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 피아

록밴드 피아 ⓒ 원원엔터테인먼트


밴드 피아는 가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최근 발매된 싱글 <내 봄으로>는 좀체 피아라고는 믿기지 않는 봄의 화사함으로 가득하다. '원숭이'를 부르며 무대에서 절규하던 그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인터뷰 초반, "멤버들 모두 연애 중이냐"고 물었던 건 그래서였다. 답변은 쿨했다. "연애는 언제나 해왔어요." 그리고 해맑은 표정으로 새 앨범에 대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파워풀한 사운드만큼이나 인터뷰도 시원시원했다.

"아직도 저희 음악이 다가갈 수 있는 장벽이 있다고 느껴요. 항상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KBS 2TV <탑밴드 시즌2>에 나가고 그랬는데 장벽이 높다는 걸 실감했죠.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그동안 멤버 각자의 개성을 많이 반영했던 것 같아요.

예전이라면 드럼도 부각하고, 베이스도 기타도, 건반도 화려하게 늘어놓았을 텐데 이번에는 메시지와 노래를 잘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예전 음악이 드럼 20%, 베이스 20%, 보컬 20% 이런 식으로 비중을 뒀다면 보컬의 비중을 50%로 늘리고 나머지를 10%씩 나누는 방식이랄까."

새 싱글 <내 봄으로> 화사하지만 여전히 앙칼진 앨범

그렇다고 이들이 대중적인 트랙에만 몰입된 것은 아니다. 이번 앨범에는 <탑밴드 시즌2>에서 선보인 마이클 잭슨의 '블랙 오어 화이트'와 '비트 잇'의 리메이크 버전이 수록됐다. 1, 2집처럼 묵직하진 않지만, 분명 예전의 피아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만큼 앙칼지다.

특히 '비트 잇'의 직선적인 기타 리프 전개와 보컬 옥요한의 날카로운 보컬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인기를 끌었던 이모코어 스타일 특유의 공식이 엿보인다. 전작 <펜타그램>에서 주목받은 심지(FX)의 안정적인 사운드 조율 능력 역시 이 앨범에서 빛을 발한다. 화려하지만 산만하지 않고, 날카롭지만 거칠지 않다. <펜타그램>에서 쌓아올린 특유의 균형감각은 이 앨범에서도 여전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맛보기다. 피아는 올해 발매를 목표로 새 정규앨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발매일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새 정규 앨범은 꽤 버라이어티 할 것"이라며 명반으로 평가 받는 2집의 사운드를 언급했다. 예전의 파워풀한 피아를 기억하는 팬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2집의 중간선상에 포함되는 노래도 있고, 또 앨범에 넣고 싶어요. 외국에서 센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우리가 예전의 그런 것을 잊어 버렸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서. 저희의 음악적 베이스가 록이라서 그걸 포기 못해요. 정규 앨범에서는 전작보다 좀 더 구조적이고 디테일한 스타일의, 쉽게 말해 아주 빡센 곡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스너의 허를 찌르도록 계산된 곡도 몇 곡 있을 거예요."

피아의 생존 비결. "발 빠른 변화, 그리고 두꺼운 귀"

 피아의 새 싱글 <내 봄으로>의 재킷

피아의 새 싱글 <내 봄으로>의 재킷 ⓒ 원원엔터테인먼트


사실 밴드에게 스타일의 변화는 언제나 풀기 어려운 숙제다. 예측하기 어려운 대중의 취향 때문이다. 기존의 사운드를 응용하면 식상해하고, 전혀 다른 사운드를 선보이면 예전 앨범이 더 좋다고 말한다. 그 딜레마 사이에서 허우적대다 몰락의 길을 걸은 뮤지션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렇게 본다면 <비컴 클리어>를 기점으로 보여준 피아의 안정 지향적 변화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헤비니스 뮤직만을 고집하기보다 철저히 트렌드 세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 주효했다. 덕분에 마니아와 대중, 어느 한 쪽의 이탈 없이 음악적 스펙트럼을 광범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두꺼운 귀' 덕이다.

"(팬들의 반응에) 크게 의식 안 해요. 전작의 좋은 부분을 이어가고, 팬들을 만족시키는 거,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저희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니까요. 일단 내가 만족해야 하니까.(웃음) 다른 사람 때문에 뭔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1순위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거죠."

지난 10년간 인디신의 흐름은 크게 바뀌었다. 피아가 기반을 둔 뉴메탈은 2000년대 중반부터 몰아친 힙합과 일렉트로니카의 역습에 몰락했다. 록 음악이 팝 음악 시장에서 갖는 파괴력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예전처럼 특정한 스타일이 몇 년간 신을 지배하던 시절도 이제 옛일이 됐다. 그만큼 밴드 개개인의 역량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살아남은 것들에게는 다 이유가 있다.

분명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인터뷰 내내 군림이 아닌 생존과 변화를 이야기했다. 해외 록스타의 러브콜을 받고, 수많은 밴드를 누르고 오디션 프로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도전자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결성 15주년을 맞는 포부 역시 소박하다. 거창한 15년보다 "알찬 1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큰 야망은 아니었지만 차분히 늘어놓는 말에서 확고한 현실 감각과 건실함이 묻어났다. 거친 인디신에서 오랜 시간 정상을 유지하는 이유를 이제는 좀 알 것 같았다. 살아남은 모든 것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발 빠르게 변했던 게 (생존) 비결이 되지 않았을까요. 만약에 저희가 1집 같은 음악을 했다면, 분명 그것도 멋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했다면 왠지 금방 해체했을 거 같아요. 현실의 벽도 느끼고. 물론 그런 것 때문에 사운드가 바뀐 건 아니지만 많이 듣고, 좋아하는 음악이 계속 바뀌니까요."

"올해에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며 매년 알차게 보내다 보면 또 그렇게 15년이 채워지지 않을까요. 하하! 가장 기본적인 틀은 감동을 주기 위해서니까요. 저희만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올해도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피아 내 봄으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