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헨젤과 그레텔 : 마녀 사냥꾼> 스틸.

<헨젤과 그레텔 : 마녀 사냥꾼> 스틸. ⓒ Paramount Pictures


잔혹하지만 복잡하지않은 스토리는 관객에게 재미를 줘 

어느 달밤에 어린 남매가 아버지에 의해 숲에 버려진다. 남매의 이름은 헨젤(오빠)과 그레텔(여동생). 둘은 왜 부모가 자신들을 버리고 사라졌는지 이유를 모른채 숲속을 헤매다 어느 사탕으로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나쁜 마녀가 살고 있었다. 남매는 각고 끝에 나쁜 마녀를 불태워 죽이고 나서 마녀 사냥꾼으로서 대활약하며 살게 된다.

지난 14일 개봉한 <헨젤과 그레텔 : 마녀 사냥꾼>(이하 '헨젤과 그레텔')의 전체적인 줄거리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이 할리우드 영화는, 고전 동화를 비트는 요즘 영화계 추세에 맞게 주인공 남매를 '하드고어 호러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마녀 사냥을 업으로 하며 성인이 된 헨젤과 그레텔은 또다른 수퍼히어로물의 영웅들같은 모습으로 관객을 만난다.

하드고어는 쉽게 말해 매우 잔인하다는 뜻이다. '유혈이 낭자하고 으스러지고 뽑히고 잘리고 터지고' 이런 과격한 표현들이 딱 어울리는 마니아 장르이기도 하다. <헨젤과 그레텔>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건 야한 장면 때문이 아니라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는 무섭다. 때이른 호러물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일단, 영화속 주된 악당인 나쁜 마녀들의 얼굴은 상당히 무섭다. 실제로 사람인 배우가 특수분장을 한 것인데 사람이 사람 아닌 캐릭터(그것도 괴물에 가까운 마녀)를 연기한다는 게 그 무서움을 배가시킨다. 나쁜 마녀들의 행동도 무섭고, 대사도 무섭다. 워낙 거침없이 잔인하고 흉하기 때문이다.

영화속 나쁜 마녀들은 인간을 추한 존재로 규정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나쁜 마녀를 처단하는 헨젤과 그레텔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사람이 악당으로 나오는 보통 영화와 달리 사람이 아닌 악마같은 존재가 악당이기 때문에 더욱 편하게 그들을 적대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지 않은 이 영화의 스토리는 관객들이 단순하게 선과 악을 나누고 주인공들이 악을 무찌르는데에 동참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헨젤과 그레텔 : 마녀 사냥꾼> 스틸.

<헨젤과 그레텔 : 마녀 사냥꾼> 스틸. ⓒ Paramount Pictures


영화속에서만 느끼고 싶은 묘한 카타르시스  

이 영화는 IMDb(미국의 유명한 영화정보 사이트)에서 평점 6.4점을 받고 있다(2월 15일 기준). 미국 현지 평단으로부터는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관객들도 미지근한 반응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크린 수에 비해 관객 수는 많지 않고, 평단도 극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들은 존재하며, 이런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도 분명히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 보고나서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지?" 하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웃을수 있게 해주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영화의 잔인함과 무서움이 은근히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준다는 점이다. 마치 잔인한 컴퓨터 게임(특히 좀비를 처치하는 총쏘는 종류의)을 할때 그렇듯이 말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져 스트레스가 많은 요즘 관객들에게는 간혹 이런 '단무지스러운' 영화가 주효할 수 있는 것이다. 자르고 터지고 으깨어지는 장면을 보며 끔찍하고 더럽다고 느끼면서도 묘하게 그런 장면만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모습들이지만, 이건 영화고, 특히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는 영화이니 허락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 영화속에서 만큼은 그런 잔인함을 즐길 수 있게끔 이 영화가 스타일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형편없다고 보는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비난하겠지만, 이 영화의 형편없게 보일수 있는 여러 부분들에서 색다른 매력을 발견한 관객은 이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아도 재밌게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앞서 이 영화를 '액션'이라고 불렀지만, 이 영화에서 하드고어적인 부분이나 호러적인 부분보다 약한 게 바로 액션이다. 나쁜 마녀가 마녀이기에 빗자루를 타고 날으는 장면만 나오면 <우뢰매>에서 에스퍼맨이 나는 장면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웃어야 하는 장면이 아닌게 분명한데 웃지 않으면 민망하게끔 연출되어 있다.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이 나쁜 마녀를 추격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왠지 어색하게 여겨진다. 차라리 <런닝맨>이나 <무한도전>같은 국내 TV 예능의 추격 장면이 더 볼만한 것이다.  

격투 장면이나 총격 장면 같은 액션들도 별게 없다. 다만 그런 액션들이 현란한 편집으로
지루하지 않게 처리되어 있는건 좋은 점이다. 시나리오상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레텔의 비밀도 어렵지않게 반전이 밝혀지기 전에 알 수 있다. 이렇게 아쉬운 점들이 있음에도 이 영화가 흥미로운건, 오히려 별게 없이 단순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이런저런 추억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이 영화 특유의 완성도에 그 원인이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나쁜 마녀(사람을 해치는 마녀)와 착한 마녀(사람을 해
치지 않는 마녀)가 나오는데, 착한 마녀든 나쁜 마녀든 마녀라면 무조건 불태워 죽이려는
영화속 사람들의 모습에서 언뜻 한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녀사냥'식으로 몰아붙이곤 했던 과거의 세태가 떠오르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봐온 영화들이 중간중간 연상되어 재미를 주기도 한다. 가차없이 유혈이 낭자되는 장면들은 타란티노나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며, '에드워드'라는 이름의 트롤(마녀를 섬기는 괴물)이 그레텔을 구하는 장면은 <늑대소년>을 생각나게 한다. (이 영화는 원작을 잔혹하게 각색했지만 어쨌든)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원작 동화의 재밌는 이미지에다, <어벤져스> <본 레거시> 등으로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남자인 제레미 레너 보는 재미(제레미는 이 영화에서 유머를 담당하기도 했다)까지 더해지면 비록 최고는 아니지만 최악도 아닌 작품이 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하나의 이야기를 이룬 장면들의 합을 뜻함)를 보면 헨젤과 그레텔, 에드워드와 벤 이 네 명의 캐릭터가 한 팀이 되어 악당을 물리치는 일을 계속 해나갈 것을 암시하는 의미 같기도 하다. 이 영화를 부정적으로 본 관객들은 절대 속편이 나오지 못할 작품이라 말하지만, 넷의 조합이 그럴듯해 보여서 색다른 수퍼히어로물처럼 속편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속편이 나오지 않아도 좋다. 이 영화가 확실히 재미는 있었지만, 그 재미가 속편이 너무나도 기다려질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헨젤과 그레텔 : 마녀 사냥꾼 제레미 레너 하드고어 그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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