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보통은 필요에 의해서 자동차를 구입하는데, 우리집에 이 녀석이 오게 된 사연은 좀 특별하다. 때는 2009년 6월께, 우리 가족 뿐만이 아닌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때, 녀석은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났다.

"아등바등 살아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엄마 아빠가 차 한 대 뽑았다. 진작 사서 봉화마을도 가보고 할 걸 그랬어야..."

핸드폰으로 찍은 최초의 사진
▲ 우리집 그랜저 TG 핸드폰으로 찍은 최초의 사진
ⓒ 주현정

관련사진보기

부모님은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본인들의 삶에 대해 곱씹으셨다. 어린 나이에 오빠를 태에 안은 채 시집오고 장가들었던, 지금은 중년이 되어버린 부부는 사치라고 부를 수 없는 사치를 한다고 그랜저를 한 대 뽑으셨다. 두 분이 결혼하시던 스물 셋, 꼭 그 나이였던 당시의 나는, 우리 부모님께서 승용차를 사신 것이 왜 그리 속 시원하던지. 그동안 낡은 탑차로 하루하루 일하시던 분들이 '좋은 차'를 사셨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위안이 되었다. 부모님에게 그것이 사치일 수 없을만큼 아니, 오히려 더 값지게 열심히 살아오셨다는 것을, 나는 이 녀석이 우리에게 오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녀석은 사랑으로 품어진 애마(愛馬)라기보다 오히려 우리의 슬픔과 고단을 위로해주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진 '애마(哀馬)'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렇게, 녀석과 우리 가족은 함께 하게 되었다.

어머니...너무 하셔요...

평생을 소탈하게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 '애마'를 몰고 한동안 열심히 여행을 다니셨다. 해남에 사는 깨복쟁이 친구들을 만나러, 목포에서 열리는 대학교 동창 모임을 석하러, 서울에서 열리는 동창모임 참석하러, 열심히. '멋들어진 자동차'가 생겼다는 이 뿌듯한 사실에, 두 분은 벅찬 의무감으로 그렇게 차를 타고 어디론가 달리셨던 것이다. 아들이 사는 인천에, 전주에 사는 딸 집에, 두 분은 열심히 여행을 다니셨다.

하지만 그것도 경기가 좋을 때 얘기. 슈퍼나 마트 등에 유제품류를 납품하시는 직업적 특성 상, 겨울에는 여름보다 수입이 시원찮다. 겨울 즈음이 되자 두 분은 문득 '너무 놀았다'는 생각이 드셨나보다. 그래서 두 분은 잠시 공백기를 가지기로 하셨다. 그리고 마당에 세워진 자동차에도 벌써 세월의... 아니, 여행의 때가 묻어 검은색이 누런 먼지로 가득해진 것을 발견하셨다.

북북북-
"워메!"

날이 춥던 어느 날, 어머니는 따뜻하게 데운 물로 손수 자동차를 씻기기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아마도 부엌의 그릇들처럼, 전라도 말로 '아주 개안하게' 자동차를 씻겨주고 싶으셨나보다. 주방용 수세미를 들고 차의 문짝을 신나게 문질러주신 것이다. 하지만 이내 거칠게 드러나는 흠집을 보고 흠칫 놀라시고 말았다. 그리고 소탈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우실 우리 아버지께서도 그날만큼은 자동차에 난 소위 '기스'를 보시고 기함하셨고, 두 분은 자동차 문제로 처음 다투셨다.

"수리비가 못 해도 백만원은 나오겄는디..."

코너 도는 쪽에 튀어나와 있어서 받히기 쉽다.
▲ 부서진 기단 코너 도는 쪽에 튀어나와 있어서 받히기 쉽다.
ⓒ 주현정

관련사진보기


자기 물건에 대해서는 소탈하기 그지없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오빠가 자동차 연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두 분은 시골집에 온 오빠를 자동차와 함께 당장 올려 보내셨다. 어떤 아버지는 자동차에 혹여 흠집이라도 날까싶어 자기 부인에게도 자기 차는 안 맡긴다던데. 하긴 자동차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 어머니는 이내 아들 딸에게 뭘 살지 물으시더니, 오빠가 '그랜저 TG'라고 하니까 단박에 그 자동차를 사셨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오빠에게 갔던 차는 3개월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방학 등을 이용해 집에서 자동차 연수를 하고 있었고, 주로 맡았던 직함은 '술 취한 아빠 대리운전'이었다. 그 어렵다는, 그래서 운전경력 13년 차이신 우리 어머니도 꺼리시는 '밤운전'을 몇 차례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나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아버지도 진심이신지 술김에 그러신 것인지 자꾸만 딸내미를 비행기 태우셨다.

