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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기본법이 지난해 12월 시행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협동조합 설립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협동조합 담당 부서에 따르면 적게는 수십통에서 많게는 수백통이 넘는 설립 문의 전화가 연일 쇄도하고 있어 업무 자체가 마비된다는 것.

이와 관련해 한 지자체 관계자는 "하루에만 50건이 넘는 협동조합 설립문의 전화가 온다"며 "여기에다 직접 찾아오는 민원인까지 응대하다 보면 퇴근 시간에는 완전히 파김치가 된다"고 밝혔다. 그 관계자는 또 "골목상권 깊숙이 침투한 대기업 틈바구니 속에서도 일어서보겠다는 경제적 약자들의 의욕을 꺾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신청부터 인가까지의 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지자체 담당자 가운데는 혼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짜증 섞인 어투가 나올 때도 있었다고 실토하는 공무원도 있었다. 이번 협동조합 현황 실태 조사를 위해 전국 17개 시·도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한 결과, 현장 실무자들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대해 충분히 숙지를 한 후 민원 상담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협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한 후 대응하고 있어 민원인들의 설립문의 전화 중 상당수가 실제 신청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현장 실무자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이처럼 협동조합에 거는 일반인의 기대 역시 남다르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선 낙수효과, 고환율정책, 부자감세 등 정부의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소상공인, 자영업자,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켰으며, 그 결과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협동조합 '붐' 2월에도 이어져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지난 1월 31일까지 전국적으로 361건(표1 참조)이 접수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사회적협동조합 29개 중 4건, 일반협동조합 331개 중 226건 이 각각 설립인가를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협동조합 설립 열기는 2월에도 식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적협동조합(표2 참조)의 경우 2월 28일 기준으로 37건이 접수, 7건이 설립인가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협동조합(표3 참조)은 2월 28일 기준으로 570건이 접수, 437건이 설립인가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협동조합연합회의 경우 모두 2건이 접수됐지만 자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2월 박원순 서울 시장이 10년간 협동조합을 8000개까지 확대하고 경제규모를 지역내 총생산(GRDP) 5% 규모인 14조3700여억 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한 탓인지 타 지역에 비해 신청 숫자가 160개로 월등히 높았다. 특히 서울시는 협동조합 상담 전담팀을 꾸릴 정도로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른 지역의 경우 일자리 창출과나 경제관련 담당직원 한 명이 전화 상담이나 방문 민원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광주시를 포함한 전라남·북도의 협동조합 열기도 타 지역에 비해 높았다. 3개 지자체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시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광주시는 지난 2008년 노동부 주관의 '예비 사회적 기업 발굴을 위한 일자리 창출사업'에 응모해 전국에서 3번째로 많은 1058명을 배정받아 국비 312억 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3개 지자체의 그러한 노력들이 협동조합 설립 붐과 맞물렸기 때문에 다른 시·도에 비해 협동조합 관심이 높게 나온 것 같다"고 언급했다.

천혜의 관광자원과 풍부한 특산물을 자랑하는 제주도의 경우 신청 숫자가 많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올레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지역특산물판매협동조합 한 곳만 인가(신청 4개)를 받았다. 세종시의 경우 1개 단체만 신청 접수했고, 그 나머지 시·도의 경우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협동조합 및 연합회 현황 관련 표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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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최후 보루인가

여성민우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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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취재에서 중소기업협동조합법, 농업협동조합법, 수산업협동조합법, 신용협동조합법, 새마을금고법,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산림조합법, 엽연초생산협동조합법 등 8개 개별법에 준해 설립된 조합과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해 만들어진 조합과의 차이를 민원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부 지자체 가운데는 이번 협동조합기본법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 곳도 있었다.

실제로 한 지자체는 일반협동조합을 설립하러 온 민원인에게 8개 개별법에 준해 조합을 만드는 것이 운영상에 있어 더 효율적이며 능률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규모·자본 등 모든 면에서 사기업으로 법인을 설립해도 별 문제가 없는 단체들이 일반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협동조합기본법은 '자주, 자립, 자치' 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에 설령, 법인으로 설립되더라도 금융지원 등의 혜택이 전혀 없는 일반 사기업과 다를 바 없다"라고 못박았다.   

그 관계자는 또 "일반협동조합 설립을 원하는 대다수 민원인들이 법인으로 설립되면 금융지원, 세제혜택 등 정부의 지원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스스로 자립해야만 일어설 수 있는 일반협동조합원들에게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한 채 정부가 너무 숫자만 늘리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아닌지 의심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일부 지자체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법안이 추진됐던 지난해 6월부터 17개 시·도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협동조합기본법 관련 설명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왔으며 최근에도 실무진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며 "일부 담당자들이 협동조합기본법의 설립 목적과 배경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농협법, 제 본연의 목적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데...

8개 개별법에 준해 설립된 조합들은 '자주, 자립, 자치' 등 협동조합의 기본 원칙 보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단을 그대로 답습하는 성향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다시 말해 무늬만 조합이지 일반 사기업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협동조합기본법 도입 이전에 만들어진 조합들은 주식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린 조합의 지주회사화,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 발행을 통한 자본 조달, 금융화 시대에 적절히 대응키 위한 기업가 정신 등을 추구하는 변종 협동조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3월 4일 농협금융지주가 출범 1년을 맞았지만 금융산업 분리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2011년 초만 하더라도 조합원들인 농민들과 일부 정치인들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은 자산 240조 원의 거대 공룡 기업 탄생이 변종 협동조합의 폐단에서 비롯된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또 변종 협동조합이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의 향상과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한다'라는 농업협동조합법 설립 목적에도 위배된다는 것이다. 

