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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등산을 나서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구나, 라고 말이다. 그것은 젊은 날에 보이지 않던, 사소한 일상과 자연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서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산을 좋아해서 산객이 된 지도 10년이 넘었고, 부산의 장산(해운대구 소재)은 눈을 감고도 오를 정도로 참 많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산벗들이 나의 별명을 '장산 씨'라고 부를 정도로 말이다. 장산은 집과 가깝기도 하지만, 아무리 올라도 싫증이 나지 않는 산이다. 해운대의 장산은 해운대 8경 중 하나다. 그러나 장산의 매력은 진달래가 활짝 핀 3-4월이 돼야 느낄 수 있다.

진달래꽃길
 진달래꽃길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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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나만 그런 것일까. 이제는 여럿이 왁자하게 어울려 등산하는 것보다 혼자서 호젓하게 오솔길을 찾아 걷는 게 좋다. 장산은 정말 사유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오솔길이 참 많다. 봄이면, 오솔길을 따라 진달래 향기가 코를 찌른다.

그러나  장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간이 많았던 만큼,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낙엽이 지듯이, 내게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셨고, 큰누나가 떠났고, 정겨운 친구들이 하나 둘 낙엽처럼 떠났다.

나만 위해 진달래 피었네
 나만 위해 진달래 피었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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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언젠가는 앞서간 이들을 따라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야 하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이 무상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말처럼, 죽음이 있어 이 삶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등산길은 내 영혼을 성숙케 주는 것 같다. 

장산진달래
 장산진달래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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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만 해도 꽃망울이 단단했던 진달래들이 꽃폭죽을 터뜨렸다. 그러나 진달래 오솔길은 호젓하기만 하다. 아직 장산 진달래 꽃길이 그닥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더욱 진달래가 나를 위해 피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진달래만 피어 있는 것은 아니다. 벚꽃과 개나리, 산수유들도 어울려 정말 보기 좋게 피어 있었다.

하늘 태우는 진달래 꽃불
 하늘 태우는 진달래 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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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에서 '진달래길'을 만나기 위해서는 장산입구(폭포사)에서 옥녀봉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택해야 한다. 산의 이곳저곳 진달래가 다투어 피어 있지만, 이 길에 유난히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진달래가 흐드러진 오솔길
 진달래가 흐드러진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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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년보다 진달래 빛깔이 더 보기 좋다. 해마다 진달래는 더욱 더 번성하는 것 같다. 아마도 장산에 너덜겅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산 너덜겅은 화산이 폭발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진달래 길은 더욱 신비로운 안개 속을 걷는 듯하다. 문득 학생시절 좋아했던 너무나 좋아했던 김소월의 시 <진달래>와 조연현의 <진달래>도 한 구절이 뇌리에 오래 맴돈다.

진달래꽃의 빛깔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왠지 슬픔이 몰려온다. 정말 꽃은 이쁘고 아름다운데 왠지 심금을 울리는 그런 슬픈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 진달래꽃에는 진달래꽃 빛깔처럼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고 한다.

장산진달래
 장산진달래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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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아리따운 선녀가 지상에도 아름다운 꽃을 심고자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부상을 입었다. 그때 진씨라는 나무꾼이 선녀를 발견하여 집으로 데리고 와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준다. 나무꾼에 홀딱 반한 선녀는 하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달래'라는 예쁜 딸을 낳는다.

선녀는 지상에 살 수 없는 몸. 그만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진달래는 예쁘게 성장하는데, 그 마을의 사또가 달래를 첩으로 삼으려 욕심을 낸다. 이를 완강히 거절하여 진달래는 죽고 마는데, 그 소식을 들은 나무꾼이 달려와 딸의 시신을 안고 엉엉 울다가 실신하여 죽은 무덤에 예쁜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이 이 꽃을 나무꾼의 딸의 이름을 따서 진달래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진달래
 진달래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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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진달래길이 너무 좋아서 시간도 잊고 길도 잃었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기분은 점점 좋아져 정말 장산의 진달래들이 나를 위해 피어있는 듯했다. 진달래꽃밭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으니 꿀맛이다. 점심을 먹고 진달래 꽃밭에 누우니 정말 내가 신선이 된 것 같았다….

장산 너덜겅
 장산 너덜겅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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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한 잎 두 잎 따먹는 진달래에 취하여
(중략)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조연현'의 <진달래> 중에서

장산 진달래
 장산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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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24일 다녀왔습니다.



태그:#진달래, #장산, #해운대, #어머니, #진달래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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