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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비가 내리고 나니 쑥이 여기저기서 쑥쑥 올라오고 있습니다. 쑥은 어디서나 쑥쑥 잘 자라난다고 해서 '쑥'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돌 틈과 바위, 길가나 밭두렁, 장독대의 빈틈, 댓돌 밑에 금이 간 시멘트 사이…. 그야말로 집 주변 어느 곳에서나 쑥은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쑥쑥 잘 자라나는 쑥. 특히 임진강 쑥은 기온차가 커서 효능이 좋다.
▲ 임진강 쑥 어디서나 쑥쑥 잘 자라나는 쑥. 특히 임진강 쑥은 기온차가 커서 효능이 좋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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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자 가장 먼저 싹을 내미는 것도 쑥입니다. 봄비가 내린 후 우리 집 주변은 쑥이 천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쑥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서 모든 식물이 초토화가 되었을 때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식물이 쑥이라고 합니다.

밟혀도 밟혀도 다시금 곧 일어나는 것이 바로 쑥입니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때로는 쑥처럼 강하게 살아가야겠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다가 이렇게 지천에 널려 있는 쑥이 우리 몸을 치유하는 이로운 보약이 되어주니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봄이 오면 아내와 나는 여린 쑥을 뜯어서 쑥차를 만들곤 합니다. 쑥차를 처음 만들어본 것은 지리산 섬진강가에 살 때였습니다. 초봄에 막 올라오는 쑥을 캐서 잘 덖어 저장해 놓으면 1년 내내 고소한 향긋한 쑥차를 마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쑥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돌틈과 바위틈, 장독대 등 쑥은 아무데서나 쑥쑥 잘 자란다.
▲ 임진강 쑥 쑥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돌틈과 바위틈, 장독대 등 쑥은 아무데서나 쑥쑥 잘 자란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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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임진강변으로 이사를 와서 쑥차를 만드는 작업을 두 번째 하고 있습니다. 임진강변 에 돋아나는 쑥은 기온 차가 커서 효능이 좋은 것 같습니다. 쑥뿐 아니라 콩, 깨, 고추, 율무 등 곡식이나 채소도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큰 지역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맛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물고기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바다에서 잡은 것들이 맛이 있듯이 맛은 기온의 차에서 오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쑥차를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쑥을 캐는 작업도 만만치 않고, 다듬고 씻어서 말리는 작업도 잔손이 많이 들어갑니다. 더구나 쑥차를 덖어내는 작업은 온도의 조절, 쑥을 엉키지 않게 뒤집는 정성, 그리고 타지 않고 여러 차례 덖어내는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쑥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봄에 막 올라오는 부드러운 쑥이 좋습니다. 아내와 나는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여린 쑥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쑥을 캐본 경험이 있나요? 만약에 없다면 이 봄에 쑥을 한번 직접 캐내는 작업을 해보세요. 따스한 햇볕이 내리쪼이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쑥을 캐다 보면 대지의 기운과 쑥의 향기를 동시에 맡아보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대지와 식물의 기(氣)가 당신의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봄비에 촉촉이 젖은 쑥을 캐자 향긋한 쑥 향기가 가슴 안으로 번져듭니다. 손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쑥의 감촉, 코끝에 와닿는 쑥의 향기, 그리고 따스한 햇볕을 받은 대지가 만물을 밀어올리는 합창소리를 마음으로 듣습니다. 이곳 연천 임진강 변은 공해가 없는 청정지역입니다. 청정지역에서 캐낸 쑥은 더욱 싱그럽기 그지없습니다. 아내와 나는 봄비가 내린 이후 며칠간 텃밭 주변에 나는 여린 쑥을 캐냈습니다.

쑥차는 막 나온 여린 쑥으로 만들어야 효능이 좋다. 농약과 공해가 없는 임진강변에서 캐낸 쑥을 찬물에 담갔다가 3~4번 잘 씻어서 하루정도 말렸다.
▲ 임진강 쑥 쑥차는 막 나온 여린 쑥으로 만들어야 효능이 좋다. 농약과 공해가 없는 임진강변에서 캐낸 쑥을 찬물에 담갔다가 3~4번 잘 씻어서 하루정도 말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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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쑥차를 덖어낼 차례입니다. 쑥차를 덖는 작업은 도를 닦는 수행과고 같습니다. 쑥차뿐만 아니라 손으로 차를 덖는 작업이 다 그렇습니다. 어느 스님은 차를 덖는 동안 동선을 익힌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번 쑥을 덖어내며 쑥과 마음의 동선을 살펴보는 수행이라는 의미일까요?

