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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10만인클럽 특강 71회 - 도종환, 시에게 길을 묻다'가 진행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10만인클럽 특강 71회 - 도종환, 시에게 길을 묻다'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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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청중의 질문에 도종환 의원(민주통합당, 비례대표)은 "위로하는 역할, 함께 어우러지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도 의원의 현재 본업은 국회의원이지만 이날 강연에서만큼은 시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 71번째 강연(4월 11일)에서 도 의원은 '슬픔'을 화두로 패배와 상처, 인생을 풀어냈다. 두 편의 신작시도 공개했다. 작년 대선 이후 며칠 만에 써내려간 시들이라고 했다.

시 낭송을 겸한 이날 특강은 시인의 육성과 60여명의 청중들의 마음이 어우러져 흡사 '인생수업'을 받는 듯했다. 사회는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컬리지 교수)가 맡아 문학과 정치가 교직하듯 진행됐다.

시인이 풀어낸 '슬픔'의 비밀

도 의원은 '상실은 가장 큰 인생수업'이라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유고작(<상실 수업>)을 인용하며 슬픔을 이야기해 나갔다.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의 단계로.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됐어'라며 고통스런 상황을 '부정'하는 것은 슬픔의 감정이 닥쳐오는 속도를 더디게 하는 일종의 내부 방어막입니다. 그러다가 슬픔의 실체가 분명해 지면 '분노'의 단계로 넘어가는데 '당신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어디서 뭐했어?' '신이 있다면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며 대상을 가리지 않고 쏟아냅니다. 죄책감은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입니다. 분노는 잃어버린 사랑의 양과 비례해서 다가오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줘야 합니다. 이 분노는 나중에 저항의 힘이 됩니다."

분노의 상태와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는 '타협'의 단계. 만약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하느님 우리 아이 유치원 갈 때까지만 살게 해주세요", "죽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라는 심리적 요청은 "스스로를 다독이고 치유하려는 과정"이라고 한다. 강한 감정으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지 않으려는 일종의 쉼, 정거장의 역할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기존작 <겨울저녁>이란 시를 읽어주었다.

눈이 그쳤는데 그는 이제 아프지 않을까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는 내내 아팠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동안
내 안에 저녁 노을처럼 번지는 통증을 그는 알까
그리움 때문에 아프다는 걸
그리움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를 그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리움은 혼자 남아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눈은 내리다 그쳤는데
눈발처럼 쏟아지던 그리움은
허공을 헤매다 내 곁에 내린다 아프다

그리고 찾아오는 깊은 절망.

"밥도 넘어가지 않고 어떤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상태예요. 하지만 절망감은 비탄에 빠져있는 동안 신경체제를 닫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입니다. 꼭 지나쳐야 하는 단계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싶다가도 불시에 다시 찾아옵니다. 그러나 절망은 우리가 성숙할 수 있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지요. 이 시기를 잘 보내면 평소에 다가가지 못했던 영혼의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줍니다."

이제 슬픔을 '수용'하는 마지막 단계로 나아간다. 그는 이때 "서둘러 눈물을 닦지 말고 흐르게 둘 것, 마음의 안부를 물어 볼 것"을 권한다.

"수용은 직면한 상황이 마음에 들어서나 이상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인정하고 상실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요. 지금은 다만, 천천히 깊은 슬픔의 통로를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10만인클럽 특강 71회 - 도종환, 시에게 길을 묻다'가 진행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10만인클럽 특강 71회 - 도종환, 시에게 길을 묻다'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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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위로를 느꼈다"

한 청중이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시인의 감수성으로 정치인이 되어 보니 어떠신가"라고. 그는 "솔직히 어렵다, 위태위태할 때가 많다"라고 진솔하게 답했다. 그의 지인인 판화가 이철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시인으로) 돌아 왔을 때는 중상 아니면 사망일 거다"라고.

하지만 그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시가 정치를 하면서 쓴 시"라며 소설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예를 들었다.

"빅토르 위고는 극작가였고 시인이었어요. 다양한 문학 작품 활동을 하다 혁명에 동참했습니다. 공화주의자였기에 나폴레옹 등장 이후 망명했고, 돌아와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 뒤 다시 작가로 돌아와 <레 미제라블>을 썼지만 빅토르 위고를 작가로 기억하지 않습니까? 저도 후세에 무엇으로 기억될지 알 수 없는 거죠."

정치 현안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개성공단 폐쇄 등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그는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허파였다"며 "북한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현 정권에 있는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현재 통일부는 청와대의 강경파 입장에 의해 제압 받고 있는 느낌입니다. 적어도 국가를 관리한다고 한다면 '양 국간의 기밀회담' '외국과의 통로' 등이 긴밀하게 작동되어야 합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는 북한과 오랜 교류를 통해 북한을 다룰 줄 아는 노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를 쓰지 못하겠습니까?"

"민주당에 희망이 있는가"라는 직설적인 질문도 나왔다. 그는 "믿어야 할 것은 국민 스스로의 힘"이라며 역사를 이야기했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관우, 장비, 유비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이 세 명이 다 죽어도 삼국지는 끝나지 않아요. 9, 10권이 계속 이어집니다. 주인공이 죽어도 역사는 계속 되는 거예요. 추사 김정희는 유배지로 가던 중에 해남 땅 끝에 있는 대흥사에 들러 이광사가 쓴 현판을 보고 자기 글씨로 다시 써서 그걸 걸어놓고 떠났어요. 여전히 오만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기의 존재가 잊혀지고 가문이 몰락하면서 철저한 고립의 시간을 지냅니다. 그러더니 9년 반의 유배 생활이 끝나고 돌아가면서 대흥사에 들러 이렇게 말해요. '지난번에 내가 내렸던 현판 있는가. 내 글씨를 내리고 본래의 것을 걸어라'라고요. 그랬기에 추사체가 완성의 길로 갔다고 생각해요. 이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은요, 스스로 낮아지고, 깊어지는 겁니다."

마지막. 신작시 <슬픔의 통로>가 그의 육성을 타고 흐를 때.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중략>
지도를 만든 것은 오랜 방황과 잃어버린 발자국
기도를 알게 한 것은 고통이 아니었을까
사랑을 가르친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
경전을 쓰게 한 것은 해결할 수 없는 고뇌
시인을 만든 것은 열망이 아니라 슬픔이 아니었을까

이날 강연에 참석한 한 20대 청년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울음을 느꼈다고 한다. 충분히 울고 충분히 느끼고 나서 그것을 넘어서자고 말하는 도종환 의원의 강연은 깊은 공감과 묘한 적막을 남긴 채 늦은 밤 끝이 났다.


태그:#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특강,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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