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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9년 '1·19 개각'을 통해 자신의 최측근인 원세훈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을 국가정보원장에 내정했다. 서울시에서 잔뼈가 굵은 지방공무원출신이 '4대 권력기관'인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에 오른 것이다. 

지난 1998년 안전기획부(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칭한 이후 지방공무원(행정관료) 출신이 국정원장에 발탁된 경우는 원세훈 전 원장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안보나 정보업무와 동떨어진 행정관료출신이 국가정보기관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느냐?"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비판에 원세훈 전 원장은 '조직장악'으로 응수했다.

"원세훈 원장은 수 천장의 첩보보고서까지 챙겨서 읽었다"

국정원은 'S라인'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행정부시장을 지낸 원세훈 행안부장관을 2009년 2월에 국정원장으로 기용한 데 이어, 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목영만 행안부 차관보를 지난해 9월 국정원 기조실장(위 오른쪽)으로 기용함으로써 국정원을 S라인 행정관료들의 손에 맡겼다.
▲ 국정원은 'S라인'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행정부시장을 지낸 원세훈 행안부장관을 2009년 2월에 국정원장으로 기용한 데 이어, 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목영만 행안부 차관보를 지난해 9월 국정원 기조실장(위 오른쪽)으로 기용함으로써 국정원을 S라인 행정관료들의 손에 맡겼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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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14회 출신인 원세훈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승승장구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원 전 원장을 서울시 기획예산실장과 경영기획실장, 행정1부시장에 발탁해 '인사'와 '재정'을 맡긴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는 이 전 대통령 'S라인'(서울시 인맥)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이 전 대통령의 중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초대 행정안전부장관에 이어 국정원장에까지 발탁했다. 이 전 대통령이 새 정부 두 번째 개각에서 원세훈 전 원장을 국정원장에 앉힌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새 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중용한 김성호 전 원장이 정권을 위기로 몰고간 촛불집회 등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냈던 김성호 전 원장은 조직장악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2009년 2월 국정원장에 취임한 이후 '인사권' 등을 통해 확실한 조직장악에 나섰다. 국정원 한 현직 간부의 증언이다.

"김성호 원장은 검찰출신이어서 국정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정원에 적응해 조직을 장악할 만하니까 원세훈 원장으로 교체됐다. 원세훈 원장은 직원들을 혹독하게 다스렸다. 잘못했을 때는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몰아세웠다. 원세훈 원장 시절에 파면, 해임 등으로 징계받은 직원들이 제일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인사난맥상'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직 국정원 직원인 A씨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국정원에서 포항세력('영포라인')이 득세하다가 원세훈 원장이 부임하자 (조직내 주류가) 범S라인('서울시 인맥')으로 바뀌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조정관을 했던 L씨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 갔다가 원세훈 원장이 부임하면서 다시 원에 들어왔다. 그가 원장을 보좌하면서 국정원 인사를 주물렀다. 4~5급이 이렇게 국정원 인사를 주물러서야 되겠나? 인사라는 게 항상 뒷말을 남기게 마련인데 특정인사에 의해 인사가 좌지우지되면 직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원세훈 전 원장은 조직장악을 위해 6급인사까지 챙겼다. 앞서 언급한 현직 간부는 "원세훈 원장은 6급 인사카드까지 다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다 외워서 인사를 챙겼다"며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국정원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원 주사'다운 조직관리"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인사관리와 함께 '정보관리'에서도 아주 치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 올라 온 요원들의 첩보보고서는 정보분석관들에 의해 '정보보고서'로 작성되고, 이렇게 올라 온 정보보고서는 요약본 형태로 국정원장에게 보고된다. 하지만 원세훈 전 원장은 달랐다. 다시 현직 간부의 증언이다.

"원세훈 원장은 서울시에서 행정부시장을 해봤지 않나? 그래서인지 엄청 꼼꼼하다. 요원들이 첩보보고를 올리면 정보분석관들이 이를 분석해 정보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원세훈 원장은 정보비서관이 올리는 (정보보고서) 요약본 말고 첩보보고서를 가져오라고 하더라. 그게 하루에 수천장인데 그것을 다 읽고 기억했다."

