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런닝맨>에서 여기자 박선영 역을 맡은 배우 조은지.

영화 <런닝맨>에서 여기자 박선영 역을 맡은 배우 조은지. ⓒ 프레인 TPC


조은지는 탄성력이 뛰어난 배우다. 그만큼 변화무쌍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마다 용수철처럼 자신을 알맞게 늘리거나 줄여 적절하게 녹아든다. 상업영화든 단편이든, 그는 적절하게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영화 속에서 노숙자로 등장했든, 금메달을 위해 피나게 노력했던 핸드볼 국가대표였든, 왕의 후궁이었든 매번 새롭게 하지만 묵묵히 작품을 지탱해냈다.

영화 <런닝맨>을 통해 만난 조은지는 오히려 '왜 내공이 아직 부족할까' 고민 중이었다. 성장을 고민하는 배우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 생각이 조은지를 조은지답게 지키는 힘이 아니었을까. 매 순간 뛰고 쫓는 숨찬 호흡을 자랑하는 <런닝맨>에서 조은지는 기자로 분했고, 이를 위해 그녀는 자신만의 매력을 살려 영화에 담아냈다. 

"시나리오를 보면 박선영이란 인물의 성향은 뚜렷하게 보였는데 기자로서 리얼리티를 살리고픈 욕심도 있었어요. 사회부에 1년 몸담았으면서 지금은 연예부에 있는 기자 분을 만나서 많은 얘길 들었죠. 시나리오엔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고 써졌다면 이걸 '야마(기사의 주제·핵심·방향·논조 등을 포괄하는 용어)가 뭔데?'라고 바꾸는 식이었어요."

 영화 <런닝맨>의 한 장면.

영화 <런닝맨>의 한 장면. ⓒ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여배우로서 30대, "이젠 좀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런닝맨> 속 조은지는 매번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니며 상황을 기록한다. 코믹하게 보이는 설정도 있었지만 매 순간의 기록은 기자에겐 탄창에 총알을 넣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에 비유한다면 조은지의 배우 노트는 그녀가 지금껏 출연해온 작품들이 될 것이다. 2000년 영화 <눈물>로 데뷔 후 어느덧 13년 차다. 어느덧 서른을 넘겼고, 어엿한 남자친구도 있다. 배우로서 그녀가 남겨온 기록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지난 10년을 간단히 짚어보았다.

① 불안했던 20대 초반

<눈물>로 데뷔 이후 조은지는 빠르게 영화 관계자들 눈에 들었다. 강렬했던 연기, 개성 있는 표현력으로 한 장면을 몰입하게 할 힘이 충분히 있었던 것. 하지만 출발선부터 주연을 차지하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동료 배우들과는 다른 길이었다. 영화 <아프리카>, 드라마 <내 인생의 콩깍지> 등은 찰나의 순간처럼 조은지의 20대 초반을 치고 지나간 작품들이었다.

"글쎄요. 이런 말이 자칫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배우를 꿈꾸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우연히 오디션을 봤고, 배우의 길에 들어선 경우였죠. 어리다 보니까 그땐 스타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유명해지고 싶다든지 스타성을 갖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이 있었죠."

 영화 <런닝맨>에서 여기자 박선영 역을 맡은 배우 조은지.

영화 <런닝맨>에서 여기자 박선영 역을 맡은 배우 조은지. ⓒ 프레인 TPC


② 연기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된 20대 중반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그리고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등의 작품은 20대 중반의 조은지에겐 연기의 재미를 느끼고 목표를 심어준 계기였다. 배우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연기를 고민하는 자세 또한 함께 생각하게 한 계기였던 셈이다.

"작품을 해나가면서 제 자아가 형성됐다고 해야 할까요. 20대 초중반이 됐을 때 스타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됐어요.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데뷔 초 몇 작품을 했을 땐 '기회가 이렇게 자꾸 오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건 자만이었죠. 계속 깨져가면서 배우다가 어느 지점에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꼈어요.

극 속의 캐릭터를 하면서 매력을 느꼈죠. 많은 분들이 좋은 말을 해주시기도 했고요. 대중의 평가나 작품 흥행을 떠나서 내가 느끼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할 때 처음으로 캐릭터에 빠졌던 기억이 있어요. 맥주를 실제로 마시면서 취중 연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소옥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우생순>에선 결승전 승부던지기에서 골키퍼가 못 막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연기를 했지만 진짜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촬영 초반부터 눈물이 올라왔어요. 나중에 골을 못 막고 몸부림치면서 우는데 컷이 났는데도 밖에 나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영화 <런닝맨>에서 여기자 박선영 역을 맡은 배우 조은지.

영화 <런닝맨>에서 여기자 박선영 역을 맡은 배우 조은지. ⓒ 프레인 TPC


③ 여유를 알게 된 30대, "이 느낌이 좋아요"

연기의 재미를 알았다지만 20대 중후반을 지나면서도 조급함은 사라지진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그만큼 강했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른을 넘어 배우로 살아가는 조은지의 요즘은 다르다. 본인도 이상할 만큼 마음이 편하고 여유도 생겼다. 영화 <후궁><내가 살인범이다><런닝맨>에 이르기까지 조은지는 꾸준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상하게 어떤 계기가 없이 마음에 여유가 생겼어요. 제가 지금 서른셋이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절 보고 얼굴이 많이 편해 보인다고 얘기하는데 스스로도 느끼고 있어요. 물론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걸 고민으로 여기고 있진 않아요. 어떤 틀이 있다면 깨야죠. 여자 캐릭터가 강점인 영화들이 사실은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피도 눈물도 없이>라는 영화도 있고, <우생순>도 마찬가지고, <여배우들>도 있고요."

그래서 조은지는 앞으로도 꾸준히 달려가고자 한다. 작은 영화든 큰 상업 영화든 가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단,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영화든 드라마든 결국 배우 혼자만 즐기려고 하는 예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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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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