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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가 알카사바(이슬람 성)에 올라가 찍은 미엘레우노(Muelle Uno) 전경
 말라가 알카사바(이슬람 성)에 올라가 찍은 미엘레우노(Muelle Uno) 전경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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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와, 좋겠다! 근데... 왜 스페인이야? 미국이나 호주도 아니고?"

지난해 겨울, 내가 2월 초부터 6개월동안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 가게 된다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질문을 건넸다. 스페인은 영어권 국가가 아니다. 게다가 난 스페인어 전공자도 아니다.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기자를 지망하는 스물셋 대학생일 뿐이다. 사람들이 날 이해하기 힘든 것도 당연하다 싶었다.

지난해 9월까지 '남유럽 탐방'은 그저 어린 대학생의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 내게는 계획도 없었고, 무엇보다 돈도 없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절대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학 누리집에서 본 교환학생 프로그램 안내는 나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당장 졸업이 코앞이고, 군대도 가야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남들 다 다녀오는 외국 연수 한 번 못 갔다 온 것도 억울했다.

하룻밤 만에 자기소개서를 쓰고, 유효기간이 임박한 토익성적표를 꺼내 지원서를 내밀었다. 어떻게 면접을 봤는지, 어떻게 자취방에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내 의지가 아닌,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나를 조종하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뒤, 합격 통지를 받았다. 스페인 말라가 대학(Universidad de Málaga)으로부터 온 입학허가서를 받을 수 있었다.

밤의 장막을 벗은 말라가, 아름다웠다

 한국 사람들에게 말라가(Malaga)는 생소한 동네다. 하지만 이 동네는 피카소의 고향으로, 축구팀 말라가 CF의 연고지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말라가(Malaga)는 생소한 동네다. 하지만 이 동네는 피카소의 고향으로, 축구팀 말라가 CF의 연고지로도 알려져 있다.
ⓒ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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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말라가(Málaga)는 생소한 동네다.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도 남쪽 끝에 있는 오래된 항구도시다. 지중해가 바로 보이는 해변과 오랜 항구 그리고 뜨거운 태양을 자랑하고 있어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태양의 해변)'의 중심지라고 불린다.

하지만 말라가도 나름 유명세를 타는 분야가 있었다. 말라가로 떠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말라가에 간다"고 하면, 축구팀 말라가CF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 미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피카소의 고향'이라는 설명도 해줬다. 말라가는 유럽에서는 손꼽히는 휴양지라 유럽 교환학생들은 이곳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말라가와의 첫 만남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중간 경유지 핀란드 헬싱키에서 말라가로 가는 비행기가 3시간이나 연착됐기 때문. 현지 시각은 오후 11시, 이미 인천에서부터 10시간 비행을 한 뒤라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스페인 말라가에 닿은 시각은 2월 4일 오전 3시였다. 거리는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얼른 지친 몸을 눕히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바가지요금을 낼 것임이 분명한 택시를 잡아타고 여행자 숙소에 닿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침이 밝았다. 내게는 관광보다는 집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고, 버스카드와 휴대전화를 알아보는 게 급선무였다.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왜 유럽에 있는 학생들이 여길 왜 그렇게 오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역사의 시간이 멈춰 있는 듯, 빛이 바랬으면서도 온기가 살아있는 대리석 석조 건물들을 마주했다. 말라가의 옛 중심지 '센트로 히스토리코(Centro Historico)'에서 말이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은 붐볐고, 생동감이 넘쳤다. 복잡한 골목 하나를 벗어날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불쑥불쑥 다가왔다.

2월 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양은 뜨거웠다. 하늘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녔고 센트로의 중심 광장에는 거대한 스페인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어둠 속 장막에 가려져 있다가 내게 다가온 말라가는 아름다웠다. 지난 밤의 짜증과 피로가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타국에서 맞은 설날, 독특했다

 말라가 시내 중심거리 Alameda Principal
 말라가 시내 중심거리 Alameda Principal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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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잠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켜고 무선 인터넷(Wi-Fi) 버튼을 눌렀다. 한국에서 설을 맞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인적으로는 난생 처음 홀로 지내보는 설날이었다. 이곳 말라가에 도착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명절이라고 하니 집 생각이 절실했다. 카카오톡을 켜 보이스톡으로 집에 안부전화를 걸었다. 외국인 친구에게는 "우리는 오늘도 새해"라고 자랑까지 했다. 하지만 고명을 올린 흰 떡국도, 세배도 없었다. 마음이 뭔가 허전했다.

