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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기는 3년10개월인가, 6년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박 헌법재판관을 5기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하면서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논란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는 고무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기는 3년10개월인가, 6년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박 헌법재판관을 5기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하면서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논란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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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박한철 헌법재판관을 5기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하면서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논란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이미 2011년 2월 1일부터 헌법재판관 임기를 시작해 2년 2개월을 보낸 박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이 되면, 소장으로서의 임기는 잔여임기인 3년 10개월인가, 아니면 새로 6년인가.

이 질문은 곧 다음 질문과 직결된다. 5년 임기의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중 헌법재판소장을 두 번 임명할 수 있는가, 한 번만 임명할 수 있는가. 이는 헌법재판소의 안정성과 독립성과 관련된 중요한 헌법적 질문이다.

박 후보자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당일인 지난달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임기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인 법리 검토는 좀더 해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헌법의) 문리(文理)만으로는 잔여임기가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박 후보자는 최초로 6년 임기가 아닌 헌법재판소장이 된다. 지금까지 1~4기 소장(조규광, 김용준, 윤영철, 이강국)의 임기는 모두 6년이었다.

박한철 "잔여임기인 3년 10개월이 맞지 않나 생각"... 지금까지는 모두 6년

논란의 근원은 명확하지 않은 법조항 때문이다. 헌법 111조 4항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고, 그 다음 조항인 112조 1항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임기는 명확한 명문 규정이 없다. 결국 헌법과 법률 해석의 문제다.

박 후보자처럼 현직 재판관을 소장으로 임명할 때 임기를 6년으로 하지 않고 잔여임기로 할 경우 헌법재판소의 안정성과 독립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이론적으로 한 대통령이 소장을 여러 차례 임명할 수 있게 된다. 1년짜리 소장을 5번 임명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헌법에 헌법재판관 임기를 6년으로 명시한 취지가 간단히 훼손되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공안검사 출신인 박 후보자는 헌법재판소 내에서 대표적인 보수파로 알려져 있다. 박 후보자의 임기가 3년 10개월이라면 박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해인 2017년 1월 소장을 한 번 더 임명하게 된다. 그때 또 다시 코드에 맞는 6년짜리 보수파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한다면? 박 대통령은 무려 10년간 자신이 지명한 사람을 헌법재판소장 자리에 앉히게 된다.

이렇게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고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안정성과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도 같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는 이미 이와 관련해 한 차례 논쟁을 벌인바 있다. 일명 '전효숙 사태'다.

전효숙 트라우마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전효숙 헌법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했을 때 한나라당은 헌법 111조 4항을 근거로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절대 불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11월 15일 한나라당은 임명동의안 상정을 앞두고 본회의장 의장석까지 점거했다.
▲ 전효숙 트라우마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전효숙 헌법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했을 때 한나라당은 헌법 111조 4항을 근거로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절대 불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11월 15일 한나라당은 임명동의안 상정을 앞두고 본회의장 의장석까지 점거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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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이 전효숙 재판관을 소장으로 지명했을 때, 청와대와 전 재판관은 조율을 거쳐 6년 임기 보장을 위해 3년 남은 재판관직을 일단 사직했다.

그런데 인사청문회에서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헌법 111조 4항을 들며 "헌법과 법률상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토록 돼 있지만, 전 후보자는 재판관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에 헌재소장 후보자가 될 자격이 없다"며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한나라당이 이 논리에 동조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파행을 겪었다. 한나라당이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까지 하는 광풍 속에서 소장의 임기 보장과 대통령과 대법원의 지명권 보호를 위해서였다는 목소리는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104일만에 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면서 일단락됐다.

광풍에 가까운 반대 논리 속에 자신의 재판관직 사퇴는 소장의 임기 보장을 위해서였다는 전효숙 후보자의 목소리는 묻였다. 하지만 6년뒤인 지금 그의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사진은 2006년 인사청문회에서 고개를 숙인채 위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는 모습.
▲ 고개 숙인 전효숙 후보자 광풍에 가까운 반대 논리 속에 자신의 재판관직 사퇴는 소장의 임기 보장을 위해서였다는 전효숙 후보자의 목소리는 묻였다. 하지만 6년뒤인 지금 그의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사진은 2006년 인사청문회에서 고개를 숙인채 위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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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전효숙 트라우마'를 바로잡겠다고 벼르는 국회의원이 있다. 오는 8~9일로 예정된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 위원인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은 "첫 질문을 임기가 잔여임기로 생각하느냐 6년으로 생각하느냐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전 후보자 인사청문회에도 참여했던 최 의원은 당시 속기록을 보면 야당(한나라당+조순형 위원)의 논리에 정면으로 맞서 절차적, 실체적 정당성을 시종일관 주장했었다.

최 의원은 "전효숙 낙마를 끌어냈던 조순형 전 의원의 헌법 해석은 글자 그대로에 얽매인 엉터리였고, 나의 해석이 법리적으로 맞았다"면서 "하지만 조 전 의원의 '미스터 클린' 이미지와 언론의 광풍으로 덮어버렸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 전 의원처럼 헌법 111조 4항을 해석한다면, 88년 처음에는 어떻게 헌재를 구성했겠는가, 헌법재판관이 한 명도 없었는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에도 학자들이나 변호사들, 법관들은 개인적으로는 나의 법리 해석이 맞다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왜? 노무현이 싫었으니까"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수가 뒤바뀌었을 뿐, 2006년 논쟁의 재현이다. 2006년은 헌법재판소 역사상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지명된 첫 사례였고, 현재는 두 번째다. 2006년 전 재판관은 임기 3년을 남긴 상태였고, 현재 박 후보자는 3년 10개월 남아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과 전 재판관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자문을 구한 후 6년 임기 보장을 위해 재판관직을 사퇴한 채 인사청문회에 임했다 낙마했고, 전효숙 사태를 겪었던 박 대통령과 박 후보자는 현재 재판관직을 유지한 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자, 이제 2라운드다.

노무현과 전효숙의 선택이 옳았는가, 박근혜와 박한철의 선택이 옳았는가.


태그:#박한철, #헌법재판소, #전효숙,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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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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