'잃어버린 10년' 보수담론, 국정원의 '종부세력 척결론'으로 이어져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009년 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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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사관리와 정보관리를 통해 원세훈 전 원장이 한 일은 크게 '종북세력 척결'과 'MB정부 국정홍보'로 요약된다. 전직 직원 A씨는 "원세훈 원장이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종북세력 척결 등 이념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원세훈 지시·강조말씀'('원세훈 지시사항')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한 달에 평균 한 번 열린 '확대부서장회의'(각 부서장과 지역지부장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원세훈 전 원장은 일관되게 '종북세력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2009년 6월 19일 "아직도 전교조 등 종북좌파단체들이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의 허울 뒤에 숨어 활발히 움직이므로, 국가의 중심에 서서 일한다는 각오로 더욱 분발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는데, 이러한 '종북세력 척결' 주문은 지난 2011년 2월 18일 지시에서 '절정'에 이른다.

"외부의 적인 북한보다 오히려 더 다루기 힘든 문제가 국내 종북좌파들로서, 앞으로 더욱 정부 흔들기를 획책할 것이므로 진행중인 내·수사를 확실히 매듭지어 더 이상 우리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함.

종북세력 척결과 관련,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확실한 징계를 위해 직원에게 맡기기보다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게 직접 업무를 협조하기 바람."

실제로 원세훈 전 원장 재임 4년 동안 ▲범민련 사건(2009년 5월) ▲환경영화제 개최 방해(2009년 5~6월) ▲공무원노조 사찰(2009년 7월) ▲희망제작소·아름다운가게 사찰 및 후원기업 압박(2009년 9월) ▲MB 풍자한 '삽질공화국' 미술작품 전시 방해(2009년 12월) ▲한국진보연대사건(2010년 6월) ▲6·15청학연대사건(2011년 5월) ▲왕재산 사건(2011년 7월)▲금속노조 사업자 사찰(2011년 10월) ▲전교조와 평통사 압수수색(2012년 1월) ▲방송인 김제동·김미화 사찰 의혹(2012년 4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상자기사 참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군부정권이나 권위주의정권 시절에 내세웠던  '종북세력 척결'에 힘을 쏟은 모습은 이미 행안부장관 때 예고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흔적 지우기'가 그렇다. 국방·안보분야의 한 전문가는 "원세훈 전 원장이 행안부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내린 첫번째 지시가 '노무현 정부에서 사용한 용어를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혁신'이라는 용어였는데 그 지시 이후 부처에서는 '혁신'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장 내정 당시 "잘못된 10년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진영 담론은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서 고스란히 '종북세력 척결론'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촛불집회'와 '노무현 열풍과 서거'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촛불'과 '노무현'은 이명박 정부에 내재해 있던 두 개의 트라우마였다.

국회 정보위 소속 김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심이 흉흉해지자 민간인 유력인사들을 사찰하고, 정부 비판세력을 '종북'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며 "국정원은 앞서서 그런 정국운영을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특히 지난 2008년 5월부터 수개월간 지속된 촛불집회를 정권의 심각한 위기 징후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부활, 국정원의 국내심리전 시작, 검찰의 공안파트 강화, 군의 SNS 등 인터넷 검열 강화 등으로 이어졌다.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정홍보원으로 이름 바꾸어야"

또한 원세훈 전 원장은 취임한 이후부터 국정홍보에도 주력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한 4대강사업은 원세훈 전 원장이 25차례 확대부서장 회의에서 9차례나 언급할 정도였다.

"4대강 사업이 장마철 이전 마무리되도록 지부장들은 지원에 만전을 기하고, 공사현장의 안전문제 점검."(2011년 2월 18일)
"4대강 그랜드 오픈이 한달여 정도 남았는데, 지역단체․언론 등을 통해 행사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사전 면밀 점검하고, 관계기관에 지원하여 국책사업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 받도록 할 것."(2011년 9월 16일)  

