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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곰세(고갯마루에 선 곰 세마리)는 청소년을 키우는 세 명의 엄마들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 누군가에게 물 한모금 건네고 서로 길을 물어 보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고곰세의 좌충우돌 인터뷰'는 청소년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심한 40대 엄마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학력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년과 대학, 꿈과 일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왠지 찌질하게 살 것 같은 근거 없는 두려움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공부에 관심없는 아이를 볼 때 근심스럽고 답답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2살에 삼겹살 장사를 시작해 24살에 집을 사고 26살에 자리를 잡은 청년을 우연히 TV에서 봤다. 어떻게 살았기에… 그의 살아온 젊은 날들이 궁금해졌다.

작년 4월에 이어 2013년 2월 14일에 다시 방문한 서준오 사장의 일터 '**한우촌'은 여전히 고깃집답지 않게 깨끗했다. '고기 맛없게 구워먹는 방법', '외상시 필요한 간단한 서류 몇 가지 - 관할 파출소 소장님 동의서, 보증인 118명' 등 기발함이 묻어나는 벽면 광고지들이 더 많아졌다.

그곳에는 서 사장 어머니도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자식 뒷바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건강할 때 도와주고 싶다면서. 보통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은 대학에 꼭 보내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텐데, 염치불구하고 주방까지 들어가 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은 이유를 은근슬쩍 물었다. 살기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매일 먹는 밥이 생존이었다고, 고기를 버무리며 말하는 모습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잠시 먹먹했다.

가난이 싫어 죽자 살자 일하다

민감하고 시도하기를 두려워하지않는 열정이 느껴진다
▲ 열혈 청년 서준오 사장 민감하고 시도하기를 두려워하지않는 열정이 느껴진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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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오(30) 사장은 부리부리하고 큰 눈에 체격이 건장한 청년이다. 서 사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다 유통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삼겹살 장사로 시작해 현재 시흥에서 **한우촌 정육식당 직영 4곳, 체인점 7곳을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가 아들 칭찬을 많이 하더라는 말에 살짝 계면쩍어했다.

"어머니가 철판 자르는 일하며 번 돈으로 누나 셋에 아들 하나를 키웠어요. 집이 어려워 초등학교 때부터 박스, 병을 팔고 전단지도 돌렸어요. 그냥 내 용돈 버는 정도였죠. 정말 힘들어서 친구집에 가서 쌀을 퍼온 적도 있어요."

어려운 형편이면 자포자기가 쉬운 게 청소년이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그도 유혹을 받았지만 고생하는 부모를 생각해 삐뚤어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친구랑 놀기도 하고 부모한테 불만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건 지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집안이 너무 어렵고 가난이 싫어서 죽자 살자 일하며 돈을 벌었어요. 아마트 일이 밤10시에 끝나면 3시까지 호프집에 가서 일하고, 5시까지 신문 돌리고 집에 오면 새벽 6시가 됐어요. 3시간 자고 9시에 나갔죠."

안산에 있는 상고를 졸업한 그는 한 대형마트에서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쉬지 않고 일하니 점점 회사에서 인정받아 22살에 최연소로 신세계 본사에 올라갔다. 대학 나와야 들어가는 곳인데 고졸인 그가 갔다. 그후 새로 오픈하는 곳은 전국 어디나 돌아다니며 유통과 서비스 정신을 배웠다.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고졸은 기업에 들어가면 진급이 잘 안 된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진급했는데, 대졸자들은 입사하자마자 한급 위가 되어 급여가 더 많았다. 이로 인해 갈등하던 그는 과감히 사표를 썼다.

벽면에 빼곡히 붙어있는 광고들이 손님들을 즐겁게 한다
▲ 친절한 광고지씨 벽면에 빼곡히 붙어있는 광고들이 손님들을 즐겁게 한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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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장사를 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던 그에게 삼겹살집이 눈에 들어왔다. 망할 확률이 제일 적다고 생각해 시장으로 거래처를 만들러 갔다가 직접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3개월 동안 궂은 일 해가며 어깨너머로 정육일을 배우고, 식당에 취직해 9개월간 장치, 주방 설거지, 요리 등 모든 걸 배웠다. 철저한 준비와 예행연습을 미리 다 한 것이다. 막연히 일하는게 아니라 이게 아니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 번돈 5천만 원으로 가게 보증금과 시설만 갖추고 벽지도 못바른 채 장사를 시작했다.

"고기를 중간단계 거치지 않는 산지 직송유통판매를 했어요. 고기와 야채를 한꺼번에 구입하여 구워먹고 가는 식당이었는데, 그 당시엔 신개념이었죠. 그 식당이 대박이 났어요."

