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 바디스> 영화 포스터

▲ <웜 바디스> 영화 포스터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CJ 엔터테인먼트


R(니콜라스 홀트)은 "난 왜 이렇게 살까?"라며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좀비다. 그는 인간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를 잃어버린 채 좀비로 살아가는 그는 무료하고 답답하다. 그러던 어느 날 R의 눈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소녀 줄리(테레사 팔머).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 R은 줄리를 다른 좀비에게 먹힐 위기에서 구해준다. 그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다시 심장이 뛰고, 꿈을 꾸는 등 놀라운 변화를 겪는 R. 하지만 좀비를 섬멸하려는 인간과 인간을 먹어버리려는 좀비 사이에서 그들의 사랑은 위태롭기만 하다. 마침내 둘의 사랑은 인간과 좀비가 벌이는 전쟁의 양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요즘의 대세는 '좀비'

요즘 공포 영화에서 가장 핫(HOT)한 소재는 단연 '좀비'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뱀파이어, 늑대 인간, 프랑켄슈타인에 비해 좀비는 늦둥이였다. 현대 사회의 공포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재가 좀비여서 그럴까? 좀비는 이제 형님들을 밀어낼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드라마 <워킹 데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3시즌에 들어갔고, 영국 드라마 <데드 셋>에도 큰 관심이 쏠렸다. 책 <세계대전 Z>가 화제작이고, 게임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가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바이오 하자드>를 영화로 만들었던 <레지던트 이블>은 5편까지 제작되었고 현재 6편을 준비 중이다. 좀비가 주류 문화의 중심에 당당히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좀비는 인간과 대립된, 즉 인간을 죽이려는 존재로 그려졌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좀비 영화는 인간의 생존 게임을 다루었다. 그러나 <웜 바디스>는 인간과 사랑에 빠진 좀비라는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웜 바디스> 영화 스틸

▲ <웜 바디스> 영화 스틸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CJ 엔터테인먼트


기존의 좀비 영화를 슬쩍 비켜가는 <웜 바디스>

결코,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되는 남녀. 운명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남자(좀비)와 여자(인간)의 사랑이라는 <웜 바디스>의 구조는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것을 통째로 인용했다. <웜 바디스>의 R과 줄리는 로미오의 첫 글자와 줄리엣에서 빌려 온 이름이다. 그렇기에 <웜 바디스>를 멜로 영화로 보면 좀비라는 설정을 집어넣었기에 참신하면서, 한편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지나치게 차용했기에 진부하다. 그보다 흥미롭게 봐야 하는 것은 <웜 바디스>가 좀비 장르를 바라본 시각이다.

좀비 장르의 역사는 다른 장르를 흡수하면서 다양해졌다. 족보의 가장 위에 <화이트 좀비>와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가 있다면,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좀비를 통해 처음으로 현대 사회의 공포에 주목했다. 이후 <28일 후> <새벽의 저주> <레지던트 이블>은 현대적인 좀비 영화의 전형을 제시했다.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부두교의 의식에서 출발했던 좀비는 뱀파이어에게서 전염성을 빚지고, 프랑켄슈타인이 다룬 과학의 그늘과 유사하게 방사능 또는 생화학 무기의 공포를 가미했다. 진화를 거듭한 좀비 장르의 현주소는 엄청난 증식 속도가 만든 숫자와 무시무시한 속도감이 주는 공포로 무장한 (소설 <세계대전 Z>를 영화로 만든) <월드워 Z>에 이르렀다.

<웜 바디스>는 이런 진화에서 슬쩍 벗어나 다른 길을 걷는다. <웜 바디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기억'과 '소통'이다. 멈춰버린 비행기에 둥지를 틀고, 낡은 레코드판을 수집하는 R은 끊임없이 기억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는 기억이 없으면 존재가 사라진다고 믿는다. 하루하루 의미 없이 먹을거리만 찾는 좀비와 좀비를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 이들의 모습은 그저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현대 사회를 은유한다.

R과 줄리가 함께 음악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면서 순간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소통이 빠진 채 사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그들이 디지털 제품이 아닌 레코드판과 플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디지털 사회에 대한 역설적인 질문이다.

<웜 바디스> 영화 스틸

▲ <웜 바디스> 영화 스틸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CJ 엔터테인먼트


소통을 통해 따뜻한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말하는 영화

좀비와 인간이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게 된다는 <웜 바디스>의 결론은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에 유쾌하게 반기를 든다. 리처드 매드슨은 <나는 전설이다>에서 새로운 종이 나타남으로써 과거의 종은 사라진다고 마무리 지었다. 그는 다른 종끼리 공존이 힘들다고 보았다. 그러나 <웜 바디스>는 공존할 수 있다고 반문한다. R과 줄리는 다른 의미의 전설을 만든다.

<웜 바디스>는 좀비와 인간이 사랑한다는 새로운 맛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따뜻한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작 <50/50>에서 암에 걸린 남자를 통해 삶과 죽음을 담담하게 다룬 바 있는 조나단 레빈 감독. 그가 <모든 소년은 맨디 레인을 사랑해>에서 보여준 선혈이 낭자한 장면을 구성한 솜씨와 <더 웩크니스>의 재기발랄함을 합쳐 <웜 바디스>에 흥미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특이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과 그의 사랑을 통해 미래를 긍정하는 조나단 레빈이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벽을 허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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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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