'원세훈 지시사항'을 공개했던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러한 지시는 국정원의 업무영역과는 전혀 관계없다"며 "이런 정도면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정홍보원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은 지난 2011년 11월 제3차장 산하에서 대북심리전을 맡고 있는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개편했다. 이렇게 조직을 확대한 것은 임기말에 4대강사업, 원전수주, 자원외교 등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홍보방식은 포털사이트와 트위터 등에서 댓글을 다는 것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2012년 1월 27일 "원도 훈수두기식 활동을 탈피 국정성과 홍보확산 실행에 주력"(2012년 1월 27일)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정홍보조차도 '종북세력 척결론'으로 수렴됐다. 전직 직원인 A씨는 "처음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 홍보에 주력하다가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미명 아래 야당 인사 등에 종북 이미지를 씌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며 "심리전은 북한을 상대로 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 국민에게 총질하는 격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국정원이 '종북세력 척결'과 '국정홍보'에 주력하면서 정작 대북정보력은 급격하게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종북세력 척결과 국정홍보를 위해 대북정보기능을 축소하고 국내정보 수집기능을 강화하면서 생긴 필연적인 결과였다. 특히 원세훈 전 원장이 취임한 직후 제3차장 산하의 대북전략국을 해체했는데 이는 대북인적정보(대북휴민트)가 무력해진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북한에서 발표하기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사실(2011년 12월 17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무능한 대북정보 수집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여권에서도 "정보 당국의 대북정보 수집력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구상찬 의원), "(국정원의) 정보수집능력이 인터넷 검색수준이다"(윤상현 의원)라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빗발칠 정도였다. 

김현 의원은 "원세훈 전 원장은 남북대화를 성사시키지 못한 유일한 국정원장으로 기록될 것이다"라며 "지난 10년간 쌓아온 대북정보와 해외정보 기능을 원점으로 후퇴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원세훈 전 원장은 재임 4년 내내 '국정원장'이 아니라 '원주사'로 활동한 셈이다"라고 꼬집었다.

지난 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이 작성한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제안서'는 "현재 북한을 상대로 한 휴민트 수집체계는 붕괴했고, 그 이유는 인사농단에 있는 것 같다"며 "정보기관에 대한 정치적 이유의 인사관여가 정보능력을 저하시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정원이 인터넷 여론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점도 특이할 만하다. 지난 2010년 7월 전후 심리정보단(심리전단)에서 작성했다는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 달기 등이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론조작을 통한 국내정치 개입 의혹이 짙다.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제안서' 작성에 참여한 진성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새누리당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실패한 이후 인터넷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특히 2012년 SNS 등이 새로운 정치공간으로 떠오르자 이에 기민하게 대응했다"며 "그로 인해 인터넷 공간에는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얘기가 더 많을 정도로 차고 넘쳤는데 국정원에서 벌인 인터넷 심리전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정권보위기관이 아니라 국가보위기관이다"

이명박 시장과 원세훈 부시장 시절 지난 2004년 10월 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원세훈 행정1부시장.
▲ 이명박 시장과 원세훈 부시장 시절 지난 2004년 10월 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원세훈 행정1부시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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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원장이 재임한 4년간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은 민주화 이후 출범한 다른 정부 시기보다 심화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권력기관 사유화 경향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진성준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통치습성을 보여왔는데 지금 원세훈 국정원의 모습은 거기에서 생겨났다"며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뿐만 아니라 청와대, 총리실, 검찰 등 국가기관을 정권의 사유물로 사용할 정도로 공적 소명의식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진 의원은 "DJ·노무현 정부가 철저하지는 못했지만 국정원을 개혁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 결과 노무현 정부에서 주례 독대보고를 포기하고, 국내정치정보를 보고받지 않는 등 (국정원과 권력의 관계가) 많이 정상화됐다"며 "하지만 그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역전됐고, 지난해 대선에서 드러난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은 그 하일라이트다"라고 지적했다.

전직 직원인 A씨는 "외교를 잘해야 국가의 위상이 바로 서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 그 외교의 시작은 북한이다"라며 "그런 점에서 국가정보기관의 최우선 업무는 대북문제인데 자꾸 국내정치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A씨는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우리는 안기부(국정원)를 '정권보위기관'이 아니라 '국가보위기관'으로 다시 정의했다"며 "내부직원들은 그런 기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휘부가 정권안보에만 충성심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에 주력한 결과는 국정원 내부조직의 와해와 전직 국정원장의 '퇴임 직후 출국 금지'라는 초유의 사태로 나타났다.