어린 나이에 사장을 하니 직원들이 말을 잘 안 듣고 사람들이 만만하게 봤다. 찬모들의 기싸움에 곤혹을 치르기도 하고 나이 많은 사람과 욕하고 싸울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인정을 받아냈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자 체인점을 해보려는 욕심이 생겼다. 육가공 공장을 차리고 체인점을 늘렸으나 미숙한 운영과 직원의 배신으로 큰 시련을 겪기도했다.

"재작년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지난 8년간 주방에서 궂은 일 다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다시 일어났어요. 지금도 그 손실을 메꾸느라 애쓰고 있어요."

그의 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 한우촌엔 교육생 제도가 있다. 3년간 식당에서 일하면서 정육 식당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그 후엔 자기 식당을 내도록 투자를 해준다.

"애초에 0살이라는 마음으로 밑바닥 일부터 배우게 해요. 처음엔 재미있으니까 버티다가 6개월에 회의가 한번 와요. 그때 마인드 컨트롤 못해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정육점은 굉장히 지루하고 손님 기다리는 업종이라 재미가 별로 없어요. 고등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거 많아요. 요즘 젊은이들이 뭐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막연하고 허황된 꿈을 많이 꾸는 것 같아요. 근데 무의미하게 누가 하니까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길을 선택했으면 이 길에서 끝을 보겠다는 각오로 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편의점 알바 3개월, 공장에서 3개월보다는 한 분야를 선택해서 꾸준히 하는 게 나아요."

대학은 보내는 게 아니라 가는 것이다

깔끔하게 청소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오후
▲ **한우촌 내부 깔끔하게 청소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오후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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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 물었다. 대형마트 다닐 때 법대 나와 고시준비하다 고졸인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며 대학에 투자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 잘해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가는 것 아니면 시간 낭비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를 대학에 보내야 될지, 안 보내도 될지 고민하는 나에게 그는 거침없이 말했다.

"보낸다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왜 대학을 보내나요? 애가 갈 수 있음 가고 안 가면 안 가는 거지. '엄마 나 대학 갈래' '어디가고 싶은데' 'S대 △△과' '그래. 그런데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네가 좋아하는 것 찾아라.'라고 말해야죠. 보내는 것은 고등학교 때 까지고 그 다음부턴 자기 선택이죠. 엄마가 떠밀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정말 무얼 좋아하는지 찾게 해야죠."

그런 그도 장사가 안정화 된 26살에 야간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은 누구나 다 대학을 나오는데,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커서 학교 다닐 때, '너희 아버지 어디 나오셨니?' 할 때 난처할까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건 우리나라에 사는 한 누구든 학벌에 자유롭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일이 힘들어도 내가 선택해서 해야 된다면 쉽게 포기하지 말고 즐기는 것이 중요해요.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는 것은 100만분의 1이 될까요. 나도 내 적성에 이 일이 아니지만 하고 있어요. 맞춰가는 거지 적성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요즘 아침 7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일을 시작하고 새벽 2시 30분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간다. 인터뷰 하는 동안도 수시로 그를 찾는 전화가 왔고, 인터뷰를 마치자 새로운 사업 체인점 오픈하는 날이라고 급히 자리를 떴다.

서준오 사장을 인터뷰하면서 자기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면 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22살의 어린 나이에 세 가지 일을 하며 5천만 원의 사업밑천을 만들었다. 그런데 자기가 해야 할 일, 맡겨진 일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온몸으로 부딪히고 겁 없이 뛰어드는 것이 내가 발견한 그의 가장 큰 사업 밑천이다.

요즘 학원과 도서관은 공부에 지친 학생과 청년들로 늘 붐빈다. 내 주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5년 째 고시원과 학원을 오가며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20대, 대학이 맘에 안들어 휴학하고 진로를 고민하며 부모님께 용돈을 타서 쓰는 20대도 있다. 심지어 30대, 40대가 되어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 의지하거나 주변에 민폐를 끼치며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서준오 사장을 보면서 경제적 자립은 학력의 문제, 직업의 문제가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궂은 일부터 시작한 사람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안다.

대학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라는 말이 맘 속에 계속 남았다. 아이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해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세상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차단해버리고 혹시 다치고 힘들어할까봐 미리부터 겁내고 있는 건 아닐까? 부모 생각이 바뀌고 강해져야 아이를 강하게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어떤 길이든.

다양한 고기와 부재료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 정육점에서 고기작업하는 서준오사장 다양한 고기와 부재료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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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곰세, #서준오,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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