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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출판사에서 나온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책 표지(그림 심미아)
 보림출판사에서 나온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책 표지(그림 심미아)
ⓒ 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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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세 딸아이를 둔 아빠다 보니, 가끔 동화책을 읽어줄 때가 있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재미있는 전래동화지요.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면 왠지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구전된 이야기들이 당시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겠지만, 이 이야기도 뒤에 담고 있는 무거운 '함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헨젤과 그레텔>을 '부모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오누이를 거둬들인 인정많고 솜씨좋은 빵집 할머니를, 화덕으로 밀어넣어 살해한 배은망덕한 오누이'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으니, 제 해석도 그다지 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전래동화에 나타나는 호랑이는 가끔 '권력을 가진 자'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토끼'와 같은 약한 동물로 비유되지요. 구전되는 전래동화는 서민을 위한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기 때문에, 동화에서도 호랑이는 힘이 쎄지만 다소 어리석게 묘사되고, 토끼는 약하지만 똑똑해서 결국 위기를 잘 넘기며 호랑이를 골탕먹이고 살아남게 됩니다. 마치 <톰과 제리>처럼요.

권력 가진 자의 모습 그대로 보여준 호랑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는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잔인하고 횡포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호랑이는 남편도 없이 떡을 팔아 근근히 살아가는 어머니의 귀갓길에 나타납니다. 가난한 어머니는 그날 떡을 다 팔지도 못했습니다. 호랑이는 그 떡을 빼앗되 한 번에 떡을 다 빼앗지 않습니다. 한 번에 한 개씩만 빼앗아 먹습니다. 일종의 '희망 고문'과 같습니다. 장에서 멀고 먼 집으로 수많은 고개를 넘어 가난한 초가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어머니는 떡을 한 개씩 빼앗깁니다. 그리고는 결국 호랑이에게 잡아 먹힙니다. 제가 어려서 기억하는 버전은 더 잔혹합니다. 떡을 다 빼앗은 뒤에 호랑이는 떡 대신 어머니의 팔과 다리를 요구합니다. 비록 결과는 같았지만요.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라며 어머니에게 약속을 했지만, 처음부터 그는 어머니를 살려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쫓기며 계속 고개를 넘고 넘어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 몸부림쳤지만, 있는 것을 모두 수탈당하고 결국 생명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호랑이를 아이들에게 안내한 꼴이 됐지요.

집에 남아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오누이와 호랑이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호랑이는 여전히 거짓된 목소리로 아이들을 속이려 하지만, 아이들은 이를 알아채고 뒷문으로 도망쳐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참기름을 바르면 나무 위를 기어 오를 수 있다고 호랑이를 속여넘겨 승리하는 듯했지만, 착하고 순진한 여동생이 도끼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결국 죽임을 당할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아이들의 간절한 기도 있었지만, 닿은 곳은...

결국 아이들이 택한 것은 하늘을 향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하늘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동아줄을 내려줬고,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해피엔딩인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어머니를 잃은 힘없는 아이들이 살 수 있는 곳은 냉혹한 이 땅이 아니라 하늘 위의 세계, 하늘나라였습니다. 이 땅 위에는 아이들이 살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뒤에는,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수많은 거짓에 속으며 있는 것을 모두 빼앗기면서도 힘겹게 이 땅에서 살아가야 했던 힘없는 백성들의 피와 눈물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동화책을 읽어주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예전과 얼마나 다른가'라고. 세상의 모든 아빠와 엄마들은 우리의 아들 딸들이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은 더 아름답고 행복한 동화를 읽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태그:#육아, #동화, #기득권, #백성,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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