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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한기총 등 교계단체들이 서울광장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는 장면
▲ 2009년 서울시청광장 부활절 연합예배 2009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한기총 등 교계단체들이 서울광장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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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에서 부활절(올해는 3월 31일)이면 연례적으로 열리는 행사 중 하나가 '부활절 연합예배'다. 부활절연합예배는 다양한 형태로 모이는데, 교계 차원에서 연합예배를 드리는 예도 있고, 지역별로 연합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단체에 따라서 연합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부활절을 앞두고 '부활절연합예배'를 알리는 현수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평상시에 새벽예배에 참여하지 않던 교인들도 부활주일만큼은 새벽예배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개신교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교리의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하며, 부활이 주는 의미 등 종교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형식적인 연합예배와 나눠먹기식 순서담당으로 물든 연합예배

연합예배는 예식에 따라 진행되고, 그에 따른 순서 담당자들이 정해져야 한다. 예배의 예식에 따라 사회자, 기도자, 설교자 등등이 필요한데, 연합예배에서는 각 순서를 맡은 이들이 일반예배에 비하면 상당히 많다.

연합예배의 특성상 그렇다고 하지만, 문제는 담당자들이 정해지는 과정이다. 각 연합단체의 장이 주로 설교를 하고, 연합단체의 임원들이 각 순서를 나눠 맡는데, 연합단체의 임원진들은 대부분 대형교회 목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형교회가 연합단체에 금전적으로 많이 이바지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설교와 축도라 할 수 있는데 그것 역시도 대형교회 목사들 중심으로 구성되고, 심지어는 대형연합집회는 강단의 어느 자리에 앉는가를 놓고도 상당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부활의 의미는 상실되고 연합예배를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는 일들이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합예배는 가히 대형교회의 잔치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활절 연합새벽예배가 존속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예수의 부활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되어야

2009년 부활절연합예배 대학고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부활주일 오후, 용산참사 유족들과 함께 드린 부활절연합예배가 드려졌다.
▲ 2009년 부활절연합예배 2009년 부활절연합예배 대학고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부활주일 오후, 용산참사 유족들과 함께 드린 부활절연합예배가 드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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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연합예배라고 해서 대형교회 중심으로 이뤄진 연합예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런 예배에 참여하고, 순서를 맡은 이들은 낮은 자들의 입장을 얼마나 잘 대변해왔고, 그런 활동을 해왔으며, 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숙고한다.

그것도 영광이라 할 수 있겠으나, 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예배는 그런 부조리한 구조를 만든 이들의 표적이 되기도 하기에 순서를 맡는다는 것 자체에 헌신적인 요소가 개입된다.

대형교회 중심으로 이뤄진 연합예배를 통해서 순서를 담당한 이들이 영광을 누린다면, 그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부활의 영광은 좋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고난은 회피한다면 부활정신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그런 점에서 대형교회중심의 연합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라고 보기 어렵다.

막대한 진행예산은 교인들의 피땀이 어린 헌금이다

부활절연합예배의 규모가 커지면 행사를 준비하는 데도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결국, 그러한 경비를 누가 많이 담당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순서자가 정해질 가능성은 농후해진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그런 행사를 진행하는데 소요되는 경비는 교인들의 피땀이 어린 헌금이다.

헌금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헌금이 되려면, 드리는 자의 자세뿐 아니라 쓰이는 곳도 중요한 것이다. 대부분 한국의 교인들은 헌금이 어떻게 쓰이는가에 별반 관심이 없고, 그러한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을 불경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성향들이 대형교회의 재정비리문제를 가져온 배경이기도 하다.

교인들의 헌금은 귀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대형연합집회 같은 것들은 지양되어야 한다. 소박한 예배를 드리고, 그러한 예배를 통해 드려진 헌금도 낮은 자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2009년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여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생명을 살리는 부활절연합예배가 진행되었다. 새벽에 시청앞 광장 예배와 비교하면 성격이 다른 예배였으며, 그런만큼 참석인원수도 200여 명 안팎이었다.
▲ 2009년 생명을 향한 부활연합예배 2009년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여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생명을 살리는 부활절연합예배가 진행되었다. 새벽에 시청앞 광장 예배와 비교하면 성격이 다른 예배였으며, 그런만큼 참석인원수도 200여 명 안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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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많은 부활절연합예배가 준비되고 있으며,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나름의 의미가 있는 부활절연합예배를 지켜볼 때 안타까운 점은 참석자들의 숫자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한 가지만 소개한다.

2013년 사회선교연대운동에서는 3월 31일(주일) 오후 3:30에 대한문 앞에서 "우리의 십자가에 부활의 빛을 비추사, 그와 함께 우리도 살아나리라!(롬 6:8)"는 주제로 연합예배를 드린다.

이들은 4대강 사업으로 파헤쳐진 논밭을 앞에 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투쟁의 길로 나선 농민들과 함께하기도 하였고, 1500일이 넘도록 성의있는 면담 한 번 할 수 없었던 재능교육 노조원들과 함께하기도 했으며, 쌍용자동차와 재능교육, 한진중공업과 현대자동차, 유성기업과 콜트콜텍 등 노동자들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와 관련해서도 각 단체와 연합으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해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그러한 현실이 되기까지 침묵한 죄에 대해 회개하며, 그들과 행동을 함께하기를 결단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 이런 연합예배야말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예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대형교회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행사성 부활절연합예배나 지역별 연합예배가 아닌 살아있는 예배가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에 들어있는 사진들은 2009년 부활절연합예배에 담았던 자료사진입니다. 이후로 연합예배에 참석한 적이 없어 자료사진을 사용했습니다.



태그:#부활절, #연합예배, #고난, #십자가, #대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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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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