"우리 딸 어디서 몰래 운전 배우고 오는 거 아니야~?"

그러던 어느 날, 해남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식사를 함께하고 드라이브도 하며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뭐든 직접 해봐야 는다'는 모토를 가진 아버지 덕분에 운전은 내 차지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무사히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길. 대가족을 태워서 한껏 긴장했던 탓인지, 피곤이 몰려와 갑자기 상황판단이 잘 안됐다. 360도를 꺽어야하는 '고난이도' 코너에서 나는 본데없는 용기를 부렸고, 갑자기 '쾌속 코너링'에 도전했다.

쿵-

'오메!'

부딪치기 바로 전, 나의 뇌리와 오장육부를 통해 '찌릿-'하고 전기가 통하는 걸 느꼈다. 이어진 '쿵-' 하는 소리는 자동차의 육중한 떨림과 함께 내 심장을 때렸다. 순간 멍. 아버지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범퍼의 상태를 살피셨고, 어두운 얼굴로 '아이고~참말로'만 연달아 세 번을 하셨다. 나는 차에서 내릴 생각도 못하고 그저 차 안에서 아버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예상 외의 평온한 표정으로 차에 타셨고 들릴듯 말듯 나지막히 한 마디 하셨다.

"백만원은 날아갔네, 갔어."

아버지는 '백만원' 발언 외에 한 번도 사고낸 일로 나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너무 담담하셔서 내가 스스로 눈치를 볼 정도였다. 의외로 우리 아빠가 딸바보라는 사실을 알게된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거진 3개월 동안 자동차 핸들조차 만지지 못했다. 하지만 '운전은 필수'라고 믿는 아버지의 주장 때문에 억지춘향으로나마 다시 운전대를 잡게 되었고, 지금은 운전이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 사고가 오히려 약이 되어 안전하게 운전하는 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목포에서 광주까지도 혼자서 운전을 하고 다닌다.

이제 애마(愛馬) 대우 해줄 때도 됐다

디자인 감각은 꽝이지만 저거라도 붙여야 운전할 때 안심이 된다.
▲ 초보운전 그랜저 디자인 감각은 꽝이지만 저거라도 붙여야 운전할 때 안심이 된다.
ⓒ 주현정

관련사진보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우리집에만 오면 신기하게 빨리 낡는다. 얼마 전 자동차 수리센터에 갔다 오신 아버지는 가족 모두에게 불평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니, 다른 집 차는 7년 탔다는데도 새 차 같던디 우리집 차는 꾀죄죄해서 부끄러 혼났네... 본네트를 여는디 우리차는 먼지가 택택 꼈는디 다른 차는 엔진이랑 다 번쩍번쩍 하더랑께!"

안 그래도 얼마 전, 내가 차를 몰기 시작한 이후로 차가 너무 더러워졌다고 한 마디 하신 터였다. 마음 속으로 많이 뜨끔해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근디 냉각수가 안 간지 하도 오래돼가지고 이번에 갈었네. 어짠지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치가 않드라고. 어째 그걸 생각 못했으까잉..."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마음 속으로 우리집 자동차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무도 너의 편은 없었던 것을... 내가 미안하다... 라면서.

마당 넓고 시골 공기 넉넉한 우리 집엔 이제부터 꽃이 지천으로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집 자동차도 이제그만 예쁜 애마(愛馬)로 다시 태어날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 수고 많이 해준 우리 애마. 반짝이는 봄날 맞을 수 있게 이번 주말엔 꼭 세차 해줘야겠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공모글입니다.



태그:#공모글, #애마 이야기, #애마의 수난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