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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은 1958년 문단에 데뷔한 뒤 초기에는 주로 허무·절망 등을 노래했다면, 1970년대 이후에는 어두운 시대 상황을 비판하고 현실에 대한 투쟁 의지를 담은 시를 썼다. 그는 사방이 캄캄했던 시절에 기독교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 고은 시인 고은 시인은 1958년 문단에 데뷔한 뒤 초기에는 주로 허무·절망 등을 노래했다면, 1970년대 이후에는 어두운 시대 상황을 비판하고 현실에 대한 투쟁 의지를 담은 시를 썼다. 그는 사방이 캄캄했던 시절에 기독교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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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우리는 그를 노벨문학상 후보라든지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 작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시인은 그냥 시인일 뿐, 그 앞에 붙이는 수식어가 화려할수록 진가는 되레 바랜다.

일본이 이 땅을 집어삼키고 무참히 유린하던 1930년대 초에 태어났으니 이제 팔순이 되었다. 친일을 하는 동족들과 어린 시절부터 자주 불화를 겪었다. 젊어서는 불교에 귀의, 승려가 되었다. 1958년, 폐결핵을 앓는 친구를 위해 지은 시 '폐결핵'을 조지훈 시인이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62년 환속(還俗)을 선언했다. 그의 시가 사회 참여적이고 불교적이라는 평을 듣는 압축 배경이다.

활동 초기인 1950~60년대에는 주로 ▲허무의 정서 ▲생에 대한 절망 등을 노래했다면, 1970년대 이후에는 어두운 시대 상황을 비판하고 현실에 대한 투쟁 의지를 담은 시를 썼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기인 1980년에 내란음모죄로 투옥되었다.

그해 감옥에서 시작해서 30년 동안 쓴 4001편의 연작시를 모아 2010년에 완간한 것이 총 30권짜리 연작시집 <만인보>(창비)이다. 이 책에는 한국 현대사를 살아간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올해는 고은 시인과 김형수 시인이 대화한 내용을 정리한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한길사)과 고은 시인이 1970년대 쓴 일기를 모은 책 <바람의 사상>(한길사)이 나왔다. 여기에도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인 시인의 시대를 보는 혜안이 담겼다.

현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시를 쏟아냈던 1970~80년대, 사방이 캄캄했던 시절에 맺은 기독교와의 인연 이야기를 빼면 시인의 삶에 큰 구멍이 뚫린 꼴이 되고 만다. 문익환·김재준·박형규 목사뿐 아니라 안병무·이효재 교수, 장준하 선생 등. 특히 문익환 목사와는 형제처럼 지냈다. 문 목사의 부모는 시인을 친자식처럼 대했다 한다.

CBS 기독교 시사 프로그램 '크리스천 NOW'와 <뉴스앤조이>가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에 있는 시인의 집을 찾은 것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바람은 부드럽고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청명한 2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김응교 교수(숙명여대)와 김종희 대표(<뉴스앤조이>)가 길을 나섰다.

시인이 사는 곳은 아담한 정원이 있는 2층 집이다. 벽 가득히 유화가 걸려 있는 아늑한 거실은 작은 갤러리다. 건너편 서재는 벽과 바닥에 책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숲이다. 시인은 이곳을 '어머니의 자궁'이라 했다. 하루 종일 이 숲에서 책의 향을 맡으며 이면지 위에 한 자 한 자 시를 낳는 것이다.

CBS 기독교 시사 프로그램 '크리스천 NOW'와 <뉴스앤조이>가 고은 시인의 집을 찾았다. 2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김응교 교수와 김종희 대표가 고은 시인과 그의 인생·작품·종교에 대해 대화했다.
▲ 고은 시인 인터뷰 CBS 기독교 시사 프로그램 '크리스천 NOW'와 <뉴스앤조이>가 고은 시인의 집을 찾았다. 2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김응교 교수와 김종희 대표가 고은 시인과 그의 인생·작품·종교에 대해 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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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과 서재를 오가면서 시인의 인생·작품·종교에 대해 대화했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바람이 불 때마다 딸랑딸랑 말참견을 했다. 영상 카메라 기계에는 훼방거리일지 몰라도 사람 사이에 나누는 대화에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운 추임새 역할을 했다.