차는 전통 가마솥에 숯이나 장작으로 불을 먹이며 덖어내야 온전한 제다(製茶)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희 집에는 아직 그런 시설이 없습니다. 가마솥에 덖을 만큼 그렇게 많은 양을 덖어내지도 않습니다. 이번에 야외 솥단지를 하나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그곳에 가마솥을 걸고 적은 양의 쑥차를 덖어내는 것이 오히려 번잡스러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나는 목욕재계를 하고 쑥차를 덖어낼 준비를 하였습니다. 차를 덖기 전에 목욕을 하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고 오직 차를 덖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솥단지와 가마솥 대신 가스버너와 프라이팬을 거실 한쪽에 놓고 불을 붙였습니다. 제다과정에서는 불을 붙이는 것을 불을 먹인다고 하지요. 어떤 차를 덖던지 첫 덖음은 센 불을 먹여야 합니다.

말린 쑥을 가스버너 위에 후라이팬을 얹어놓고 불을 조절하며 여러차례로 나누어 아홉번을 정성스럽게 덖었다. 여러번 덖는 것은 쑥이 타지않고 성분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 쑥차 덖기 말린 쑥을 가스버너 위에 후라이팬을 얹어놓고 불을 조절하며 여러차례로 나누어 아홉번을 정성스럽게 덖었다. 여러번 덖는 것은 쑥이 타지않고 성분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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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불에서 쑥을 재빨리 뒤집으며 차를 덖기 시작했습니다. 쑥이 타지 않을 정도로 덖어서  건져내어 쟁반에 놓으니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아내는 뜨거운 쑥을 흔들어 털어내어 꼬인 잎을 풀어주면서 식혀냈습니다. 어느 정도 식힌 다음 쑥을 비비기 시작하니 온 집 안에 쑥향이 가득 찹니다.

그동안 뜯어온 쑥을 다섯 등분으로 나누어 똑같은 방식으로 덖어냈습니다. 초벌을 덖는데도 아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등에 진땀이 배어듭니다. 두 번째부터는 불을 점점 약하게 먹이고, 타지 않을 정도로 덖어냈습니다. 차는 고온과 저온에 여러 번 덖는 과정에서 쑥의 분자가 변형되며 고유한 맛을 낸다고 합니다. 마지막 끝 덖기는 불을 아주 약하게 먹여 쑥의 습기를 완전히 제거시켜주는 작업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불을 세게해서 덖어낸다. 초벌을 덖어낸 쑥
▲ 쑥차 덖기 첫 번째는 불을 세게해서 덖어낸다. 초벌을 덖어낸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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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홉 번을 덖고 나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아홉 번을 덖어낸 차를 구증구포(九蒸九暴)라고 하더군요. 단어 그대로 해석을 하면 아홉 번을 찌고 말린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왜 굳이 아홉 번을 덖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하도 의견이 분분한지라 차를 잘 모르는 제가 감히 언급을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한의학에서는 한약재의 성미를 변화시키는 데 아홉이란 숫자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홉이라는 숫자가 꼭 아홉 번을 뜻하는지, 아니면 완성도를 높이는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차를 여러 번 덖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차의 냉한 성미를 변화시켜야 누구나 마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몇 회를 덖어내야 찻잎의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게 전통적으로 전수해온 방식이 구증구포라고 합니다.

차를 덖는다는 것은 차의 자체 수분으로 잘 익히고 건조시켜 산화효소를 정지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덖어내지 못한 찻잎을 식히고 나면 잎이 부분적으로 불긋하거나 갈색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아내는 지금 내가 서투른 솜씨로 덖는 쑥차를 걸러내며, 불긋하게 탄 부분이 많다고 역정을 내고 있군요. 탄 잎이나 잔 가루들은 차 맛을 변화시키고, 낮은 온도에서 누를 수가 있으니 매번 채로 걸러서 가루를 빼주어야 합니다.

