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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표지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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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 나 자신을 바꾸는 일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그만한 인생의 파도에 실려 여기까지 흘러온 나는 어느 만큼의 변화를 겪어왔는지 모르겠다. 다만, 10년 전 20년 전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고,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엔 몇 권의 책이 놓여 있다.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세상도 어느 만큼 바뀌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꾼 요소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내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어떤 생각들일 것이다.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세상의 변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성들과의 인터뷰집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안희경이 인터뷰한 사람들의 면면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었고, 나에게 감명을 준 지식인이거나 실천가들이다. 지식인이면서 실천가인 사람도 있다. 지식인이면서 실천가인 사람은 매우 귀하고 찾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내가 본 지식인의 역할은 대체로 힘있는 자를 위한 역할을 맡거나 현실에 목소리를 내지 않고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다. 그게 지식인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고 고통과 불편을 자초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글쓰는 일을 하다 보니 인터뷰집을 종종 찾아 읽는다. 인터뷰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inter+view', 즉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서로의 삶과 세계관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좋은 인터뷰 글은 인터뷰어(interviewer)도 중요하고, 인터뷰이(interviewee)도 중요하다. 두 사람이 만나 세계관과 언어의 화학작용을 일으켜야 비로소 좋은 인터뷰 글이 나온다. 인터뷰 글을 읽을 땐 주고받는 언어 사이 행간을 읽는 재미에 빠지곤 한다. 이 책은 안희경이라는 인터뷰어와 세계의 지성들이라는 인터뷰이가 만나 어떤 '생각'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어쩌면 세상을 향한 하나의 '생각'을.

이 책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공통점은, 잠시 깃들어 사는 지구별과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려 고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 흔적이 행간에 담겨 있고, 어떤 '생각'을 만들어낸다. 어떤 인터뷰는 실천하는 지성의 몸에서 울려오는 목소리이기에 그들의 '생각' 속에 현장과 삶이 배어 있고, 공허한 관념에 머물지 않으며 쉽고 명료하게 전달되고 있다.

세계의 지성들을 만나 어떤 '생각'들을 찾아가는 여정

지난해 3월 8일, 해군이 이틀째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변연식 평통사 공동대표가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3월 8일, 해군이 이틀째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변연식 평통사 공동대표가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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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들에 밑줄 그었다. 이 글은 내가 밑줄 그은 것들을 나누기 위한 시도이다. 나는 여러 지성들 중 특별히 '목소리 없는 존재'들을 대변하고 있는 반다나 시바와 피터 싱어의 '생각'을 소개하고 싶다. 이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다른 존재,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온 지성들이고, 실제 이 책에서 내가 많은 밑줄을 그은 이들이기도 하다.

인도 출신의 반다나 시바는 '가장 잘나가는 물리학 분야'를 전공하고, 핵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삶의 방향을 바꿔 환경운동가이자 에코페미니스트의 삶을 살고 있다. 1970년대 초, 그녀는 히말라야에서 칩코운동을 벌였다. 칩코는 "껴안다"는 뜻으로 인도 여성들은 벌목회사에 맞서 나무를 껴안으며 저항했다.

오랜 세월 나무가 껴안아준 것에 대한 갚음이지만 그것은 그들 스스로를 살리는 일이었고 공생, 함께 사는 단 하나의 길이었다. 힐링이 난무하는 시대, 나는 치유해줄 누군가를 찾는 일보다 어떤 존재를 치유하기 위해 나서고 누군가를 껴안을 때 스스로도 더 본질적인 치유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껴안는 행위는 나무를 살렸고, 이 세계에 희망을 주었다. 칩코 운동에서 엿본 이 세계의 희망은 반다나 시바의 여러 생각의 씨앗 속에도 있다.

"간디가 말하길,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가장 약한 마지막 사람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마지막 어린이를 생각하라'로 바꾸고 싶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4대강 사업이 현재화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마지막 어린이'를 생각하지 않는 문화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관람한 지율스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은 이 땅 마지막 어린이를 위해 바치는 지율스님의 오체투지와 같은 작품이었다.

반다나 시바는 인터뷰를 통해 "포스코의 실제 오너가 월스트리트이자 워런 버핏임"을 밝히며 포스코에서 개발을 위해 인도 동부 오리사 주의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주민들이 살해당한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저항한 반다나 시바는 한국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여러분은 인도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 죽음에 기초한 번영을 얻고 싶은가요?"  

물론 우리는 누구도 '그렇다'라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 기업이 인도의 환경을 파괴하고 폭력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기업의 폭력은 이 땅 안에서도 다르지 않다. 특별히 하나의 기업을 언급하자면, 삼성은 영주댐과 4대강 사업,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을 맡아 자연과 공동체의 파괴를 자행하고 있다.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다음에야 돈을 먹고 살 수 없음을 알게 될 것"

내성천 파괴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의 한 장면
 내성천 파괴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의 한 장면
ⓒ 초록의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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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나 시바와 함께 내가 관심있게 읽은 이는 <동물해방>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피터 싱어이다. 그의 생각 중 밑줄 친 부분이다.

"사실 저는 문명이 유실된다 해도 그리 마음에 걸리진 않습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오게 될 불필요한 죽음과 고통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내 생각도 그렇다. 기후 변화로 인한 죽음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일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실천윤리학자로 알려진 그가 마지막으로 전한 메시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공장식 축사에 갇혀 있는 동물이라면 어떤 느낌일까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따로 윤리적인 지도자가 있을 필요가 없죠. 모두 그렇게 물어볼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의 깨달음은 이렇게 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실천의 문제로 옮겨와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다른 존재, 사람과 자연의 관계 속으로.

나는 끝으로 안희경이 전해준 인디언의 가르침에도 밑줄을 그었다.

"마지막 나무가 죽고 마침내 온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다음에야 인간은 돈을 먹고 살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데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걸릴까? 더 많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겪어야 할까? 4대강 사업, 영주댐 공사,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이러한 막개발을 얼마나 되풀이해야 탐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책의 밑줄 긋기를 마무리하며 나는 책의 제목을 이렇게 바꿔보았다.

"하나의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그렇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세계의 지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한 것만이 아닌, 한 존재가 온 삶을 통해 깨닫고 전한 어떤 '생각'을 간직해 '하나의 실천'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생. '함께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 세계의 지성들이 말하는 한국 그리고 희망의 연대

안희경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반다나 시바, #피터 싱어, #안희경, #오마이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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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르포작가. 펴낸 책으로 <사랑 때문이다>(요셉 조성만평전), <흐르는 강물처럼>(4대강 르포르타주), <허세욱 평전> 등이 있다. 최근 e북 르포르타주 <달려라 할머니>와 <그대, 강정>(공저)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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