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혼식을 맞아 연지곤지를 찍고 사모관대를 하고 환하게 웃고 계시던 어르신들이야 말로 재미있는 삶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금혼식을 맞아 연지곤지를 찍고 사모관대를 하고 환하게 웃고 계시던 어르신들이야 말로 재미있는 삶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대학생 때 지도교수, 지금은 정년퇴직을 해 여느 어르신들처럼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분께 전화를 했다. 모처럼 하는 통화는 아니다. 자주 통화하고 이따금 뵙는 분이다. 며칠 전에도 점심이나 먹자며 찾아오시더니 점심을 사주셨다. 김도 한 박스 들고 오셨다. 지난 초겨울에는 당신의 칠순이라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중식당으로 초청해 한턱내셨다.

당신이 농사지은 거라며 싱싱할 때 된장에 찍어 먹어보라고 고추를 따들고 찾아오기도 하고, 서리태 한 봉지를 들고 오셔서는 고라니들 때문에 가을걷이가 시원찮다는 푸념을 하고 가시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당신이 정년퇴임을 하던 해에는 주변 사람들, 멀리 일본에 있는 지인들까지를 초청해 자비로 사은연(謝恩宴)을 베풀기도 했다. 

대개의 어르신들은 응당 당신이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분은 그렇지 않다. 당신이 대접을 하러 찾아다닌다. 사제, 선후배, 나이 등에 크게 개의치 않고 당신이 대접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기꺼이 찾아가 밥이라도 사며 대접을 한다.

전화를 받은 교수님께서 "어쩐 일이냐?" 하고 묻는다. "그냥 뭐하고 계시나 궁금해서 한번 해봤습니다" 하고 얼버무렸지만, 사실은 60세가 된 제자들을 위해 회갑잔치를 치러주었다는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글을 읽다 그분의 얼굴이 이렇게 저렇게 겹쳐져 생각이 나서였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어~ 꼭 그 교수님 같다'라는 생각을 하다 전화를 드린 거였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가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표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표지
ⓒ 갤리온

관련사진보기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친 이근후 교수의 글을 김선경이 엮고 갤리온에서 출간한 책이다.

제정신인 사람, 아니 정신이 어찌된 사람일지라도 불행하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재미없게 살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대개의 사람들이 갖는 보편적이고도 절실한 바람이자 꿈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개의 사람들이 절실하게 갖는 바람이긴 하지만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사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도 여건상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 중에는 여건이 되는데도 모르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인생을 재미없는 삶으로 허비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학술적 연구결과물이 아니다. 저자인 이근후 교수가 살아오면서 생활에서, 인간관계에서, 가족관계에서, 직장 생활에서, 봉사 현장에서 직접 부닥뜨리며 경험한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의 가족은 5가구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연년생인 아들딸 부부와 손자 손녀까지 3대 13명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다. 저자는 76세의 나이로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화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30년 넘게 네팔로 의료 봉사를 다니고 있다.

저자 역시 여느 노인들처럼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등 일곱 가지 질병도 가지고 있다. 손자까지 끼고 사는 고리타분한 노인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가훈을 강조하지만 제사는 강요하지 않는다. 노력은 강조하지만 최선은 강요하지 않으며 살아온 게 저자의 인생이다. 

노후 대비로 젊었을 때 보험이나 연금을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로움에 대비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말로, '적응'이다. 살다 보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시기가 꼭 온다. 그 상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적응하는 법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경제적인 준비를 잘해서 연금이 많이 나온다 해도, 그 연금을 쓸 능력이 엇으면 그것 또한 고통이다. 단지 저축을 많이 하고 돈 쓰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 아니다.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31쪽

인생은 '여기'와 '지금'

이 책은 돈 버는 고급 기술, 부자가 되는 묘법, 출세를 하는 처세술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당신의 경험,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반추해 행복하게, 정말 재미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방법을 일러주는 책이다. 

53가지의 기술 매뉴얼에 25꼭지의 팁이 보너스처럼 달렸다. 어려서 먹었던 원기소를 먹듯 읽고, 구수한 맛을 알고 마시던 숭늉을 마시듯 읽다보면 사는 게 왜 재미가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보이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보일 것이다.

우리 가족 삼 대 열세 명이 한 지붕 아래 사는 비결 · 35
나는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 42
내가 '최선을 다하라'라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 · 74
젊은이를 가르치려 들지 마라 · 110
세대 차이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라 · 235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 265
미리 유언장을 써 두면 삶이 달라진다 · 291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에 실린 53가지 기술,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제공하고 있는 '인생의 기술 53 가지' 중 일부 소제목(목차)들이다. 소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어찌 보면 소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어찌 보면 정신과 전문의가 임상적으로 체험해 정리한 특수한 처방, '재미있게 사는 법'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으니 고개 또한 편하게 끄덕일 수 있다.

인생은 '여기here'와 '지금now'이다. 행복을 즐길 시간과 공간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항상 다른 곳, 바깥에만 시선을 두고 불행해한다. 뇌 속에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물질은 엔도르핀이다. 엔도르핀은 과거의 행복한 기억, 미래의 다가올 행복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즐거워야 엔드로핀이 형성된다.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267쪽

인생에 예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위인 전기를 읽고, 닮아가고 싶은 사람의 일기를 되짚어보며 조금씩 닮아가거나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예습이자 준비다.

재미있는 노후를 위한 예습서, 참고서, 인생 거울

나도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나도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요즘은 30대 때부터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노후의 경제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 정말 재미있게 사는 법도 함께 준비할 것이라 생각된다.

20~30대에겐 인생예습서, 40~50대에겐 인생참고서, 60대를 넘어선 어르신들에겐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인생거울, 여생을 보다 재미있게 살 수 있도록 사는 방법을 교정해주고 안내해줄 인생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예습하듯이 읽고, 공부하듯이 따라하고, 복습하듯이 새기다보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사는 지혜를 깨닫고 터득하게 되리라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지은이 이근호┃펴낸곳 갤리온┃2013.2.1┃값 1만 4000원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갤리온(2013)


태그:#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호, #갤리온, #재미, #정신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