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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북한은 '우리와 평화를 할 것인지 전쟁을 할 것인지 양자택일하라'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은 미국보다 약한 나라다. 그런데도 자신만만하게 미국을 상대하고 있다. 이런 태도에 담긴 심리적 원동력을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는 북한이 겪은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처음 시작된 19세기 초중반 당시, 조선이 미국에 대해 가진 일반적 정서는 '무시'였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청나라·일본·대마도(1869년까지 독립세력)·유구(오키나와)와만 무역을 해도 별로 불편할 게 없었다. 미국 등 서양열강과 굳이 통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미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조선이 계속해서 통상을 거부하자, 서양열강은 무력적 방법으로 조선 시장을 개방시키려고 했다. 미국과의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년), 프랑스와의 병인양요(1866), 미국과의 신미양요(1871)가 발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신미양요 때 조선에 침입한 미국 군함 중 하나인 콜로라도호. 사진 출처: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신미양요 때 조선에 침입한 미국 군함 중 하나인 콜로라도호. 사진 출처: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 미래엔 컬처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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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셔먼호 사건의 주 무대는 평양이었다. 겉으로는 무역선이지만 속으로는 군함이나 마찬가지인 미국의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침투했다가 현지 군인과 백성들에 의해 격침되었다. 

병인양요·신미양요에서는 프랑스·미국이 군사적으로 우세했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조선이었다. 양국 군대는 조선 시장의 개방이라는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철군했다.

이런 경험들을 계기로 1860년대 및 1870년대의 조선은 미국에 대해 자신감을 품게 됐다. 무시라는 감정이 자신감이라는 감정으로 바뀐 것이다.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이 한성 종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속에는 미국에 대한 자신감도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를 겪은 미국은 그 뒤로는 조선에 직접 접근하지 못했다. 그 후의 미국은 일본과 청나라의 알선을 거쳐 조선에 접근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선을 직접 상대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19세기 중후반에 조선만큼 서양을 방어하는 나라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조선의 정서는 1880년대부터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는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뒤였다. 젊은 개화파 관료들이 정국을 주도하던 때였다.

이 시기에 미국에 대한 태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주일 청나라 외교관인 황준헌의 <조선책략>이다. 청나라 실권자인 이홍장과의 교감 속에서 작성된 이 논문의 주제는 '조선이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면 청나라·미국·일본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논문은 미국에 대한 조선의 적대적 태도를 바꿀 목적으로 "미국은 언제나 정의를 숭상하는 나라"라며 미국에 대한 칭찬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신미양요 때 48시간 동안 미군과 혈전을 벌인 광성보. 광성보는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시대 해안방어기지다.
 신미양요 때 48시간 동안 미군과 혈전을 벌인 광성보. 광성보는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시대 해안방어기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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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대를 청산하고 자기의 시대를 열어야 했던 고종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논문을 매우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미국 등 서양열강을 끌어들여 한반도 정세를 바꾸는 방법으로 정국 주도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정국 구상을 정당화하는 데에 <조선책략>을 활용했다.

이런 의도 하에서 고종은 1880년부터 <조선책략>을 꽤 적극적으로 유포시켰다. 그가 대신들과의 접촉이나 어전회의 등을 이 논문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고종 17년 9월 8일자(1880년 10월 11일) <고종실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정부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동경심을 확산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적으로 발달한 미국 같은 나라와 제휴해야 조선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인식이 위에서 아래로 번져 나간 것이다.

미국에 대한 동경심이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1882년부터 미국을 포함한 서양열강이 조선 시장에 진출했다. 물론 경상도 선비들이 <영남 만인소>란 상소를 올려 시장개방을 반대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 대한 당시의 동경심은 전 국민적 차원의 것은 아니었다. 정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확산되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국에 대한 동경심은 실망감과 중첩되기 시작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미국은 '조선이 시장을 개방하면, 향후 조선이 어려울 때에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조약 제1조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일례로, 1882년 하반기부터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또 1894년에 동학농민군을 진압할 목적으로 들어온 일본군이 조선 무대에서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려 하자, 조선은 조약 제1조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번번이 조선을 외면했다.

급기야 미국은 1905년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후원하기까지 했다.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지지하는 대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지지하기로 한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24년에 공개됐지만, 1882년 이후와 1894년 이후의 경험 때문에, 조선에서는 미국에 대한 동경심과 함께 실망감도 형성됐다.

하지만, 구한말에는 일본·청나라·러시아에 대한 반감 내지는 분노가 훨씬 더 컸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실망감은 크게 증폭되지 못했다. 그래서 1880년대 이후로는 미국에 대한 동경심이 우세한 가운데 실망감이 다소 표출되는 양상으로 미국에 대한 감정이 형성됐다.

이런 상태로 한민족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 따라서 해방 직전까지의 한민족은 무시·자신감·실망감이 의식 저변에 미미하게 존재하는 상태에서 동경심으로 미국을 바라보았다.

척화비가 있었던 서울시 종로구 보신각 앞.
 척화비가 있었던 서울시 종로구 보신각 앞.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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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45년 이후로 북한은 남한과 정반대의 대미관계를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 대해 품는 정서는 남한이 품는 것과는 상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방 직전의 대미 감정은 남과 북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변모했다.

북한은 1945년 이후로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였다. 이런 기본 위에서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매우 인상적인 경험들을 축적했다.

우선, 북한은 해방 5년 만에 일으킨 한국전쟁을 휴전협정으로 끝냈다. 세계 최강 미국이 포함된 한미연합군과의 전쟁을 승전도 패전도 아닌 휴전으로 끝낸 것이다. 또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1969년 미군 정찰기 격추사건, 1976년 판문점 사건, 1993년 제1차 핵위기, 2002년 제2차 핵위기 등에서도 북한은 미국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

해방 직전까지 미국에 대한 한민족의 감정은 기본적으로 동경심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무시·자신감·실망감이 의식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1945년 이후의 역사적 경험은 미국을 바라보는 북한의 태도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적대적 관계 속에서도 미국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해방 직전의 동경심이 더 이상 첫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해방 이후의 경험은 미국에 대해 적대감을 품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860년대 및 1870년대의 자신감을 되살리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적대감과 자신감이 북한의 대미 감정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여타 감정은 의식 저변에 깔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자신감이 북한에서 되살아났다는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880년대 이후 억제된 대미 자신감이 몇 차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해방 뒤의 북한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한번 억제된 감정이 되살아나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객관적 국력에서 뒤처지는 북한이 미국을 자신만만하게 압박하는 이유 중 하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태그:#정전협정, #북미관계, #신미양요, #제너럴셔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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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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