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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겉표지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겉표지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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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때 수립된 제5차 전력수급계획에는 2024년까지 11기의 원전을 신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 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국내 원전의 잦은 고장으로 국민적 불안감이 증폭되었지만 지난달 22일 확정 발표된 6차 계획에서 변동사항은 없었다. 환경문제와 발전단가를 고려하면 원전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원자력의 수혜를 등에 업고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던 일본에서, 그것도 학창시절 원자력에 반해 진로를 결정했다는 연구원이 원자력을 반대하는 책을 펴냈을까. 저자인 고이데 히로아키는 일본의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에서 1974년부터 방사능 측정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런 그가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를 부제로 한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원자력에 대한 몇 가지 오류들

흔히 우리는 전지구상에서 일본만이 유일한 피폭국이라 생각한다. 오바마는 2009년 5월 프라하 연설에서 "미국만이 핵무기를 사용했던 유일한 나라"라고도 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틀림없이 사실이다. 일본은 피폭국이고,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미국은 자국의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수많은 핵실험을 되풀이했고, 주변 주민들은 피폭되었다. 또한 비키니를 비롯한 마셜군도에서도 숱한 핵실험을 했다. 이 때문에 주변 어선과 마셜군도 주민들은 피폭당하고 말았다. 미국만이 아니다. 구소련은 세미팔라틴스크에서, 프랑스는 타히티섬에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 어딜 가나 약한 입장의 주민들이 피폭당했다.

그렇다고 핵실험이 아니면 피폭당할 위험이 없느냐. 것도 아니다. 어찌됐건 원전은 기계이고 인간도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해서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류의 지식은 완전하지 않고, 사람은 때때로 과실을 일으킨다. 1957년에 미국 원자력위원회(AEC)에서 발간한 <대형 원자력발전소의 대형사고의 이론적 가능성 및 영향>은 이런 부담을 떠안으며 원전을 늘렸을 시 발생할 파국적 결말을 잘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열출력 50만Kw의 원자력발전소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3,400명이 사망하고, 4만3,000명의 장애인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만이 대안이라고, 화석연료가 언젠가는 끝을 보이기 때문에 조속히 원자력으로 갈아타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도대체 지구상에 석유는 얼마나 남아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약 80년 전인 1930년 석유 가채년수(可採年數) 추정치는 18년인데, 이것이 장기 전쟁의 동기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1940년에는 오히려 23년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석유 권익을 확보하는 일은 열강 여러 나라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1950년이 되었는데도 석유 가채년수는 20년이었습니다. (중략)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 1960년이 되었지만 석유는 고갈되기는커녕 가채년수 추정치는 35년으로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90년이 됐는데도 석유는 고갈되지 않고 가채년수는 다시 45년으로 길어졌습니다. 최신 가채년수 추정치는 50년으로까지 연장되었습니다. (44쪽)

물론 석유든 석탄이든 계속해서 사용하다보면 언젠가는 없어지게 된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석연료의 다음이 원자력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용하면 없어지는 자원을 '재생불가능 자원'이라고 하는데, 화석연료든 원자력연료인 우라늄이든 '재생불가능 자원'이라는 점은 매한가지다. 

더군다나 최근 급속하게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천연가스는 새로운 매장지역이 속속 발견되고 있고, 해저의 메탄하이드레이트 그리고 지각 층에 존재하는 심층메탄 등 장래 유망한 자원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화석연료가 고갈되니까 미래는 원자력이라 선전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원자력이 친환경 기술이라 포장하며 지구온난화와 연관시키고는 한다.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유일한 원인이며, 당장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 않는 원자력으로 전환해야만 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력회사와 국가는 국민들에게 '친환경적'이라든가 '깨끗하다'는 온갖 선전을 했다고 한다. 이런 광고의 정당성을 심사한 일본광고심사기구(JARO)는 다음과 같은 판정을 내렸다.

"이번 잡지광고에 있어서는 원자력발전 또는 방사성강하물 등의 안전성에 관해서 전혀 설명이 없이, 발전할 때에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만 가지고 '깨끗하다'는 표현을 하고 있으므로 의구심을 가지는 일반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는 원자력발전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안전성에 대해 충분한 설명 없이, 발전 시에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만을 한정적으로 잡아서 '깨끗하다'고 표현하지는 말아야 한다."(책 93쪽에서 재인용)

결국 원자력발전도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작업이다. 우선 광산에서 우라늄을 채굴하고, 제련하고, 농축하고, 가공하는 단계 모두 방대한 자재와 에너지가 투입되고 폐기물을 남긴다. 더군다나 원자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그것을 운전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핵분열 현상 자체는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지만, 그 대신 거기서 나오는 것은 '죽음의 재'라 불리는 핵분열생성물이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생명환경에서 빠져서는 안 될 물질이지만, 이 핵분열생성물은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더라도 백해무익한 물질이다.

환경파괴의 진짜 적은 에너지 낭비

지구가 생겨난 것은 46억 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인류는 지구상에 400~600만 년 전에 출현했다. 지구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인류는 겨우 1000분의 일 정도를 함께 했다. 지구의 역사를 1년이라고 친다면, 인류는 12월 31일 오후가 되어서야 출현했다는 말이다.

그런 인류가 오늘날처럼 에너지를 펑펑 쓰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산업혁명 때부터다. 불과 200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사용한 에너지가 인류가 수백만 년 동안 사용했던 에너지의 6할을 넘어간다. 그와 함께 지구상에 공존하던 수많은 생물종들을 멸종으로 내몰았다. 이것은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일이 아니다. 인류가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지구의 생명환경을 갖가지 형태로 난개발해온 결과다.

어떤 면에서 지금의 인류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치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면 스스로 문이 열리고, 여름에 에어컨을 켜놓고 양복을 입는다. 전기를 이용해 사시사철 원하는 채소와 과일을 수확할 수 있다.

용도별 전력소비 추이 (한국전력통계에서 갈무리)
 용도별 전력소비 추이 (한국전력통계에서 갈무리)
ⓒ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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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 소비량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정에서 아무리 에너지를 절약한다고 해도 그 효과는 미미하다. 문제는 에너지를 방대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사회구조를 내려놓는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와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모든 곳에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래도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원자력 타령을 하고 있을 그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에너지 낭비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 더 생산성 있는 일이 아닐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가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고이데 히로아키 씀,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2011년 12월, 1만 원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2011)


태그:#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고이데 히로아키, #김원식, #고노 다이스케,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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