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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표지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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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어린이와 청소년 행복지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 국가 중 최하위.
한국의 복지지출, OECD 최하위 수준.
한국은 아동과 가족 분야 복지지출 비중, OECD 국가 가운데 꼴찌.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소득 양극화가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곳.
세계가치조사에 따른 한국의 신뢰도는 지난 30년 간 지속적으로 하락.
한국 학생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는 0.31점으로 35개 조사국 가운데 꼴찌.
이명박 정부 4년 내내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단연 1위는 자살.
2010년 세계 성평등 순위에서 한국은 134개국 가운데 104위.
20대 여성 자살률, OECD 평균의 두 배.
50대 여성의 행복지수, 세계에서 가장 낮음.

저널리스트이자 미디어학자이며,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인규의 책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이하 <망가뜨린 것>)에 나오는 가슴 아픈 통계와 수치 자료를 거칠게 뽑아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세계 최고로 높은 전체 자살률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라 굳이 열거하지 않았다.

이렇게 뽑아 나열하고 보니 참으로 참담하다. 우리 사는 세상이 너무나 어두워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평을 들으며,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가 고작 이 정도라니. 강인규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분노와 함께 알지 못할 무력감, 그리고 아릿한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혼란스러웠다.

'망가진' 우리 사회의 여섯 가지 모습

<망가뜨린 것>에는 주로 '망가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조명한다. 망가진 권력, 망가진 공동체, 망가진 교육, 망가진 문화, 망가진 민주주의, 망가진 의식, 등 총 6개의 '망가진'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밝게 비추기 때문에 더욱 참혹한데, 그렇다고 망가진 모습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른 척 한 것, 바꿔야 할 것'이 함께 담겨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 사회가 집중적으로 망가졌음을 말한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후 사회 곳곳에서 '상식'이 무너졌다고 하며, 강을 콘크리트로 막고, 강바닥을 파내는 공사를 '친환경'이니, '녹색성장'이니 우기는 나라가 전 세계에서 한국 말고 또 있는지 묻는다.

독일의 하천 전문가인 베른하르트 교수가 유엔환경계획의 슈타이너 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에 4대강 사업은 '건설업계에 대한 대규모 지원책에 불과하다'고 한 것처럼, 결국 4대강 살리기가 살리려던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이명박과 이명박 주변의) 사적인 이익이며, 공동체 소유인 자연을 '민영화'한 작업이라고 저자는 명백히 밝힌다.

이젠 4대강을 말하는 건 입 아픈 일이다. 이미 우리는 '녹조라떼'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녹색을 워낙 좋아해서, 혹 녹조도 녹색성장이라 착각하지는 않았겠지. 자연에 비해, 사회 공동체에 비해 정권은 짧고 짧은데,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또한 여러 경로를 통해 그 부당성과 해악을 짚었던 터이지만, 나는 FTA가 '국익'이 아니라 '계층'의 문제임을 설파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다시 말해서 외국 기업이 한국의 공공부문을 파괴하면서 수익을 올릴 때, 또한 한국 기업도 상대국의 공공부문을 황폐화시킬 것이니, 곧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은 공모관계가 되므로 이는 계층의 이익일 뿐, 전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국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오직 부유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여 세상을 궁지에 빠뜨리면서 '친서민'을 표방하는 이중성,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슬픈 감정노동, 그리고 유독 여자들을 대상으로 공격하는 지배자들의 언어(된장녀, 담배녀, 욕설녀)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2012년 8월 12일 의령 낙서면 신반천 하류 지점. 녹조가 창궐해 있다.
 2012년 8월 12일 의령 낙서면 신반천 하류 지점. 녹조가 창궐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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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면?

그 중에 나는 특히 교육에 관심이 갔는데, 그것은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이고, 바로 위인 헝가리와도 100점 만점에 20점이나 차이나는 확실한 꼴찌이며, 이 또한 4년째 바닥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매우 아픈 현실 때문이다.

먼저 저자는 '스티브 잡스가 한국의 입시 제도를 거쳐 대학교를 나왔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한국 기업에 입사했더라도 지금 내 주머니 속에 아이폰이 들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곧 한국의 비극이다.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의 공통점은 모두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2011년 <포브스>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회사' 100개 중에 놀랍게도 한국 기업이 단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한국 입시교육(대학은 취업교육)이 지닌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지표이다.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오랫동안 영어를 가르친 앤드루라는 친구가 있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안 가르쳐본 학생이 없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참 이상해."
"뭐가?"
"난 고등학교 시절에 놀면서 대학에 들어갔고, 내 친구들도 다 그래."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들들 볶이는데, 대학생들을 놓고 보면 영국 학생들보다 더 똑똑한 것 같지 않아."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술잔에 무안한 입을 대는 순간 친구가 한 마디 보탠다.

"결국 똑같아질 거라면 차라리 놀리는 게 낫지 않아?"(본문 115~116쪽)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들들 볶이는' 교육(이걸 교육이라 할 수 있다면)을 받다보니 10년 전에 비해 중학생의 주당 평균 사교육 시간이 남학생은 71분에서 107분으로 늘었고, 여학생은 48분에서 101분으로 배 이상 뛰었다. 반면에 언어능력, 자기성찰능력, 대인관계능력, 자연친화력, 신체운동능력, 손재능, 공간·시각능력 등 9가지 항목은 퇴보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린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교육 현실이라고 개탄한다. 자살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이 2008년 214명에서 2010년 476명으로 갑절 이상 늘었고, 중학생은 256명에서 627명으로 2.5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초등학생조차 37명에서 99명으로 무려 2.6배나 늘었는데, 그 이유 중에 '성적과 진학에 대한 고민'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나는 정말이지 어른들이 가슴을 치고 개탄할 이런 현실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우리의 소중한 자식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것인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경쟁을 시켜봐야 들어가는 사람 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아이들을 끝없는 경쟁의 도가니로 몰라가고 있는 어른들의 죄는 다 어찌할 것인지, 생각할수록 두려웠다.