원세훈 국정원 재임기간(2009년-2012년) 일어난 국정원 관련 사건일지
<2009년>

▲대북전략국 해체
2009년 2월 원세훈 원장 취임 직후 3차장 산하의 대북전략국을 해체함. 대북전략국은 남북회담, 남북 비공개접촉, 교류협력을 하던 대북전략 파트였음. 대북전략국 해체는 대북 인적정보(휴민트)가 무력해진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힘.

▲ 4대강 지역 주민 대책위 회유
2009년 5월 4일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충남 부여군 세도면 대책위가 정부 과천 청사 항의방문을 결정한 직후, 국정원 직원이 대책위 관계자에게 연락해 "그렇게 하면 밉보일 수 있다"며 압력을 행사함.

▲ 범민련 사건
2009년 5월 7일 이규재 의장을 비롯한 범민련 남측본부와 지역연합의 전.현직 간부와 활동가 등 16명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6명을 구속함. 재판과정에서 국정원에 의해 패킷감청이 이루어진 것은 물론 과도한 감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남.

▲ 노무현 전 대통령 기소 관여 의혹
2009년 5월 7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원세훈 국정원장이 검찰 고위관계자에게 극비리에 국정원 직원을 보냈고, 이 직원은 "국정원장의 뜻"이라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고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신병처리를 마무리 짓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발언함.

▲ 환경영화제 개최 방해 의혹
2009년 5~6월 환경부와 서울시가 2004년부터 매년 환경영화제에 2억여 원씩을 지원해왔는데, 국정원 조정관이 서울시 담당 본부장에게 전화해 지원금을 보류시켰다는 주장이 환경재단 관계자들로부터 나옴.

▲ 공무원노동조합 사찰
2009년 7월 국정원이 양천구청에 양성윤 당시 통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후보를 징계하라고 압력을 넣음.

▲ 인사청문회 정보제공자 색출
2009년 7월 2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천 후보자의 부부동반 해외 골프여행 출입국 기록, 후보자 부인의 명품 구매목록 등을 폭로한 것과 관련해 국정원이 관세청 직원들을 상대로 제보자 색출 작업을 벌였다고 주장함.

▲ 희망제작소·아름다운가게 사찰 및 후원기업 압박
2009년 9월 17일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가게를 사찰하고 후원기업들을 압박했다고 폭로함.

▲ 민간기업 압박
2009년 10월 19일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를 둘러싸고 포스코 측과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는 오종택 인선ENT(주) 회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포스코와 싸우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함.

▲ MB 풍자한 '삽질공화국' 미술작품 전시 방해
2009년 12월 3일 국정원 광주지부 직원이 광주시 문화예술 부서와 5.18 기념 문화관 대관부서에 전화를 걸어 5.18 기념문화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대통령을 풍자한 '삽질공화국' 작품과 관련 시의 견해를 물었고, 이후 광주시가 작품의 전시가 전시장 설치 목적에 어긋나고 공공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며 주최 측에 철거 요구함.

<2010년>
▲ 세종시 대책위 회유
2010년 1월 초 국정원 직원이 임장철 연기군의원을 비롯한 면장, 농협조합장 등을 만나 "아무리 지역주민들이 세종시 원안을 주장해도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까지 표명했기 때문에 원안이 수정될 것", "원하는게 뭐냐, 필요한 게 있으면 다 주겠다"면서 원안 수정에 찬성해줄 것을 요청함.

▲ 조계사에 압력 넣어 문화행사 무산
2010년 1월 28일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에 압력을 행사해 조계사 경내에서 열릴 예정이던 '바보들 사랑을 쌓다' 행사가 무산됨. 행사 직전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걸어 "반정부적인 정치집회가 조계사에서 열린다, 총무원장 스님이 방북도 하는데 이런 정치집회는 종단에 누가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전한 직후 행사가 불허됨.

▲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 사찰 의혹
2010년 5월 4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 앞에서 방한한 프랑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을 몰래 촬영하던 사람들이 탄 승용차가 목격. 이후 이 차량이 국정원 소유부지의 공터에 주소를 둔 유령회사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정원 사찰의혹으로 번졌음.

▲ 탈북자 위장 간첩 김미화 사건
2010년 5월 23일 국정원은 지하철 기밀 등을 빼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보고해온 여성 공작원 김미화와 그 공범을 구속했다고 발표함.

