닐까. 사랑은 온갖 속박까지도 벗겨내는 힘이요, 그것은 죽음까지도 초월케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스 인생학교>는 '아토스 산'을 비롯해 여러 수도원과 '알렉산드로스의 기도 신전', 그리스의 '올림포스' 그리고 '트로이' 등을 다룬 그리스 문명 답사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수많은 답사기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건 바로 종교전문기자인 조현이 털어놓는 문제의식과 자기성찰이다. 우리는 그의 발자취를 통해 인생 속에서 비우고, 털어내고, 궁극적으로 뭘 바꿔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것보다 더 귀중한 가르침을 주는 인생학교가 어디 또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그리스 인생학교> (조현 씀 | 휴 | 2013.03. | 1만6000원)



그리스 인생 학교 - 아토스 산에서 트로이까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질문

조현 지음, 휴(休)(2013)


태그:#그리스 인생학교, #조현, #노마드, #창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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