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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책을 내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엄마에게 상 주기. 비행기 타고 고향 내려왔어요. 엄마, 사랑합니다!
 첫 번째 책을 내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엄마에게 상 주기. 비행기 타고 고향 내려왔어요. 엄마, 사랑합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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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 전 일이다. 엄마를 인터뷰한 게. 2008년 9월 18일 오마이뉴스에 "한 달에 33일 일하는 억척 울 엄마"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올리고 나서 지인들에게 글 잘 읽었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심지어 KBS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제안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어떤 매체에도 인터뷰를 응하는 법이 없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생겼다. 이듬해 첫 번째 손자가 태어났고 이어서 두 번째 손자가 태어났다.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해녀일은 계속 하고 있다. 5년이 지나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엄마의 말처럼 '아직은 한창'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펜을 든 것은 아니다. 지난 인터뷰에 이어 몇 년 동안 엄마와의 인터뷰는 이어졌지만, 내 인생의 결정적인 답변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별한 행사를 했다. 바로 엄마께 상을 드렸다.

"아들상. 위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갈 아기를 연거푸 붙들어 거듭 살리셨고, 평생 애태우며 키워주신 덕분에 그 작은 아기는 가정을 일구고 아이도 둘 낳고 책도 한권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행복 뒤에는 어머니가 있기에 아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드립니다. 2013년 4월 8일. 막내아들이 드립니다."

난생 처음으로 엄마에게 상을 드렸더니 마음이 떨리고 기분이 좋았다. 상을 받은 엄마는 "이 맛에 자식을 낳는가보다"고 말했다. 책을 쓴다고 하니 큰 관심을 가진 게 엄마였고 자주 소식을 물으셨다. 책이 나오자 친척들에게 소개도 하고 책 설명도 직접 하셨다. 엄마의 표정 속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왜 진작에 상을 만들어서 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도 아이를 키우고 고생하지만, 엄마는 상을 받을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아픈 아들 데리고 병원 오갔던 엄마가 본 것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급성폐렴과 림프성 결핵, 그리고 대정맥 절단 사건 등 '죽을 아이'(를 살렸다)는 나의 별칭에 대한 사정은 지난 기사에 담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 좀더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서울대학교 병원을 한달에 열일곱 차례 정도 다녔다. 그 사이에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고, 엄마는 몹시 피폐해졌다. 엄마는 "하늘이 아기를 데려갈까봐 아기 옆에 삽을 두고 자기도 했어, 아기가 하늘나라로 가면 묻어주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천만 다행히도 아기는 아침마다 깨어났단다"고 되뇌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아기를 안고 큰병원을 다니는 고단한 시간 속에서 엄마는 어디서 힘을 얻은 걸까? 최근의 대화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그때 서울대병원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께는 상을 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비에 젖지 않게 비닐에 싸서 편지와 함께 산소에 놓아드렸습니다.
 아버지께는 상을 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비에 젖지 않게 비닐에 싸서 편지와 함께 산소에 놓아드렸습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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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어요. 아기가 아팠을 때 몇 년 동안 병원을 오가며 무척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어요?
"서울대병원에는 내 아기보다 더 아픈 환자가 많았어. 뇌성마비가 너무 심한 환자는 손가락 하나만 바르게 펴지면 좋겠다며 수술을 여러 번 했지.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환자는 다리 하나만 살릴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단다. 이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내 처지가 슬픈 게 아니었어."

- 엄마 얘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얘기가 생각난다. 아들을 잃고 큰 슬픔에 빠져 물도 제대로 못 먹는 아줌마가 있었는데, 하루는 마을의 어른이 그 아줌마를 불러 우편 배달부 일을 맡겼대요. 아랫집에는 편지를 윗집에는 소포를 배달한 지 달포가 지날 즈음 아줌마의 얼굴에서 슬픈 표정이 사라졌어요. 사람들이 그 아줌마에게 이제는 더 이상 슬프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아줌마는 '마을 사람들의 슬픔에 비하면 내 슬픔은 아주 조그맣더라, 온가족이 몰살당한 가족,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잃은 가족 등 마을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래요. 이 아줌마가 꼭 엄마 같다.
"그 얘기를 들으니 옆 동네 살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나는 처음에는 '미친 할망'(미친 할머니)인가보다 생각했어. 알고 보니 군 전역하고 돌아온다고 기별했던 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을 겪은 게지. 당시에는 통신도 교통도 좋지 않아서 읍내까지 매일 같이 다니며 아들이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기다리는 게 일이었어.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읍사무소에 가서 물고(物故)를 올리려고 하니(사망신고) 읍사무소에서는 '근거도 없이 그럴 수는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대. 할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읍사무소를 날마다 다녔어. 그러기를 몇 년 하고 나서 읍사무소에서 사망신고를 받아주자 그제서야 할머니 정신이 제대로 돌아온 것 같았어. 버스를 타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할머니는 '내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나? 물고를 틀지 않았다면 죽은 것도 몰랐을 거다'라고 얘기했다. 그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그래도 아픈 아이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어요. 저 때문에 항상 가난하게 살게 해서 죄송해요.
"사람이든 돈이든 하나만 태울 수 있다. 옆 동네 아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건물도 여럿 있지만 자식들 중에 결혼을 제대로 한 사람이 없고 영 시원치 않아. 자식을 태우면 돈이 아쉽고, 돈을 태우면 자식이 아쉽다고 하는데 나는 감사하다. 삼남매가 다 결혼도 잘 하고 손주도 만들었으니까. 자식도 돈도 다 태우면 어신 사람은 죽어불렌 말이냐?(없는 사람은 죽으란 말이냐?)"

-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책도 한권 썼어요. 고맙습니다.
"어릴 적 너 키우려고 나도 고생했지만, 네가 노력하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을 일이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났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엄마였다. 엄마에게 상을 드리고 싶었다. 상과 함께 책 10권을 드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상을 줄 수 없으니 책을 비닐에 잘 싸놓고 편지와 함께 산소에 다녀왔다. 고등학교 때 잘 가르쳐준 선생님도 뵙고 인사드리고, 형제들과 사촌형제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등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책을 내고 인사를 하느라 100권 정도를 사용했지만,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태그:#책놀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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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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