매년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농협하나로마트와 하나로클럽도 문제다. 금융산업과 함께 분리된 유통산업의 경우, 농헙하나로마트와 하나로클럽은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연결한다는 본연의 설립 목적을 상실한 채 대형마트나 SSM(기업형 슈퍼마켓)과 유사한 유통구조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도시인들에 비해 생활 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업인들의 생활편의를 위해 도시 외곽에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제는 대도시 골목 곳곳에 자리해 있다. 소상공인들은 "농협하나로마트와 하나로클럽이 유통산업발전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관한특별법에도 저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업조정제도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다"며 "농업협동조합법이 오히려 골목상권 침탈에 앞장서고 있다"라고 비꼬았다.

현재 농협중앙회는 전국에 56곳의 하나로클럽(대형마트)과 2050곳의 하나로마트(SSM)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8개 개별법을 근거로 한 각종 조합법인들은 협동조합 본래의 기능과 목적을 상실한 채 신자본주의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부 학자들과 지자체 현장 실무자들은 일반협동조합의 양적 성과를 자랑하기 이전에 빠른 시일 내에 자립할 수 있도록 초기 단계부터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월 기획재정부 주재로 열린 17개 시·도 실무자 워크숍에서 한 참석자는 "캐나다의 경우 일반협동조합 설립 초창기부터 예산지원 등을 하는 등 정부가 주도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며 "사회적 빈곤층이나 서민들이 자활을 목적으로 조합을 설립하는 것이 국내 현실인데, 과연 이 가운데 몇 개의 조합이 자립할 수 있겠느냐"고 질의했다고 한다. 이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추후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남긴 채 아직까지 이와 관련된 구체적 업무 지침을 하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협동조합의 예산지원과 관련, 기획재정부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자주, 자립, 자치'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어떻게 정부가 예산지원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겠느냐"며 "앞으로 그 어떤 경우에도 예산지원은 절대 없을 것이며,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일반인들의 인식제고를 위한 교육, 홍보 등의 지원안은 지자체와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생협, 해산 후 일반조합법인 재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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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시행된 이후 9년간 약 50만 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생협이 급성장했다. 대표적 생협은 한살림·iCOOP·두레·여성민우회 등이다. 이들 4개 생협의 조합원만도 43만 명이나 되며, 48만 명을 조합원으로 둔 산림조합을 조만간 넘어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농협 조합원은 200만 명, 수협 조합원은 16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4개 생협은 2001년 대비 2010년 1291%라는 수치를 올릴 정도로 급성장했으며, 일반 중견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한 생협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울산의 한 생협 단체는 본격적인 영리 추구를 위해 기존 생협 법인을 청산하고 일반협동조합 설립인가를 다시 받은 것으로 취재 결과 밝혀졌다. 이와 관련, 울산광역시청 관계자는 "생협 법인을 포함한 8개 개별법 근거의 법인들도 일반협동조합 법인을 신청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느 정도 영리 활동이 보장된 생협이지만 사기업의 영리 추구와 비교해 다소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협동조합 전문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익적 성격을 띤 단체의 일반 법인화 움직임을 예견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협동조합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현실과 막대한 자금력으로 골목상권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기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공익성을 띤 사회적 협동조합들이 과연 얼마나 버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8개 개별법을 근거로 설립된 조합이나 이번 협동조합기본법에 준해 만들어진 사회적협동조합의 일반협동조합 전환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생협의 일반협동조합 설립을 신청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협동조합 재정지원 물꼬 터

한살림생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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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시·도의 협동조합 담당자는 법인 설립에 따른 정부의 지원 여부에 대해 민원들이 가장 많이 질의했다고 밝혔다. 일부 민원인은 정부에서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는데 왜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냐며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관련법을 제대로 인지한 민원인은 신청 방법과 준비 서류에 대해 가장 많이 질의했고, 설립 이후 판로 확보 등을 통한 경영 정상화 방안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는 민원인도 있었다.

이와 관련,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부푼 마음에 설립 신청을 하러 왔다가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발길을 돌리는 민원인을 보았을 때 가슴이 아팠고"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17개 시․도는 '예산지원이 전혀 없다'는 기획재정부 입장과 달리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과 활성화를 위한 행․재정적 지원 내용까지 담은 조례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가장 먼저 칼을 뺏다.

서울시의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지난 6일 박양숙(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울특별시 협동조합 활성화 지원 조례안(제정안)'을 가결시켰다. 특히 이번 조례안은 개별 법률로 설립된 8개 협동조합과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한 사회적·일반 협동조합을 모두 아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행․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담고 있어 향후 협동조합의 성장과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서울시 관계자는 내다봤다.

서울시의 이번 조례가 통과됨에 따라 그동안 '예산지원 절대불가'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던 기획재정부도 "직접 지원이든 간접 지원이든 지자체가 결정할 부분이며 법적으로 못박은 것은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난 입장을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소상공인신문 20호(3월 11일 자)에 게재될 기사입니다.



태그:#협동조합, #생협, #두레, #한살림, #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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