시인은 문학을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말할 때도 거침이 없었다. 한국 개신교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동참하고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던 역사를 칭찬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가 상업주의·대형화 등의 늪에 빠진 것에는 탄식했다. 교회 안에서 겪는 것과 바깥에서 보는 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는 단지 머리로만 '성서는 시(詩)'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는 성경 구절을 낭독할 때 그의 눈매와 입매는 날카로웠고, 배에서부터 나오는 소리는 단호했다. 감옥에서 읽고 깨달았으며 몸으로 받아들였던 그 감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구절 역시 짱짱하게 뿜었다. 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는 구절을 읽을 때는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말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이내 바뀌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종교가 어디에 있느냐"며 마치 제 종교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올해 고은 시인과 김형수 시인이 대화한 내용을 정리한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사진 오른쪽)과 고은 시인이 1970년대 쓴 일기를 모은 책 <바람의 사상>(가운데)이 나왔다. 책에는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인 시인의 시대를 보는 혜안이 담겼다. 왼쪽은 김응교 교수가 고은 시인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책.
▲ 고은 시인 작품 올해 고은 시인과 김형수 시인이 대화한 내용을 정리한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사진 오른쪽)과 고은 시인이 1970년대 쓴 일기를 모은 책 <바람의 사상>(가운데)이 나왔다. 책에는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인 시인의 시대를 보는 혜안이 담겼다. 왼쪽은 김응교 교수가 고은 시인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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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꽃피우는 진리... 시(詩)로 만난 성서

김응교 교수(이하 김응교) / <두 세기의 달빛>에서 진리는 변방에서 나온다는 말이 나온다. 고은 시인이 생각하는 종교와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가 반드시 종교만을 통해 현현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현상이나 작용에서 얼마든지 진리를 추출해 낼 수 있지 않나.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당대 중앙이나 중심에서 나오기보다 소외된 변방에서 이름 없이 꽃을 피운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는 나사렛 사람이었다. 나사렛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여기지 않았던 곳이다. 그런 그가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모은 곳이 갈릴리 호수다.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들이 아닌가. 물고기를 잡던 천덕꾸러기들이었다.

종교를 보면 처음에 신을 알게 되는데, 이것은 아마도 자연 현상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우리는 짐승들이 신을 아는지 모른다. 인간은 신을 느끼고 모시게 되었다. 신을 발견하고 모시는 것 자체가 시인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의 시작은 시다. 성서를 읽어 보라. 발음을 들어 보면 시다. 세상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정연하게 전개한 이론보다 예수의 시적인 표현에 더 매혹당하지 않나.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종교에 권력이 개입되고, 제도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종교는 옛날의 시적 상태가 아니고, 권력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시스템으로 변질됐다. 시스템 속에서 종교를 좇고 있다. 초창기 종교를 시작하던 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닌가.

이런 말이 진지한 신학적 탐구와 대치될지 모르겠다. 이것은 내가 가지는 사색의 일단이다."



고은 시인은 시(詩)로 만난 성서를 말하며, 독재 정권에 의해 무고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좋아했던 말씀을 단호하게 낭독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고은 시인과 성서 고은 시인은 시(詩)로 만난 성서를 말하며, 독재 정권에 의해 무고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좋아했던 말씀을 단호하게 낭독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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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대표(이하 김종희) / 시적 표현으로서 성경에 대해 말씀했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나.

"1970년대 감옥에 있을 때 가장 좋아했던 구절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다. '자유케 하리라'는 어법상 매우 당돌한 표현이다. 자유하게·자유스럽게·자유롭게 등의 표현도 있는데, 자유케는 심장에 꽂히는 화살로서 들리는 선언이다. 이 말을 할 때 확확 힘이 난다. 진리 체험의 자유, 폭로 같은 것이 막 나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런 눈물겨운 위로가 어디 있나. 구원의 시작은 위로에서부터 생긴다고 생각한다. 달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위안은 낮은 단계에 있고, 구원은 저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은 가혹한 얘기다.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보라. 함부로 인용할 수 없는 말이다."