대학의 목적은 기업에 '인력'을 대는 게 아니다

이참에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도 우리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가운데 단연 1위는 자살인데,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은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아도, 청소년 자살 원인은 가정불화, 우울증과 성적 비관, 이성문제, 신체 결함이나 질병 순이었으며, 학교폭력과 집단 괴롭힘으로 자살한 비율은 0.02%에 불과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살인적인 경쟁 사회에다 최하위의 복지 지출로 인한 가정 파괴와 입시 교육으로 인한 성적 중압감이 학생들을 자살로 몰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근본 처방은 도외시한 채, 엉뚱하게 학교폭력만 잡아서 어린 학생들을 범법자 취급하며 여론 몰이하는 건, 결국 책임 소재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행태이며, 대다수 국민들을 호도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저자는 아울러 '지방대'라는 언어 속에 담긴 모멸적인 함의를 꺼내 놓는다. 이제 '일류'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고, 지방대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 있는 대학이란 말과 함께 '이·삼류'를 지칭하는 언어가 되었다. 지방에 있는 유수한 국립대학도 서울 지역에 있는 어떤 대학과도 견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서울과 지방'이라는 말은 이제 '학력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또한 저자가 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대학과 기업'의 관계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학의 목적은 기업에 인력을 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 대학과 국가는 기업보다 오래 존속해야 하기에, 기업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 게다가 기업은 한 사회의 교육을 이끌 만큼 현명한 조직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멀쩡한 나라치고 취업률을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는 나라는 없다며, 버젓이 취업률로 구조조정을 결정하는 우리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

게다가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근본적으로 위험하다. 이런 인재는 단기간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국민 개개인의 보람과 안녕, 그리고 국가의 미래와 무관할 뿐 아니라, 도리어 역행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망가진 교육' 얘길 하자니 끝이 없다. 가혹한 입시교육과 무한 경쟁 교육, 그리고 창의성을 철저히 무시한 교육, 국민의 세금을 들인 대학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종속시키는 교육 체제, 그리고 지방대에 대하여 모멸적으로 가해지는, 말도 안 되는 차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순들이 청소년들의 불행과 자살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부모연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3월 7일 오전 양정동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이날 실시하는 교과학습 진단평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부모연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3월 7일 오전 양정동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이날 실시하는 교과학습 진단평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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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이 이루어져야 내 꿈도 이루어진다'

'망가진 문화'는 또 어떤가.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여 문화주권을 스스로 포기하였고, '한류'에 가장 열광하는 사람은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들 자신이라며, 한류 성형으로 조작된 이미지는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몸에 불만을 품게 만들어 불행하게 만들고, '아이돌' 문화는 근본적으로 착취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망가진 민주주의'에서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혹 제기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정부, 기업을 위해 시민들의 불매운동을 기소하는 검찰, 불법으로 KBS 사장을 해임하고 정부의 앵무새가 된 공영방송, 국민들의 권력 풍자에 규제와 차단으로만 대응하는 속 좁은 정부를 통렬히 비판한다. 저자가 미국의 사례를 들어 소개한 다음 글을 그동안 터진 속에 위안이라도 될까 하여 옮겨본다.

유희문화는 미국 사회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상에서 발휘되는 작은 재치는 삶에 재미와 창의적 에너지를 공급한다. 과거에 몸담았던 주립대학의 도서관 전산시스템은 '미친 고양이(MadCat)'였고, 매점 계산대에는 '탄핵 사탕'을 올려놓고 팔았다. 뚜껑에는 재임 중이던 부시 대통령이 쫓겨나는 모습 밑에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복숭아향이 나는 이 박하사탕의 이름은 '임피치민트'. '탄핵'을 뜻하는 '임피치먼트'에 복숭아의 '피치'와 박하의 '민트'를 결합한 탁월한 작명이었다. 함께 놓여 있던 '반기득권 사탕'도 인기 자매품이었다. 이처럼 재치와 장난기는 탈권위, 탈위계의 토양에서 자란다.(본문 226쪽)

강인규의 <망가뜨린 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그린 참혹한 자화상이다. 저자는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와 경험을 통해 많은 자료들을 인용하며 우리가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았던, 우리 사회의 상처 난 속살들을 열어 보인다. 그러니 아플 수밖에 없지만, 독자들에게 매우 넓은 시야를 또한 제공해준다. 그래서 <망가뜨린 것>은 우리 사회 모든 부면을 총망라하여, 회복해야 할 것, 채워야 할 것, 바꿔야 할 것을 위한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공감'을 말한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것'(제레미 리프킨)이라고 정의하며, 협력과 배려의 본능을 찾아 연대와 공감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인간은 결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며, 네 꿈이 이루어져야 내 꿈도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이 흘러넘치는 세상 속에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나도 이롭고 너도 이로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이 참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덧붙이는 글 |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강인규, 오마이북, 2012년 12월 24일, 1만 4천 원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당신에게

강인규 지음, 오마이북(2012)


태그:#한국사회, #민주주의, #복지무능,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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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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