힘들게 구한 좁은 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앉아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페이스북에 접속, 말라가에 있는 한국 학생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페이지에 들렀다. 포스팅된 글을 훑어 내려가던 중 "설날을 맞이해 한국 문화주간이 열린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장소는 미엘레 우노(Muelle Uno·1번 항구). 무작정 집을 나섰다.

큰 나무가 무성한 센트로의 알라메다 거리(Alameda Principal)로부터 걸어서 10분, 지중해가 보이고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과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미엘레 우노에 도착했다. 새로 지었다는 쇼핑몰, 서울 길거리의 노점 컨테이너와 비슷하게 생긴 컨테이너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그런지 가족들과 함께 놀러 온 주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외국인과 오인숙씨가 방패연을 만들고 있다
 외국인과 오인숙씨가 방패연을 만들고 있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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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는 태극 문양과 한복 그리고 참기름 냄새와 <강남스타일>이 있었다. "외국에 나오면 모든 사람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인 학생들이 외국인들에게 방패연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모습이 보였다.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스페인지역본부 오인숙 사무총장이 마드리드에서 직접 말라가로 와 연 공예를 가르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복을 입은 그가 연 공예 장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한지 공예를 주로 하다가 이곳에 와서 연을 처음 만들어봤다"며 "그래도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이라 생각해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주간'이라는 글귀와 태극 문양.
 '한국문화주간'이라는 글귀와 태극 문양.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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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을 돕고 있는 20여 명의 한국인 교환학생들도 있었다. '이분들이 설 기간에 맞춰 행사를 연 것이겠지?'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행사를 연 단체는 말라가 내 동양문화 및 언어학원인 'Cultura Asiática'의 루이스 산체스 대표. 산체스 대표는 "언어를 공부하려면 단순히 언어만 알면 안 된다, 문화도 함께 알아야 한다"며 "마침 설날이라고 해서, 설 주간 동안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아니라 스페인 사람이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다니... 뭔가 기분이 신기했다. 오인숙 사무총장도 "연 공예같이 우리에게 잊혀 가는 전통문화를 외국인이 일깨워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든 연을 갖고 기념촬영
 만든 연을 갖고 기념촬영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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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외국인이 주최했지만, 행사를 주도하는 이들은 한국인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한국 교포들이었다. 현장에서 김밥을 만들고 나눠주던 자원봉사자 학생들은 외국인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장을 가득 메우던 김밥·불고기 향이 코를 자극했다. 군침이 꿀꺽. 하지만 이 음식들은 외국인들에게 판매되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한국 학생들이 먹을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스피커에서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졌다.

한국은 몰라도 <강남스타일>은 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추는 <강남스타일>.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추는 <강남스타일>.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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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춤을 리드한 교환학생 이지은(좌), 박정규(우). 스물셋 나이의 두 교환학생은 말라가에 와서 잘 적응하고 있었다.
 말춤을 리드한 교환학생 이지은(좌), 박정규(우). 스물셋 나이의 두 교환학생은 말라가에 와서 잘 적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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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에서 느낀 <강남스타일>의 열기는 대단했다
 외국에서 느낀 <강남스타일>의 열기는 대단했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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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말춤을 추기 시작하자 나도 몸이 짜릿해졌다. 춤을 리드하는 한국인 교환학생들을 둘러싼 한 무리의 사람들은 독특한 풍경을 연출했다. 태양이 내리쬐고, 요트와 열대 식물이 솟아있는 항구에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흥분한 한 외국인 여성은 중앙으로 나와 몸을 격하게 흔든다. 뚱뚱한 외국인 남성도, 나이 어린 꼬마도 고삐를 쥐어 잡고 허리를 좌우로 흔든다. '한국은 몰라도 <강남스타일>은 안다는 말이 사실인가' 싶었다.

마냥 기뻤다. 수많은 외국인과 교환학생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이 한국의 문화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니 울적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정리됐다. 이곳 말라가에서 교환학생 선배들이 이렇게 현지인들과 적응해가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다잡기도 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이어질 스페인 말라가 생활, 어떤 일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집에 돌아갈 때는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항구는 석양조차도 아름다웠다
 집에 돌아갈 때는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항구는 석양조차도 아름다웠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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