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시후가 14일 새벽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약 8시간 동안의 대질심문을 마친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배우 박시후가 14일 새벽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약 8시간 동안의 대질심문을 마친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 이정민


참으로 지저분한 상황이다. 지난 1991년부터 연예분야를 취재하며 지금까지 수많은 연예계의 '성폭행 사건'을 취재했지만, 이처럼 진흙탕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진흙탕'은 성폭행으로 피소된 박시후와 피해자, 그리고 관련자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법률적 방어와 공격, 그리고 자발적이거나 주변의 충동질에 의한 언론 플레이를 최소한의 상식이나 법률적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는 언론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어쩌다 이리되었는지 자괴감부터 생긴다. 이번 '박시후 성폭행 피소' 사건에 대해 <오마이스타>는 가해자 중심이 아닌 피해자 중심의 보도를 해왔다고 자부한다. 데스크로서 게이트키핑에 있어서도 이 부분에 초점을 두었다. 그 이유는 '성폭행'과 관련된 보도의 선정적 특성 탓에 피해자에게 2차적 피해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가해자의 위법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성폭행 피해자의 피해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는 자체가 또 다른 '가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의견을 내놓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A씨와 B씨의 공모에 따라 박시후가 함정에 빠졌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섣불리 나눌 수 있느냐"고 말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성폭행에 관한 법률에 따라 A씨는 박시후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박시후는 성폭행 혐의로 피소당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성폭행으로 고소를 제기한 A씨의 법률적 신분은 고소인이며, 고소를 당한 박시후는 '성폭행 피소를 당한 피고소인'이다. 애초부터 A씨가 소송을 하지 않았거나, 뒤늦었지만 소송을 취하하거나, 혹은 법률에 따라 '서로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라는 판단이 없는 한 박시후는 불행하게도 '성폭행 혐의를 지닌 피고소인' 신분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이기도 한 사안이다. A씨가 고소만 취하한다면, 이번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박시후는 법률적 용어로 '무혐의' 혹은 '혐의없음'으로 처분된다. 한마디로 '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친고죄'(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제기를 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하는 '성폭행'의 성격을 따져 보아야 한다. 법률적 판단 이전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측의 고소나 고소 취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사법당국의 법률적 판단'이 시작된다. 그래서 핵심은 고소인인 A씨의 처벌 의사다.

 14일 새벽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약 8시간 동안의 대질심문을 마친 뒤 조사실을 나선 배우 박시후가 심경을 밝히며 미소를 짓고 있다.

14일 새벽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약 8시간 동안의 대질심문을 마친 뒤 조사실을 나선 배우 박시후가 심경을 밝히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피해자의 '보상금', '사전 공모' 이유 될 수 없어

가해자 중심의 보도를 일삼으며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한 채 까발리기에게만 급급하고 있는 언론들은 현재 하나같이 'A씨가 합의금을 요구하는 제안이나 논의를 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A씨와 이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한 B씨가 공모한 사건'이라는 전제로 A씨의 고소가 B씨와 공모해 일으킨 자작극인 것처럼 전하고 있다.

또한 '성폭행 피고소인' 신분인 박시후 측이나 이에 대해 보도를 하는 언론은 'A씨가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핵심적인 가해자 논리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오고 가는 금전은 가해자에게는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금'일지 몰라도, 피해자에게는 '피해 보상금'이다. 피해자가 '피해 보상금'을 요구하는 것이 '사전 공모'의 핵심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박시후 측에서는 수많은 언론에서 제목으로 뽑고 있는 '사전 공모'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A씨와 B씨가 이번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했는지의 여부다. 만약 이러한 증거가 있다면 '사전 공모에 따른 무고죄'에 해당하고, 또한 적어도 A씨가 박시후의 동료 남자 연예인 K씨를 통해 박시후와 사적인 술자리를 갖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지 증거가 있다면 박시후의 억울함을 증명할 방증으로 활용될 수 있다.

만약 그러하다면 박시후는 많은 그의 팬들이 원하는 것처럼 '함정'에 빠진 것이고, 사건 역시 단순히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남자와 여자가 '마음을 나눈 것'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사안에 대해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한, 이번 사건은 박시후와 고소인 A씨 간의 다툼일 뿐이다. 한마디로 사건 이후에 A씨가 B씨 혹은 다른 사람들과 피의자에 대한 처벌이나 '피해보상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거나 조언을 얻는 행위 등은 법률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4일 새벽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약 8시간 동안의 대질심문을 마친 배우 박시후(가운데)가 "조사에 충실히 임했으며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라는 짧은 심경을 밝힌 뒤 타고갈 승용차로 이동하고 있다.

14일 새벽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약 8시간 동안의 대질심문을 마친 배우 박시후(가운데)가 "조사에 충실히 임했으며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라는 짧은 심경을 밝힌 뒤 타고갈 승용차로 이동하고 있다. ⓒ 이정민


가해자 중심의 보도, 2차 피해 우려

그럼에도 박시후와 A씨와 박시후의 후배 K씨, A씨의 지인 B씨, 전소속사 대표 C씨, 또 다른 연예 관계자 D씨 등 수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 법률 관계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테크니컬한 법률적 진행이다. 핵심 사항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인과관계를 통해 마치 사건 자체가 복잡하고, 여러 가지 의혹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위한 법률적 조언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런 보도를 통해 가해자 쪽은 법률적으로 '관계 이후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도성이 있다'는 식으로 변론을 할 것이다.

언론이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성관계를 가진 것인지, 아니면 피해자 측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성관계를 가졌는지의 여부가 핵심이다. 현재 언론에서 전개되고 있는 모든 논란은 철저히 가해자 중심의 언론 플레이라고 할 수 있다. A씨의 신분 노출은 물론, 피해자로서 당연한 권리인 피해보상 요구를 여론 재판으로 몰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성'과 관련된 범죄는 '약물·흉기·미성년·다자간 관계' 등 특정한 상황을 제외하고선 '친고죄'다.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해도 피해자가 고소나 고발을 하지 않는 한 이것은 사건이 되지도 않으며, 사법당국이 처벌할 수도 없다. 똑같이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한다면 이것 역시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게 도출된 경찰이나 검찰의 '무혐의' '혐의없음' '공소권 없음' 등은 '윤리적 무죄'가 아닌 합의를 통한 '법률적 무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시후 측은 '처벌보다는 돈이 목적이었다'는 식으로 여느 성폭행 가해자들의 변론과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폭행 가해자들은 뒷편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합의를 유도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고소인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피해보상금을 '형사공탁'하며 처벌 수위를 낮춰달라고 재판부에 읍소한다.

성폭행 피해자가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금전적 피해보상금을 이야기했다고, 언론이 피해자가 범죄자인양 몰아가는 것은 그동안 치욕스런 성폭행을 당하고도 어려가지 이유로 피해 정도에 비해 턱없이 알량한 금전적 피해보상을 받고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성폭행 피해자들까지 다시 한 번 수치를 안겨주겠다는 논리다.

영화 <도가니>의 실제 사건만 해도, 피해자 아이들이 긴 법정 공방으로 2차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한 몇몇 부모는 가해자와 금전적 합의를 봤다. 바로 그 치욕 속에 가해자 중심의 보도를 일삼고 있는 연예매체가 있고, 바로 대한민국이 있다.

다음 문장은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써주는 합의서의 일반적인 내용이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았고, 가해자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기에 고소를 취하하고, 이후 그 어떠한 민, 형사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박시후에게 남은 건 '윤리적 무죄'와 '법률적 무혐의'의 갈림길이다.

박시후 성폭행 합의금 피해보상금 연예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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