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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가정 경제는 파산 직전에 내몰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대인 경제연구소가 발간한 2013년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개인 가처분 소득 대비 개인 금융부채 비율이 163.7%를 기록했다. 2007년 미국의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가계 빚은 가처분 소득 대비 140%였다. 결국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해의 미국보다도 현재 우리나라 가계 빚의 상태가 더 나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최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저축률이 2.7%까지 추락했다고 한다. 저축이 없다는 것은 그 만큼 향후 가계 빚이 더 늘어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별 가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빚으로 인한 고통과 동시에 저축이 없음으로 인한 불안까지 경제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가정 경제의 이런 불안한 현실에 대해 정부의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추억의 '재형저축'

과거 서민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재형저축이 3월6일 시장에 선보였다. 재원부족으로 1995년 폐지된 지 18년 만의 부활이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은행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 재형저축, 18년 만의 부활 과거 서민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재형저축이 3월6일 시장에 선보였다. 재원부족으로 1995년 폐지된 지 18년 만의 부활이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은행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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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근로자의 재산 형성 지원이라는 명분을 전제로 시작된 재형저축은 그야말로 직장인들의 추억이 담겨 있다. 1995년 막대한 재원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폐지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첫월급과 동시에 재형저축을 먼저 가입했다. 당시는 고도 성장 과정이었기 때문에 시장 금리가 연 10%를 넘나들었다. 또한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이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에게 저축과 절약의 미덕을 강조하는 때였다.

이런 의지를 근로자 재산형성 저축이라는 상품에 고스란히 담았다. 세제 혜택은 물론이고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보너스 금리까지 챙길 수 있었던 재형저축이 직장인들의 사회생활을 저축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 충분했다.

미국의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저축률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고 말한다. 이는 당연하다. 정부의 정책의지란 결국 세금 지원과 같은 강력한 인센티브와 함께 움직인다. 저축을 하는 것으로 소위 공돈이 생기는 데 국민들이 저축에 열을 올리지 않을 리 없다. 특히 과거의 재형저축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을 갖춘 상품이었다. 기본 이자에 법정 장려금과 임의 장려금이 주어져 금리가 최고 30%가 넘어서기도 했다. 금리 보너스 외에도 주택 융자금 혜택이 주어졌는데 원리금의 두 배까지 대출 한도를 지원받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저소득 근로자에게 특별법정장려금을 지급 우대했다는 점이다. 월급의 20%범위내에서 3년 혹은 5년제 재형저축에 가입하면 기본이자와 법정장려금 및 임의장려금 외에 5년제는 연 8%, 3년제는 연 5%를 특별 장려금으로 지급받았던 것이다. 과거의 재형저축 상품 설명을 다시 찾아보면 결국 국민들이 저축의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지원했다는 인상마저 받는다. 정부의 성장 우선 정책이 전제되어 있었고 국민들이 저축한 돈을 기업들에게 부당하고 과도하게 대출해준 바람에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국민들의 저축률이 높았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빨리 벗어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개별 가정의 높은 저축은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고 더불어 경제 위기 극복에도 대단히 중요한 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돌아온 재형저축? 이름만 돌아왔다
은행별 재형저축 금리 비교
 은행별 재형저축 금리 비교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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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과 언론의 호들갑은 마치 새 정부가 국민을 위해 과거의 재형저축 지원정책 만큼 기가막힌 인센티브를 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추억의 재형저축', '재형저축의 열기 후끈' 등의 온갖 마케팅 수사들이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다.

실제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의 저축에 대한 동기는 거의 바닥에 닿아 있을 정도다. 그나마 적립식 펀드로 저축 상품의 낮은 금리에 대한 상실감을 만회해 보려 했으나 '투자 성적은 저축만 못하다'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자산운용사들이 펀드를 판매할 때의 장밋빛 약속에 비해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들도 투자 수익을 챙길 만큼 투자자로서 훈련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대다수 가계의 펀드 투자 성적은 원금도 못지키고 속만 태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저축을 하고 싶어도 저축의 동기가 마땅치 않았음은 분명하다. 정부가 서민 중산층의 저축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재형저축을 되살린 것은 그 자체만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문제는 과거의 재형저축에 대한 기대심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곤란한 재형저축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재형저축은 법정장려금이나 임의장려금과 같은 보너스 금리가 없다. 은행 자체적으로 3년 동안 다른 적금 상품에 비해 높은 이자율을 고정적으로 보장해 주는 수준이다. 대체로 4%대 초반의 고정 이자율을 약속한다. 기간은 7년 장기 상품이 전부이고 만기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납입기간 동안 소득공제 혜택은 없다. 바로 이것이 되돌아온 재형저축의 초라한 인센티브다.

따지고 보면 2010년 1월에 소득공제 혜택이 폐지된 장기주택 마련저축 상품만도 못한 조건이다. 특히 과거의 재형저축은 가입기간이 다양해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었다. 단기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가정이라면 1년 혹은 3년짜리를 선택할 수 있었고 그보다 좀더 많은 법정장려금을 챙기면서 자산형성을 목적으로 한다면 장기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장기 상품 한가지 뿐이다.

가정 경제 유동성에 보탬이 될까

전체 가구의 60%이상이 빚을 갖고 있고 저축이 부족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상당수의 가계가 유동성이 취약한 상태임을 말해준다. 가계 유동성이 취약해지면 작은 외부 충격에도 가정 경제가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가령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소득 감소 혹은 소득이 중단되는 것과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될 경우를 가정해 보자. 기존 부채 이자와 병원비 혹은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돈은 계속 필요하다. 저축해 놓은 비상금이 최소한 3개월치 가량 준비되어 있다면 긴축재정을 통해 버텨가며 문제해결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비상 예비자금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돌려 쓰고 고금리 악성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미 다중 채무자들의 상당수는 이런 갑작스러운 변수들로 인해 빚이 시작되고 악성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저축률이 낮다는 것은 다수의 가계가 잠재적 다중 채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동성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저축을 독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유동성이란 말 그대로 언제 어느 때 필요하게 될지 모를 여유자금의 형태이므로 장기 상품은 오히려 유동성을 위협할 수 있다. 돈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중도 해지 하면 되겠지만 그럴 경우 비과세혜택은 포기해야 한다.

결국 정부가 요란하게 내놓고 있는 재형저축은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계 현실에 맞는 저축 독려 프로젝트가 아닌 셈이다. 과거의 재형저축과 같이 단기 상품으로 설계하고 그에 따른 법정 장려금을 조금이라도 보태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어야 한다.

게다가 다소 위험한 것은 재형저축 펀드도 있다는 점이다. 펀드를 저축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불완전 판매가 걱정이다. 급할 때 중도해지 해서라도 꺼내 쓰려고 보니 저축이 아니라 펀드 상품이었고 게다가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여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난감한 상황에 몰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도 이런 경우를 당한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재형저축을 가입하려면 반드시 저축의 형태인지 펀드 투자인지 분명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재형저축의 추억으로 형성되는 막연한 기대심은 아예 접어야 한다.


태그:#재형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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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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