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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하나의 유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종북좌파라는 유령이. 원세훈 국정원장은 '종북좌파 척결'의 선봉장을 자임했고, 최고의 정보요원들은 댓글 알바에 투입됐다. 온 나라를 순진무구한 자유진영과 이들을 위협하는 시뻘건 종북좌파로 양분시키는 모양새다. 오랜 식량난과 내외적인 위협에 고립되고 있는 북한은 하루아침에 우리 국민에게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도대체 지금이 1948년인지, 1953년지 알다가도 모를 멘탈을 보여주고 있는 이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에 앉아 있다. 좌파세력 일각에서 만들어 낸 '종북'에 '좌파', 혹은 '좌빨'이라는 아이디어만 살짝 얹어 만들어낸 종북좌파 놀음은 멀쩡한 단체와 개인을 '내부의 적'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로 재탄생시켰다.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공포심이 남다르다. 우리 현대사는 정권에 대한 비판세력을 국민에 대한 적으로 둔갑시켜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폭력은 물론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간 사례가 부지기수다. 지난 과거사일 뿐이라고? 언론에 흘러나온 원세훈 국정원장님의 '말씀'은 최고 정보기관의 최고 두뇌들이 정권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데 결연히 나설 것을 진지하게 주문하고 있다. 국민을 거침없이 '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이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 최상층에 아직도 존재한다.

민주당의 '이상한 선택'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17일 국회에서 양당 원내대표·수석부대표가 참석하는 '4인 회동'을 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회동이 끝난 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17일 국회에서 양당 원내대표·수석부대표가 참석하는 '4인 회동'을 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회동이 끝난 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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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국정원만이 아니다. 민주통합당(민주당) 역시 이런 종북좌파 놀음에 거수기 노릇을 자임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새누리당과 정부조직법 개편과 국회운영에 합의하면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약속했다. 지난해 6월 국회 개원 협상과 8월 임시국회 정상화 방안 때 자격심사를 약속한 데 이어 세 번째다.

자격심사의 형식상 명분은 지난해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의 부정 의혹이다. 비례대표 경선이 부정이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으로써의 자격을 자신들이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경선과정에서 부정의 당사자로 지목된 두 의원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검찰의 대규모 수사에서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여러 시각이 존재할 수 있지만, 최소한 매우 엄격한 법률적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두 의원에게 부정선거를 조작하거나 지시한 위법적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굳이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새누리당 소속 이군현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은 19일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 건과 관련해 "사법부의 판단 여부가 국회 윤리특위 운영의 전제조건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면 정치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정치적 의도란 물어보나 마나 '종북세력 척결'이다. 국정원장이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에서 알 수 있듯이 종북으로 낙인찍은 정치적 반대파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대상이라도 정치적 우위를 이용해 공격하겠다는 의지. 민주당이 합의해 준 것이 바로 이 의지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미 지난해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애초 지난해의 합의가 이미 그런 의도에 손잡아 준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에 합의한 것이 더 가슴 아픈 이유는 한국 정치사에서 그들이 차지해온 위상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세력과의 다양한 연대 속에서 무차별한 국가폭력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수행했다. 이 때문에 많은 정치학자들은 민주당을 자유주의 세력, 혹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는 동일하게 '자유주의'를 내걸었지만 이 가치를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무기로만 사용한 뉴라이트 무리와는 결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집권 이후, 자칭·타칭 한국의 자유주의세력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유주의적 가치를 배신하는 행태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 와중에서도 자칭 자유주의세력들은 "설령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전체를 위해 희생하라"는 주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집단을 위해 잘못이 없는 개인이라도 희생하라는 주장은 자유주의 정신과 부합할 수 없다.

조작된 정치공작에 맞서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개인의 인권과 진실을 지키고자 했던 프랑스 '드레퓌스'사건에서 자유주의의 정신을 찾았던 이들은, 이제 진실보다는 정치공학을 즐긴다. 지난해 두 의원의 자격심사에 대한 정치적 합의 역시 대선을 앞두고 종북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민주당의 공학적 선택이 아니었는가?

새누리당의 주장과 유사하게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도 19일 KBS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자격심사가 "사법기관의 유죄 인정과 무관하게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자율권"이라며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윤리특별위원회 심사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때 자유주의세력을 자임했던 정당의 원내대표가 설령 사법적으로는 무죄이더라도 국회의원 자격은 박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식을 보여주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억울하면 소명하면 그뿐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우경화....결국 존재감 사라질 것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과 이석기 의원의 자격심사 상정은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의도이며 정치보복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자격심사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김재연, "자격심사로 사상 검증하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과 이석기 의원의 자격심사 상정은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의도이며 정치보복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자격심사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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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지지율이 바닥을 기던 민주당은 2008년 촛불시위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정국으로 인해 겨우 지지율을 회복했다. 여전히 지난 대선결과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대선에서 졌지만 민주당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표보다는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민주당 내부가 제대로 선거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오히려 우세하다.

대선 이후에 보여주는 모습이 더 실망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대선 패배 이후의 우경화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1992년 대선에서 진보운동세력의 결집체인 전국연합과 정책연대를 추진해 역시 실질적인 진보적 야권단일화를 이뤘던 당시 김대중 후보는 겨우 33.4%만을 득표할 수 있었다. 이후 민주당의 전략은 선거승리를 위해서는 보수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는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의 기본 전략이었다. 민주당의 최근 상황은 다시 이런 식의 전략전환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2002년과 앞으로 5년은 조건이 다르다. 과거에는 민주당 이외의 특별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보수연합에도 불구하고 '미워도 다시한번' 민주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3월 4~7일 나흘간 전국 성인 12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안철수 신당 창당시 정당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안철수 신당은 23%의 지지율로, 37%를 얻은 새누리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겨우 11%였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신생정당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의 허수가 끼어 있을 수 있다. 이른바 '신장개업 효과'다.

그러나 이런 지지율에는 안철수 후보나 안철수 신당의 실체와는 무관하게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과 새로움에 대한 다양한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이 자신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조건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하더라도 진보적 블록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과거 상황과는 현실이 많이 달라졌다. 가치와 정체성을 상실한 채 안일한 공학적 판단에만 의존한다면, 민주당의 앞날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상을 종북과 선량한 자유시민으로 구분하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시각에서 보자면 민주당 역시 종북세력이다. 민주당 내 많은 이들이 통합진보당과의 관계만 청산하면 종북 시비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믿는 듯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지난 대선에서도 종북공세는 통합진보당에서 멈추지 않았으며, 지금도 민주당 소속 임수경 의원의 상임위 교체(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대해 종북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사안이 단지 통합진보당에게만 국한될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거두어야 한다. '국회의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경선부정의 실체적 진실이나 사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치러질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의 칼끝은 결국 민주당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여전히 위협적인 정치적 경쟁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에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안은 단지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의원직 유지 여부만이 아니라 민주당으로써도 큰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다수의 힘과 권력으로 누군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겠다는 발상에 동참한다면, 민주당의 껍데기는 살아 남을지 몰라도 민주당이 추구했던 정신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태그:#자격심사, #이석기, #김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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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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