군부독재 시절 문익환 목사 등 만나... "생사를 함께 맛본 식구"



김종희 / 문익환 목사, 함석헌 선생, 안병무 교수 등 기독교계에서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기억에 남는 인연이나 사건이 있나.

"문익환 목사의 가족과는 혈연관계나 마찬가지였다. 문익환 목사의 부모인 문재린 목사나 김신묵 여사는 나를 성이 다른 아들로 여겼다. 나에게 반말을 하지 않고 깍듯이 존대했지만, 심정적으로 나를 아들로 느꼈다.

문익환 목사와는 가장 밀착된 형제였다. 둘이 만나면 좋아서 껴안고, 춤추곤 했다. 서로 나이 차는 있었지만, 문 목사는 나이 차이 같은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주 무서운 분이다. 어린아이와도 친구가 되는 사람이다. 그런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다. 나는 문 목사 안에 진화가 안 되는 소년이 들어 있다고까지 말했다.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런 특별한 인물이 세상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이했다.

1983년, 크게 알리지 않고 이상화 교수와 결혼했다. 결혼식을 세상에 펴서 장 보는 것처럼 하는 것보다 뜻이 있는 사람들과 깊은 축복 속에서 하면 좋겠다고 여겼다. 당시 나는 사회 속에서 정치적으로 깊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안병무 교수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정했다. 문익환 목사, 박용길 장로, 안병무 교수, 박영숙 여사, 이문영 교수, 김석중 여사, 이해동 목사, 이종옥 여사 등이 함께했다. 함석헌 선생이 주례하고, 문익환 목사 아버지 문재린 목사가 축도하고, 문익환 목사가 긴 두루마기를 입고 축시를 읊고, 백낙청 교수가 축사했다. 사회는 리영희 교수가 했다. 동지들만 100여 명 모였다."


고은 시인(사진 왼쪽)은 문익환 목사(사진 오른쪽)와 형제처럼 지내는 각별한 사이였다. 문 목사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감옥에서 잠깐 나와 장례를 치른 적이 있었다. 사진은 빈소를 찾아 온 고은 시인과 문 목사가 서로 반기며 춤을 췄던 모습.
▲ 고은 시인과 문익환 목사 고은 시인(사진 왼쪽)은 문익환 목사(사진 오른쪽)와 형제처럼 지내는 각별한 사이였다. 문 목사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감옥에서 잠깐 나와 장례를 치른 적이 있었다. 사진은 빈소를 찾아 온 고은 시인과 문 목사가 서로 반기며 춤을 췄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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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 / <바람의 사상>에 문익환 목사를 처음 만난 얘기가 나온다. "오늘은 윤동주의 어릴 때 동무 문익환을 만났다. 문익환은 목사다. 마고자를 입고 나왔다. 그의 웃음이 시원시원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기로 했다. 얼핏 릴케 번역을 했다는 얘기, 성서 번역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1975년 42세 1월 29일)." 각별한 사이였던 문 목사와 같이 춤췄던 사진이 유명하다. 이것은 언제 찍은 사진인가.

"문익환 목사가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여론의 영향도 있었으니까, 잠깐 장례 기간에만 나올 수 있었다. 장례식장 안에 교도관이 들어와 있었다.

나도 빈소에 갔는데, 들어서자마자 문 목사가 일어나서 나에게 붙었다. 서로 반가워서 껴안고 있다가 춤을 췄다. 빈소는 애도하고 언동을 조심하는 자리인데, 상제(喪制)가 벌떡 일어나서 껴안고 춤추고 하니까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 자리가 축제처럼 되어 전부 박수 치며 즐거워했다. 문 목사는 장례를 치르고 다시 감옥에 갔다.

