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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7일. 나의 여름은 잔인함 그 자체였다. 몸살감기라고 생각했었다. 원래 자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잠만 자면 금방 나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약도 그냥 몇 알만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TV에서는 한 연예인이 A형 간염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A형 감염의 증세가 황달 증상과 감기몸살을 동반한다고 나와 있었는데 황달이 있는지는 모르더라도 감기몸살은 분명했었다.

큰맘 먹고 동네 의원에 갔다. 피 검사를 하고 동네의원에서 길고 긴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뾰족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큰 병원을 가라는 말만 나올 뿐이다. 갑자기 삼류 드라마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뻔한 드라마를 안 보는 대신 홈드라마를 즐겨보는 나이지만 삼류 드라마에서 보던 불치병이나 얻는 게 아닌가 하고 겁이 났었다.

수술 몇 주 후 상황이 좋아지며 산책이 가능했었다.
 수술 몇 주 후 상황이 좋아지며 산책이 가능했었다.
ⓒ 송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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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마침 다니던 회사에도 별로 정을 못 붙이던 시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가까운 병원으로 입원 절차를 밟았다. 응급실에서 절차가 진행되기를 기다리는데 쉽지만은 않았다. 의학 드라마나 다큐에서만 보던 수많은 사람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 때 시간이 오후 4시.

오후 6시가 되고, 10시가 넘고, 11시가 되어서야 수술을 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급한 순서가 아니라 선착순으로 온 순서대로 응급실에서 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한다. 엑스레이와 심전도, MRI 등등 생전 받지 못하던 검사들을 받고 나서야 복막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맹장이 터졌다고 말하는 그것이다.

새벽 12시 15분. 드디어 응급실로 실려갔다. 수술은 다 마쳤지만 꼬였던 위장이며 염증들을 며칠 방치했던 터라 세척에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수면제 힘으로 잠이 들었지만, 그 사이 5시간의 대수술이 있었던 것이다. 삼류 드라마에서 보던 응급실에 사람 실려가던 그 장면은 진짜였다. 천장에는 형광등만 보이고 수술 침대에 그렇게 끌려갔으니 말이다.

며칠 후 인조인간처럼 온몸에 이것저것을 부착했다. 포도당이라고 불리는 수액을 하루에 세 통 이상을 맞고 항생제에 소독에. 무슨 무슨 약들을 온몸에 꽂고 있고 고름을 짜내려고 커다란 주머니 같은 녀석이 내 배 옆에 차지하고 있다. 마치 딸기주스 같은 액체들이 흘나오기 시작했다.

3일간 금식을 하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각하는 일이 있어도 죽어도 끼니를 거르지 않던 나에게 금식이라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의사에게 자꾸 되물었다.

"선생님, 도대체 저는 언제 물을 마실 수 있나요?"
"아직은 곤란하고요, 생각해보고서요."

물을 마시는 것도 쉽게 허락받을 수 없었다. 그놈의 '생각해보고서요'라는 말이 짜증이 날 정도였다.

실제로 입원당시 꼽혀 있던 링겔 주사의 모습.
 실제로 입원당시 꼽혀 있던 링겔 주사의 모습.
ⓒ 송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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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되찾다.

며칠 후 같은 방을 쓰던 아저씨가 퇴원하고 입원실에는 나 홀로 남았다. 그야말로 독방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지나면서 이제는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병원 앞을 산책할 수 있을 정도이다.

떼굴떼굴 구르면서 입원했던 것이 아니라서 생필품이며 심지어는 디지털카메라까지 챙겼던 터라 셀카에 내 모습을 담는 일도 생겨났다. 심지어는 병원의 간이 PC 방에서 글을 쓸 정도로 시간도 많이 남을 정도였다. 그리고 집 밥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죽으로 시작한 식사는 점차 일반식으로 바뀌었다. 싱거운 반찬을 먹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행복했다.

약 2주간의 입원이 끝나고 나서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잘 참고 버틴 것도 신기하다는 의사들의 말에 나도 놀라웠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잘 참아낸 것 같았다.

병원을 입원하면서 의외의 상황에 놀랐다. 물론 병원별로 다르지만 위급한 환자대로 수술할 것이라는 내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얼굴이나 몸 상태로는 환자의 위급한 상황을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환자나 보호자의 이야기를 듣고 수술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또한, 일부 의사들의 권위적인 말투는 입원 내내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의사분이 친절하고 간호사분들도 고생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반말투로 이야기하거나 환자가 알아들 수 없는 의학용어를 말할 때는 입원환자나 보호자에게는 불편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건강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수술 후 건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 관리가 우선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별것 아닌 수술이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유쾌하지 않은 추억. 하지만 나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수술이야기' 응모글입니다.



태그:#맹장수술, #복막염, #수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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