▲ 한국진보연대 사건
2010년 6월 29일 국정원은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 3인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3명을 체포함. 1심 재판에서는 3명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고, 2심에서도 1심판결이 확정.

▲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 사찰
2010년 8월 16일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 한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국제회의 위탁운영업체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자신의 부인을 사찰했다고 주장함.

▲ 탈북자 출신 기자 사찰
월간 <신동아> 2010년 11월호는 김정은 후계논의, 화폐개혁 등 다수의 북한발 특종기사를 썼던 최선영 <연합뉴스> 기자를 2010년 5월~7월 국정원이 사찰했다고 보도함.

<2011년>
▲ 불교계 인사 압력행사 의혹
2011년 3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 스님이 자신의 봉은사 퇴출에 원세훈 국정원장이 개입했다고 주장함.

▲ 인도네시아 특사단 상대 정보수집 실패
2011년 3월 16일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머물고 있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숙소에 침입해 노트북을 뒤지다 발각되어 절도 등의 혐의로 경찰에 신고됨.

▲ 6·15청학연대 사건
2011년 5월 6·15청학연대 활동 건으로 국정원이 단체관계자 14명을 압수수색하고 그 가운데 4명을 체포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됨.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찰 의혹
2011년 6월 2일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세종시 문제로 파란을 겪은 후 2009년 4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사찰하기 위한 팀이 약 20명 인원으로 국정원 안에 꾸려졌고, 이아무개 팀장의 지휘 아래 4월~7월 사이 박 전 대표를 집중 사찰했다"며 '박근혜 사찰' 의혹을 제기함.

▲ 왕재산 사건
2011년 7월 반국가단체구성 혐의 등으로 이른바 왕재산 조직의 총책임자를 체포하고 조직원들을 압수수색함.

▲ 금속노조 사업장 사찰
2011년 10월 7일 경북 구미의 반도체업체 KEC노조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 당시 국정원이 노조 동향을 사찰해왔음을 드러내는 회사 측 문건을 폭로함.

▲ 국정원 심리정보단->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
2011년 11월 국정원 심리전단이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함. 심리정보국 산하 4개팀에서 70여명이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음.

▲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시기 정보획득 실패
2011년 12월 20일 긴급 소집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발표 전에 김 위원장 사망사실을 몰랐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원세훈 원장이 "몰랐다"고 답변함.

<2012년>
▲ 전교조 사건
2012년 1월 지난 2003년부터 진행해온 남북교육자교육협력사업 과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난 혐의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4명의 자택과 학교를 압수수색함

▲ 장자연 사건 개입 의혹
2012년 1월 12일 이상호 MBC 기자가 모바일 전용방송 <손바닥TV>를 통해 "고 장자연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 씨와 청와대, 국정원 간에 교류가 있었다"고 주장함.

▲ 평통사 사건
2012년 2월 '평화와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사무실을 국정원이 압수수색함. 국정원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등 평통사의 주장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라고 판단함.

▲ 방송인 김재동씨 사찰 의혹
2012년 4월 3일 방송인 김재동씨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둔 2010년 5월께 국가정보원 직원의 요청으로 두번 만난 일이 있다"며 그 직원이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모 콘서트 사회를 본다는 게 사실이냐, 왜 그것을 굳이 당신이 해야 하느냐, 당신 아닌 다른 사람도 많지 않으냐"며 콘서트 사회를 보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함.

▲ 방송인 김미화씨 사찰 의혹
2012년 4월 4일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2010년 5월, 국정원 직원이 팬이라며 찾아왔다"며 "얼마 뒤 제 집까지 찾아온 국정원 요원은 '청와대와 국정원 윗분들이 김미화 씨가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을 했다"며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찰 정황을 폭로함.

▲ 탈북자 위장 간첩 이OO 사건
2012년 6월 1일 국정원은 2011년 말 태국에서 국내로 입국한 탈북자 이아무개씨(46)가 위장 탈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인 사실을 확인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함.

▲ 국정원 직원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
2012년 8~12월 국정원 여직원 김아무개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업무가 발각되기 전인 12월 11일까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정부·여당에 유리한 글을 작성하고, 같은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글에 찬성·반대 표시를 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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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선대부속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