우리는 같이 교도소에 있으면서 서울 용산 육군 본부로 이동할 때 같은 호송차에 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 상황을 같이 견뎠다. 생사를 함께 맛본 식구다. 생사의 밥을 같이 먹었다."

민주화 운동 나섰던 기독교... 오늘날 상업주의·대형화 좇는 교회에 쓴소리

고은 시인은 한국 개신교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동참하고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던 역사를 칭찬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가 상업주의·대형화 등의 늪에 빠진 것에는 탄식했다.
▲ 고은 시인 고은 시인은 한국 개신교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동참하고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던 역사를 칭찬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가 상업주의·대형화 등의 늪에 빠진 것에는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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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 / <바람의 사상>을 보면 1970년대에 한국 개신교가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 개신교는 서양 기독교와 다르다. 우리는 원시 사상인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을 한반도 고대 농경 사회에 토착화시켰다. 어떤 신학자가 일컫기를 '무교라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유전인자가 됐다'고 했다. 지금의 불교와 기독교에 샤머니즘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 또 외래 종교로서 고대 불교를 받아서 1000년 동안 자주화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중세까지 불교를 장기간 아주 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근세에 와서는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중국 본토보다 더 지독하게 성리학을 자기화·교조화·근본화했다.

우리는 근대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직접 개신교를 들여오기도 하고,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했다. 우리는 기독교가 없었다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전근대적인 고귀한 전통 사상 말고도 폐단이 아주 많았는데, 그것을 바로잡아 주는 데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민족의식도 싹트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나라를 해방시킨다는 것이 모세의 출애굽과 같았다. 이런 것이 기독교가 아니었나. 개신교 인사들은 3.1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근대인으로서 기본 자질을 형성하는 데도 기독교가 많은 역할을 했다. 기독교는 일제를 물리치고 민주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때 나는 기독교와 만났다."

김종희 / 1970년대에 비해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종교 일반이 자본의 논리와 친밀해져 있다. 1970년대 '개척 교회' 하면 정말 헌신적으로 달동네에 가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몸을 바치는 눈물겨운 모습이 있었다. 오늘날 교회는 가게 하나 늘리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외국에 가서 교포 사회를 방문해 보면 교회가 자꾸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세포가 분열해 나가는 것이 발전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상업주의가 완전히 종교의 기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교회를 엄청나게 대형화하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바벨탑이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이름 없는, 시냇물이 흐르는 맑은 영혼이 견뎌 낼 수 있을까.

서구에는 종교가 계속 해체되고 있다. 교회나 성당은 비어 가고 있는데, 교회의 자기방어가 근본주의로 향한다. 아랍 이슬람의 근본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는 서로 탓할 이유가 없다. 다 똑같다. 서방 기독교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탄하는데, 자신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것이다. 세계 교회가 근본주의로 가는 흐름을 극복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큰 과제이기도 하다."

거실과 서재를 오가면서 문학과 인생, 기독교 인연에 대해 두 시간 넘도록 대화가 이어졌다. 팔순이 된 고은 시인은 '어머니의 자궁' 같다고 한 서재에서 여전히 이면지 위에 한 자 한 자 시를 낳는 작업을 계속해 가고 있다.
▲ 고은 시인 거실과 서재를 오가면서 문학과 인생, 기독교 인연에 대해 두 시간 넘도록 대화가 이어졌다. 팔순이 된 고은 시인은 '어머니의 자궁' 같다고 한 서재에서 여전히 이면지 위에 한 자 한 자 시를 낳는 작업을 계속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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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두 시간 넘도록 대화한 시인 고은의 문학과 인생, 기독교 인연 이야기 중에서 기독교 부분만 정리한 것이다. CBS에서 2월 16일 오전 10시에 방송하는 '크리스천 NOW'를 통해 시인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보기 : 'CBS 크리스천 NOW' 유튜브 채널


태그:#고은, #고은 시인, #바람의 사상, #두 세기의 달빛,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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