아홉번을 덖어낸 쑥차. 타지지 않도록 여러 차례 덖어내며, 잘 펴서 건조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 쑥차 덖기 아홉번을 덖어낸 쑥차. 타지지 않도록 여러 차례 덖어내며, 잘 펴서 건조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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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쑥이 가지고 있는 자체 수분으로 몇 번을 덖다보면 더 이상 뜨겁게 덖을 수 없는 상태에 이릅니다. 그 이후에는 차를 덖는 과정이 아니라 수분을 건조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끝 덖음은 온도를 낮추어 바싹 마를 때까지 건조를 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차를 잘 덖는 것은 그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차의 완성도에 정성을 기울이는지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중국에서는 구증구포를 부초차(釜秒茶)라고 부릅니다. 부초(釜秒)란 '솥에 볶는다'는 의미로, 우리말로는 '덖는다'는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볶는다'와 '덖는다'는 의미를 가지고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단어적인 의미보다도 맛조은 차를 잘 완성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요.

차를 덖어내는 작업은 이렇게 인내와 끈기,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는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수제로 차를 덖다보면 고열에 덥고, 팔과 무릎도 아픕니다. 그렇다고 차를 덖는 과정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계속해서 덖어내야 차 맛이 제대로 나기 때문입니다.

차를 덖는 과정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여간 고역스런 일이 아닙니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정성을 쏟아 부어야 비로소 한 봉지의 차가 완성됩니다. 그러니 차를 덖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차를 마실 때 그 차를 덖어낸 사람의 정성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입니다.

완성된 쑥차는 밀페된 용기에 보관해야 가장 좋으나, 위생 펙에 여러 봉지로 나누어서 공기를 빼고 이중 삼중으로 보관하여 차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면 효능도 좋고 먹기도 좋다.
▲ 쑥차 저장 완성된 쑥차는 밀페된 용기에 보관해야 가장 좋으나, 위생 펙에 여러 봉지로 나누어서 공기를 빼고 이중 삼중으로 보관하여 차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면 효능도 좋고 먹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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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광주리나 된 쑥을 덖고 나니 양이 십분의 일로 줄어든 것 같습니다. 차를 다 덖었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차의 맛과 향을 발현시키고 저장하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차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공기를 차단하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밀봉하여 건조하고 찬 곳에 보관시켜두어야 합니다.

밀폐된 용기에 보관을 하는 것이 습기와 공기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겠지요. 그러나 마땅한 용기가 없는 경우에는 위생 봉지에 보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는 위생 봉지의 공기를 완전히 빼고 쑥차를 작은 렙에 다섯 등분하여 넣은 다음 이중으로 봉하고, 그 위에 다시 큰 봉지로 봉했습니다.

물을 펄펄 끓인 다음 어느 정도 식혀서 쑥차를 달여야 효능이 좋다.
▲ 쑥차 달이기 물을 펄펄 끓인 다음 어느 정도 식혀서 쑥차를 달여야 효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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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상품으로 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마실 차이니, 이렇게 해놓아도 경험상 큰 문제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늘하고 건조한 창가에 찬장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이 정도의 양이면 1년 정도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과 종종 맛 좋은 임진강 쑥차를 마시며 다담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서 방금 덖어낸 햇 쑥차를 달여서 맛을 보니 고소하고 향긋한 쑥 향이 입안에 가득 번집니다.

금방 덖어낸 쑥차라 맛이 고소하고 향긋하다.
▲ 햇 쑥차 금방 덖어낸 쑥차라 맛이 고소하고 향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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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차 한번 만들기 힘들군."
"덕분에 향긋하고 고소한 쑥차를 마실 수 있잖아요!"

연거푸 몇 잔을 마시고 나니 속이 편해지고 몸이 다시 더워집니다. 꽃샘추위에 만든 쑥차향이 그윽하게 번져 나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그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서투른 솜씨로 덖어낸 차이지만, 이 쑥차에는 우리 부부가 쑥을 캐고, 씻어서, 덖는 과정과 정성이 숨어 있습니다. 그대, 이 '찰라표' 무공해 임진강 쑥차를 마시며 정다운 다담을 나누지 않으시겠습니까?


태그:#임진강 쑥, #쑥차 덖기, #부초차, #구증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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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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