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 반도체업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가 최초로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다. 고(故) 황유미씨, 황민웅씨 등 아직까지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삼성전자 백혈병 희생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은 20일 "근로복지공단이 오늘 매그나칩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11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김진기(사망 당시 38세)씨를 산재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의 유족들이 2011년 9월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를 청구한 지 1년 6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근로복지공단이 지금껏 반도체 노동자의 질병을 산재로 인정한 경우는 혈소판 감소증과 재생불량성 빈혈로 투병 중인 김지숙(37·여)씨와 유방암으로 사망한 고 김도은씨 두 명뿐이었다.

김지숙씨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 5년 5개월 동안 근무한 뒤 병을 얻었다. 기흥공장에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일했던 고 김도은씨는 퇴직 후인 2009년 8월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직후 수술을 받았지만 2012년 3월 사망했다.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받은 첫 번째 반도체 노동자, 고 김진기씨는 1997년 첫 직장으로 LG반도체 충청북도 청주공장에 입사했다. 회사는 이후 현대반도체와 합병하면서 하이닉스 반도체, 매그나칩 반도체로 이름을 바꿨지만 김씨는 줄곧 같은 공장 임플란트(이온 주입) 공정에서 일했다. 2010년 5월 '만성골수성 단핵구성 백혈병'이 발병할 때까지 변함없었다.

임플란트 공정은 이온입자를 가속화하기 위해 고압전류를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백혈병 유발 요인으로 알려진 전리방사선이 나오며 포스핀 같은 맹독성 가스나 발암물질인 비소가 발생할 수 있다. 임플란트 공정이 반도체 생산과정 중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이유다.

"김씨의 산재 승인, 반도체 백혈병 환자 중에 첫 사례라 큰 의미"

김씨는 백혈병 판정을 받기 2년 전인, 2008년부터 이미 방사선 노출로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의 주치의는 '갑상선 질환에 속발한 백혈병으로, 방사선에 의한 업무상 질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소견을 내기도 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엔지니어였던 남편 황민웅씨를 백혈병으로 잃은 정애정씨에게는 남다른 소식이다. 정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김진기씨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할 때 함께 가기도 했던 터라 산재 인정 소식을 듣고 기뻤다"고 말했다.

정씨 역시 남편의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해달라고 2008년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했지만,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재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던 정씨가 한 번 더 근로복지공단 문을 두드릴 방법은 없었다. 정씨는 다른 피해자와 함께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졌다. 그는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고 황유미씨는 1심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제기해 그의 유족들도 재판 중이다.

반올림에서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이번 일이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이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진행 중인 행정소송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이 발병한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라는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반도체 공정의 백혈병 위험을 알리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 노력하는 일까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올림이 2013년 3월 6일까지 확인한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는 모두 208명에 달한다. 여기서 181명은 삼성전자계열 사업장에서 일했다. 79명의 사망자 중에서도 삼성 출신이 69명이다.


태그:#삼성백혈병, #반올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